멮 9/12 전력

주제: 소원



땅이 갈라지고 불타며 생명을 없앴다. 검은 로브는 먼지와 피가 묻어있었지만 꼿꼿이 서있었다.

“내가.. 희생할께.”

“은월!”

경악어린 목소리들이 질타했다.

“희생하지 않으면 검은마법사는 계속 존재하잖아? 우리는 그걸 막기 위해 모인 거니까 괜찮아. 내가 할께.”

저마다의 인물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치욕과 분노가 범벅되어 자기혐오감으로 변하는 눈동자들이 은월을 쳐다봤다. 자기혐오로 가득찬 눈들을 은월이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꾸했다.

콰아앙!!

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섬광은 눈을 가렸다. 그리고 추억도 가렸다.

*

쫑긋거리는 여우귀가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귀가 재빠르게 파닥거렸다.

“심장소리..”

녹빛의 풀밭에 검은 머리는 이질적이였다.

“이게 뭐지? 귀가 없네? 꼬리도 없어!”

-

“가지마!! 그냥 여기에 있자!!”

눈물은 볼을 타고 턱에서 떨어져내렸다. 방울지는 눈물이 풀의 숨을 죽이고 은월의 숨도 죽였다.

“랑아..”

안타까움이 가득 들어간 목소리가 떨렸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또다른 인연을 뒤로했다. 움직이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

“하아...”

내뱉어진 한숨이 귀를 때렸다. 재빠른 발걸음이 숲을 지나쳐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낙낙한 흙길이 사람의 흔적을 안내했다.

“저기... 검은마법사는 봉인이 된지 얼마나 되었나요?”

“으엉? 뭐야 당신 어디에서 왔길래 그런 것도 모르는거야? 위대한 다섯명의 영웅들이 검은마법사를 봉인한지 10년이 되었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발 뻗고 편안하게 살고 있는걸세!”

은월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혹... 말입니다.. 혹... 은.. 은월이라는 이를 아십니까..?”

꼬랑지 수염을 쓰다듬던 남자가 궁금증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다.

“응? 은월이라니? 그게 누군가? 혹시 자네가 아는 사람인가?”

어리둥절한 이의 얼굴에 은월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뒤를 돌아 길을 가는 뒷모습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은월이라.. 그게 누구... 방금 누가 왔다가 갔던가..?”

남자는 귀를 후비적거리고는 과일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

“기억.. 하지못해기억하지못해기억하지못해기억하지못해”


멍한 눈빛의 은월이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 나뭇가지와 부딫쳐 몸 곳곳에 상처가 나 피가 배어나왔다. 널다라한 공간이 나타났다. 작은 연못과 평평한 공간에 은월이 주저앉았다. 차가운 연못물에 은월의 손이 담겼다.

“하... 으...”

차가운 물이 은월의 얼굴을 때리고 은월이 고개를 숙였다.

“.... 랑.. 랑... 랑...!!!”

은월이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반짝이며 은월이 사라졌다.

*

은월이 풀밭에 내려앉았다. 비틀거리며 은월이 달려나갔다. 초목으로 이루어진 집들이 나타났다.

“저게 뭐야? 귀가 없어! 꼬리도 없는데?!”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은월의 귀를 때렸다. 경계어린 눈들이 은월을 괴롭혔다. 은월이 사라졌다. 다른 존재에 수근거리던 입들이 곧 사라졌다.

*

“나를... 나를 기억하지 못해... 나를...”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은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그러진 몸이 잔뜩 웅크려졌다.

“나를.. 기억해줘...”

-

번쩍

눈이 나타났다. 울멍거리는 눈이 눈물을 쏟아냈다.

“하...”

은월이 제 눈을 닦고 머리를 비볐다. 흐느적거리며 몸을 움직여 욕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잘게 들리고 물로 축 처진 은월이 나타났다. 잘게 움직여 부엌으로 향한 은월이 볼을 긁적였다.

“먹을게 없네..”

터덜터덜 움직이던 은월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나타난 마을에 은월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험가니?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인자한 얼굴과 인자한 물음에 은월이 어색하게 웃었다. 밍기적거리며 식료품을 산 은월이 뒤를 돌았다.

“처음보는 얼굴이구려 허허”

은월의 귀가 쫑긋거렸다. 늦은 걸음이 움직였다. 현관에 은월이 주저앉았다. 식료품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나를.. 기억해줘.. 제발.. 나를..!! 은월이란 존재를.. 기억해줘..”

은월이 몸을 구부렸다. 구부정하게 옹송그려진 몸이 애처로이 떨렸다.

“소원이.. 하나 있어요.. 누군가.. 제발.. 누군가가... 저를 기억하게 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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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계 9/5 전력 60분

주제: 바캉스



햇빛이 반짝였다. 파란 하늘을 반사하며 바다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쌀알보다 더 작은 모래알이 바닷물과 왈츠를 추었다. 생기로 가득찬 해변은 얼마나 반짝이는가.

-

매끈한 몸이 나타났다. 조금은 살집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게만 보이는 몸이 귀엽게만 보였다.

“미쉘라!!”

환하게 웃는 얼굴이 어린 동체와 함께 달려갔다. 고운 얼굴이 배시시 웃었다. 원피스식 수영복을 걸치고 배싯 웃는 미쉘라에 레오가 마주보고 웃었다. 보기좋은 남매의 모습에 부모의 얼굴은 흐뭇하기만 했다. 싱그러운 풀잎이 반짝였다. 바닷물은 몸을 적시고 모체로 돌아갔다. 해맑게 웃는 그 표정들이 바다와 함께 어우러졌다.

-

흐드러졌다. 맑은 하늘은 흐드러지고 바람이 불었다. 점점 강해지는 바람은 해변에 몸을 걸치던 물품들을 휩쓸었다.

덜컥!!

위아래로 숭덩이던 파라솔이 뽑혀나갔다. 어두워지던 하늘은 검검해지고 형광빛의 파란색이 형체를 갖춰갔다. 바캉스를 즐기던 이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레오와 미쉘라의 부모도 사라졌다. 해맑게 웃으며 바다에서 놀던 미쉘라도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트렁크수영복을 입고있던 레오도 평복을 입은 상태로 주저앉아있었다. 해변은 변했다. 반짝이던 고운 모래는 딱딱한 아스팔트로 푸른 바다는 멈춰버린 분수대로 즐거움과 생기를 가득 담았던 해변은 절망과 죄책감을 담은 장소로 변했다.

‘아.. 으.. 으... 그, 그만...’

미쉘라의 분홍색 입술이 열렸다. 곧게 뻗은 다리로 걷던 미쉘라가 휠체어를 탄 미쉘라의 옆에서 웃었다. 미쉘라의 눈이 감겼다. 레오의 눈이 형광파란색으로 변했다. 형광빛눈의 레오가 절규하며 바닥에 쓰러진 레오를 쳐다봤다.

‘미쉘라미쉘라미쉘라미쉘라!!!!!’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눈이 봐뀌던 순간도 해변에서 길가로 봐뀌던 순간도 거꾸로 역행했다. 미쉘라가 비치볼을 들고 웃었다.

*


번쩍

레오가 눈을 닦았다. 흘러넘친 눈물을 닦던 레오가 얼굴을 부볐다.

“으... 미쉘라...”

레오가 고개 숙였다.

*

“레오군.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클라우스가 소파에 축 처진 레오에게 말을 건넸다. 레오가 놀란 표정으로 클라우스를 보고는 금새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쓰러움과 부드러움을 담은 클라우스의 얼굴이 미소 지었다. 클라우스의 큰 손이 레오의 머리를 덮었다.

“레오군. 너무 속으로만 앓지 말게. 가끔은 밖으로 표현을 해야 버틸 수 있네.”

레오가 쓰다듬어졌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아... 그냥.. 꿈이. 꿈에서 미쉘라와 해변레서 바캉스를 지냈어요. 그러다가.. 그러다가.. 흐으.. 눈이 봐뀌는 곳으로 변하고.. 눈이 봐뀌는 걸 다시.. 봤어요..”

제 머리를 잡고 무릎으로 고개숙인 레오가 잘게 떨었다. 바들거리는 몸이 애처로웠다. 길베르트가 담요를 가져오고 클라우스가 레오의 위로 담요를 덮어주었다. 잘그럭 거리는 레오의 몸을 한 번 도닥여준 클라우스가 소파에 앉아 레오의 옆을 지켰다. 정적 속에서 레오의 얕은 울음소리가 클라우스의 숨소리와 얽혔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는 건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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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60분 전력


주제 환각


피웅덩이가 발 밑을 채웠다. 환한 금갈빛 머리카락이 어두운 곳에서 빛났다.

촤악!

금갈빛 머리 위로 피가 쏟아져 내렸다. 따스한 갈빛 눈동자가 위를 향했다. 장기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손이 강하게 쥐어졌다. 달달 떨리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고는 몸을 움직였다.

피가 흐드러졌다.
장기가 흐드러졌다.
원망어린 눈이 흐드러졌다.

그런 공간을 묵묵히 걸었다. 점점 다가갈수록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었다.

“ㅊ...츠..나..”

“사..와다..”

“컭! 사와다...”

츠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중학교 시절의 익숙한 얼굴들, 고등학교 시절의 익숙한 얼굴들 그리고 마피아 대부가 되면서 친분을 쌓은 조직원들까지 바닥에 쓰러져 피를 내뿜고 내부를 드러냈다.

“설마.. 아..냐.. 아닐..거야..!”

하얗게 탈색이 되어버린 츠나가 몸을 뛰었다.

철퍽

피가 신발에, 바지에 튀었다.

“아..”

피로 범벅이 되어버린 소중한 이들이 서있었다. 장시간 피를 흘렸는지 얼굴은 새하얗게 변해있었고 곳곳에 있는 상처가 속살을 벌렸다.

“으.. 아... 아...”

작아진 동공이 불안을 드러냈다. 말끔하던 이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시원한 웃음의 타케시가 칭찬에 수줍어 하던 하야토가 이름을 처음 불렀을 때의 새침한 쿄야가 선물에 기뻐하던 크롬과 툴툴대면서도 기뻐하던 무쿠로가 결혼식 선물에 당황하면서도 웃던 료헤이가 울멍이던 눈으로 웃어주던 람보가 그리고 항시 옆에 있어주던 리본이 피투성이의 그들 옆에 나타났다.

“흐.. 아.. 아냐.. 안돼.. 그렇게 안둘거야.. 안돼...”

불안정한 눈에서 눈물이 새어나왔다. 말끔하고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난 얼굴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작대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에 츠나가 무릎을 꿇었다. 괴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에 상처입은 짐승의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흐으... 그..만..! 절대로..! 절대로! 저렇게 되도록 하지 않을거야!!”

상냥함으로 가득차있던 눈이 원망과 의지로 가득 찼다.

‘...ㄴ!... ㅊ...ㄴ!!’

“아...?”

‘일...나! ㅊ....! ㅊ...나!’

두리번거리던 츠나의 눈에 빛이 보였다. 작대기에 매달려있던 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빛으로 점멸됬다.

*

반짝

츠나가 눈을 뜨고 수호자들과 리본이 츠나를 내려봤다. 바닥에 누워있다고 느끼자 츠나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 게 무슨?”

“이 다메가!!”

리본이 레온을 변형시켜 츠나의 머리를 내려쳤다. 크롬의 얼굴이 울쌍으로 무쿠로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져있었다.

“초직감을 익힌다고 환각을 부탁했으면서 못 빠져나오고 거기서 머물러 있어?!!”

츠나의 머리를 연신 내려치며 잔소리를 하는 리본의 행동에 츠나가 멍하니 크롬과 무쿠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서워 하는 것’

“아.. 그렇구나..”

“뭐가 그렇구나냐!!! 이 다메가!!!”

결국 레온을 총으로 변화시켜 발포하려는 행동에 츠나가 환하게 웃으며 뒤로 돌아 도망을 쳤다. 고함을 지르던 리본이 츠나가 사라지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라고 했었던가...?”

타케시의 입에서 짧게 나왔다.

“어.”

하야토의 입에 담배가 물렸다. 모두의 얼굴에 쌉쌀한 미소가 걸쳐졌다.

“다메츠나같으니..”

리본이 페도라로 얼굴을 가렸다.


다정한 이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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