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흐리다








구름이 잔뜩 꼈다. 흐릿한 하늘이 우중충했다. 넓게 펴진 들판으로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매그너스”


잿빛머리카락이 나타났다.


“매그너스”


매그너스의 손목이 잡혀 돌려졌다. 담담한 눈빛이 매그너스를 응시했다.


“뭐야, 카이저. 왜 여기 왔어. 너같은 거 필요없다고.”


뾰족한 말이 튀어나왔다. 찌푸려진 아미에서부터 한기가 흘러나왔다. 담담한 카이저의 얼굴이 얼핏 하얗게 올라왔다.


“매그너스. 나는..”


“닥쳐”


날카로운 말이 잘라냈다. 이그러진 얼굴과 함께 주먹이 날아갔다.


퍼억


카이저의 볼이 빨갛게 올라왔다. 으드득 이가 갈렸다. 주먹이 일방적으로 카이저를 몰아쳤다. 조용한 가운데 타격음이 가득 찼다. 타격음이 점점 멈춰갔다.


“카, 이저. 네. 가. 카이저, 네가 먼, 저!”


매그너스의 눈이 발갛에 달아올랐다. 카이저의 손이 뻗어졌다.


“미안하다.”


매그너스의 얼굴 가득 분노가 차올랐다.


“닥쳐! 미안하단 말 하지마! 너는 언제나 그래! 네가 먼저 시작하고 무시해버려! 너는 카이저라고 불리고 카이저로 살고 있어! 그러면 나는! 나는! 매그너스는 대체 뭔데!”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카이저의 얼굴 위로 눈물이 한방울 떨어졌다. 입술을 깨문 매그너스가 팔로 눈을 북북 문질렀다.


“나는. 뭐야. 노바의 영웅 카이저에게 매그너스는 뭐야.”


카이저가 매그너스의 볼에 손을 부볐다.


“전부다. 카이저에게 매그너스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어. 카이저를 카이저가 아닌 하나의 노바로 만드는 건 매그너스밖에 없으니까.”


카이저의 입술이 매그너스의 이마에 닿았다. 아릿한 바람이 매그너스와 카이저의 가슴을 꿰뚫었다. 구름이 잔뜩 하늘을 채웠다.


“으윽.. 욱..”


“매그너스. 매그너스. 나의, 매그너스..”


카이저가 매그너의 이마, 코, 볼 마지막 입술까지 얕게 입을 맞췄다.


“나는 노바의 영웅이지만 매그너스, 너의 하나뿐인 이다. 나에게 있어 너는 한명뿐이다. 그 누가 나에게 다가온다 한들. 너밖에 없어.”


조곤조곤한 말이 매그너스의 귀를 간질였다. 매그너스의 손을 풀어 아래로 내린 카이저가 매그너스를 껴안았다. 풀냄새가 잔뜩 풍겼다.


“너에게 품은 감정이 변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나의 매그너스.”


“닭살돋아 카이저.. 작작해.. 크큭”


매그너스의 풀어진 어투에 카이저의 얼굴도 풀어졌다.


“너무한 걸, 매그너스.”


흐린 하늘이 점점 푸르게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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멮 1/30 전력 60분

주제: 차가움






갈색으로 말라붙은 피가 바스라졌다. 초점없던 눈동자가 생기를 찾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인영이 퍼득 놀라 아래를 쳐다봤다.

“이, 게 무슨..!”

프리드가 제 친우들을 내려봤다. 하얗게 뜬 얼굴과 말라붙은 피, 그리고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몸들이 프리드의 시야에 박혔다. 하나같이 마법에 의한 상해로 피를 쏟으며 죽은 모습에 프리드가 뒷걸음질 쳤다.

찰싹

제 볼을 내려친 프리드가 이물감에 손을 쳐다봤다. 검붉은 핏자국이 나타났다. 허둥지둥 제 손을 털고 로브에 닦으며 자욱을 지우려 안간힘 썼다. 제 마력을 체크한 프리드의 눈이 당황과 초조로 가득 찼다.

“거, 짓말이지? 그렇지?”

프리드가 제 몸을 애써 이끌고 시체 가까이로 향했다. 설레설레 시체를 흔들었다.

턱.

턱.

탁.

타악.

바닥에 부딫치며 둔탁한 소리를 내고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냉기에 프리드가 제 손목을 부여잡았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슬슬 뒤로 물러났다.

“흐으.. 이게.. 무, 무슨.. 이럴, 리가..!”

바닥에 흩어졌던 피가 꿀렁였다. 어미를 쫒는 새끼새처럼 제 근원을 찾았다. 절걱이며 시체가 일어섰다. 하얗게 뜬 얼굴에 동태눈을 한 이들이 움직였다.

“프리드. 몸이 차가워.”

“프리드, 몸이 딱딱해.”

“프리드. 몸이 이상해.”

“프리드, 마력이 안 움직여.”

“프리드. 손가락이 굳었어.”


"프리드. 눈이 뻑뻑해."

“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프리드”

프리드 가까이에 얼굴을 모은 이들이 입을 멈췄다. 프리드의 눈이 발갛게 충혈됐다.

“프리드. 넌 왜 따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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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가 만연했다. 썩은 내 나는 시체들 사이로 보여야 할 땅이 피로 덮여 보이지 않았다. 넓다른 평원 가득 전쟁의 흔적이 흩어져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핏덩이와 시체들 사이 피 웅덩이 하나가 회오리쳤다. 회오리는 점점 커져 말라붙지 않은 피를 모았다. 용오름이 솟듯 솟아오른 핏빛 회오리가 평원에 있는 피를 아귀처럼 긁어모았다. 회오리가 점차 멈춰가고 그 안에 인영이 생겨났다.

 

파앙!

 

회오리가 사라졌다. 찬란한 은발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하얀 얼굴에 옅은 핏방울이 도드라졌다.

 

“V. 루미너스..”

 

살짝 손을 올리자 루미너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묻어 있던 피가 모여들었다. 조약돌 같은 크기의 핏방울이 루미너스의 앞에 나타났다.

 

흐응...”

 

핏방울이 아래로 떨어져 흩어졌다. 평원 가득 메워진 시체의 행보에 루미너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찰박

 

발걸음 걸음마다 응고되지 않은 피들이 모여 루미너스의 뒤를 쫓았다. 시체의 평원이 끝났다. 커다란 핏방울이 루미너스의 어깻죽지로 붙었다. 얇은 피막을 가진 날개가 솟구쳤고 루미너스의 오드아이가 안광을 발했다. 잔상이 남았다. 매끈하게 날아오른 동체가 점이 되어 사라졌다.

 

-

 

매끈한 벽에 피가 말라붙어있었다. 하나같이 곱고 미인인 이들이 피를 흘리고 장기를 내보이며 일광욕을 즐겼다. 부서진 천장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이 어두운 공간에 내려앉았다. 어지러이 흩어진 시신들 사이사이 어그러진 갑주가 있었다. 어그러진 갑주들 위로 피가 검붉게 말라붙어있었다. 하얗기만 한 벽과 천장, 그와 대비돼 듯 검붉고 어그러진 바닥이 햇빛에 조금씩 모습을 보였다. 뽀얀 먼지가 공간을 활보하고 썩은 내가 돌아다니며 시체를 불태웠다.

 

햇빛이 가장 들지 않는 곳, 움푹 팬 바닥에 고인 피 웅덩이가 잘게 회오리쳤다. 피 웅덩이가 점점 강하게 회오리치며 주변의 피를 끌어모았다. 꿈틀거리던 표면이 빠르게 용솟음쳤다. 짙게 회오리치던 피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물결치듯 위아래로 흔들리며 돌던 회오리가 멈췄다.

 

촤아악

 

피가 아래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퍼졌다. 회오리가 있던 중심에 미형의 인형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결 좋은 금발에서 핏줄기들이 떨어졌다. 도자기 같은 얼굴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V. 팬텀

 

야살스레 올라간 입꼬리가 매혹적이게 빛을 발했다.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팬텀의 몸에 남아있는 피가 동그랗게 모여들었다.

 

철퍽

 

동그란 핏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던 팬텀이 몸을 움직였다. 걸음이 앞으로 향할수록 피가 팬텀의 뒤로 모여들었다. 공간에 하나뿐인 문을 열자 햇빛이 들어왔다. 햇빛은 팬텀의 금발을 간질이고 보랏빛 눈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커다란 핏방울이 팬텀의 어깻죽지를 노리고 들어섰다. 선명한 피막 날개가 솟았다. 산뜻한 공기가 요동쳤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팬텀이 점이 되어 사라졌다. 공간을 가득 채웠던 시체 썩은 내가 산뜻한 공기를 좀먹어갔다. 시체 썩은 내가 유희를 나갔다.

 

*

 

시원스레 쭉 뻗은 손가락이 원목 탁자를 두드렸다. 나긋나긋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춤을 추었다.

 

보충할 때가 되었나..”

 

매끈한 미간을 찌푸린 루미너스가 관자놀이 주변을 눌렀다. 설레설레 고개를 저은 루미너스가 몸을 일으켜 창문으로 향했다.

 

아무거나 골라야겠군.”

 

루미너스가 창문을 넘어서고 날개가 튀어나와 몸을 지탱했다. 따스한 햇볕만 남아 반짝였다.

 

·

 

 

루미너스의 팔목에서 핏줄기가 솟아올랐다. 어두운 밤하늘에 커다란 보름달이 생글거렸다. 여러 가닥으로 나누어진 핏줄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아를 가진 듯 핏줄기가 제각기 나뉘어 마을 안으로 섞여들어 갔다. 루미너스가 몸에 긴장을 풀어냈다. 중소규모의 마을 위로 커다란 보름달이 빛을 내려 루미너스 가까이 다가왔다. 환한 달빛이 루미너스의 은발에 관심을 가졌다. 살랑이는 바람결에 은발이 휘날리고 청안과 홍안의 오드아이가 달빛에 반짝였다.

 

두툼한 뱀 여러 마리가 마을 바닥을 휘저었다. 크기와 맞지 않는 날렵함을 지니고 루미너스의 가까이에 다가왔다. 처음 루미너스의 팔목에서 나온 핏줄기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불어 오른 핏덩이들이 루미너스의 팔에 감겨들었다. 팔목의 상처를 비집고 핏덩이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팔목이 과대한 핏덩이로 인해 꿀렁였다. 마지막 꼬리까지 루미너스의 팔목으로 흡수되고 상처가 아물었다. 옷매무새를 툭툭 털어낸 루미너스가 날개를 펼쳐냈다.

 

달빛에 흐드러진 외형은 흡사 신화 속 천사와도 같았으나 풍채를 들어낸 날개는 날카롭고 탐욕스러웠다. 피막의 날개가 움직였다. 달빛이 뒤를 쫓을 새도 없이 루미너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옅은 혈향이 공기에 남아 바람을 간질였다.

 

-

 

까딱이는 발끝이 박자를 맞췄다. 턱을 괸 손이 하얗게 빛을 받았다. 장난 가득한 얼굴이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이어갔다.

 

흐음, 미각을 충족시킬 이는 누구려나... 역시 미인이려나?”

 

팬텀이 제 입술을 혀로 핥았다. 반들거리는 보랏빛 눈이 마을을 내려보며 먹이를 찾아 훑었다. 길을 지나는 청년, 아이, 노인, 여인 등 수많은 사람이 팬텀의 눈에 스쳐 지나갔다. 팬텀이 불만스러운 듯 볼을 부풀리고 입술을 비죽였다.

 

그 놈의 천 년의 시간. 그냥 백년마다 하면 좋을 걸. 각인될 놈팡이하고 만나면 이런 짓은 안 해도 될 텐데. !”

 

팬텀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피로 이루어진 의자가 울렁였다. 길쭉한 손가락이 팔걸이를 두드렸다. 젤리처럼 적당히 들어가는 탄력에 팬텀이 손가락을 꾹꾹 눌렀다. 원하는 걸 얻지 못해 울어 재끼는 마을 아이처럼 팬텀이 잔뜩 볼을 부풀렸다. 울렁거리고 매끈매끈한 의자 위에서 팬텀이 벌떡 일어섰다.

 

뱀파이어인데 뭐 이런 걸 고민해! 그냥 저지르면 되는 거지!”

 

움틀 거리던 의자가 흩어졌다. 점점이 흩어진 핏방울들이 팬텀의 뒤를 점했다. 매끄러운 미소가 지어진 팬텀이 손을 올렸다.

 

어여쁜 아가씨들한테 다녀와.”

 

핏방울이 흩어졌다. 팬텀이 제 손가락을 튕기며 눈을 크게 떴다.

 

, 잠깐잠깐! 돌아와! 아직 밤이 아니잖아. 낮에는 뱀파이어의 매력이 부족해.”

 

흩어지던 핏방울이 다시 모여들어 의자의 형태를 갖춰갔다. 팬텀이 고개를 저으며 의자에 앉았다.

 

, 이 완벽한 이벤트성. 화려함은 뱀파이어의 기본이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까딱이던 팬텀이 해를 응시했다.

 

빨리 수평선 밖으로 몸을 숨겨줘, 태양. 뱀파이어가 화려한 몸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다고?”

 

팬텀이 해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말캉한 의자에 팬텀의 몸이 기대어졌다.

 

·

 

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우월감 섞인 미소를 지으며 팔을 벌리고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일어섰다. 달빛에 장신구들이 반짝이고 붉은 의자가 점점이 흩어졌다.

 

미인들을 골라서, 밤의 귀족이니까.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취하는 밤의 귀족. 아참, 미인은 소중하니까 상냥한 거 잊지 말고.”

 

비스듬히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방울들이 사라졌다. 마을 곳곳에 들어가 몸체를 불리며 돌아다니는 방울들이 팬텀의 눈에 선명히 틀어박혔다. 곧게 몸을 세운 팬텀이 눈을 감았다. 살랑이던 밤바람이 옅은 혈향에 취해 몸을 비틀거렸다. 환한 금발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부서졌다. 장신구들이 바람결을 타고 동당거렸다. 작달막하던 방울들이 어른 주먹만큼 커졌을까, 하나둘씩 팬텀을 향해 날아갔다. 동그란 방울들이 휘영청 한 달빛에 의해 반짝였다.

 

팬텀의 팔 근처에 있던 방울이 꿈틀거리며 형태를 바꿨다. 팬텀의 팔목이 방울에 의해 드러났다. 상처가 벌겋게 드러나 있었지만 피는 흐르지 않았고 오히려 그 상처 속으로 방울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얇게 포가 뜨인 것처럼 납작해진 방울들이 연이어 팔목으로 들어가고 팬텀의 팔뚝이 솟아올랐다. 꿀렁이며 들어가는 방울들이 점차 줄고 옷을 올리던 방울까지 들어가며 상처가 사라졌다.

 

후우, 이제 마실을 끝내볼까?”

 

팬텀의 입술이 매끄럽게 올라갔다. 밝게 빛을 뿌리는 달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 팬텀이 몸을 날렸다. 팬텀의 뒤에서 날개가 펴졌다. 하얀 달빛에 화려한 금발이 흐드러졌다. 팬텀의 자안이 투명해졌다. 강하고도 우아하게 날개가 움직이자 팬텀의 몸이 금세 작아졌다. 달빛이 아쉬워하며 팬텀의 뒤를 쫓았다. 혈향에 취해있던 바람이 놀라며 깨어나고 부끄러운 듯 몸을 숨겼다.

 

*

 

고딕풍의 성이 안갯속에서 나타났다. 높게 솟은 첨탑이 달을 노렸다. 검은 그림자가 속속히 나타나 성과 가까워졌다. 밝은 달무리가 안개를 홀리자 안개는 성을 감싸 안았다. 까맣게 무리를 지은 것처럼 모여든 그림자들이 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안개가 성을 완전히 감싸고 성이 모습을 감췄다.

 

-

 

하늘거리는 레이스커튼이 성 내부에서 팔랑였다. 통로를 잇고 이어가자 홀이 나타났다. 홀에는 수많은 이들과 함께 먹을거리가 놓여있었다.

 

호오, 이번 축제에는 좋은 레드와인이 많은데?”

 

, 커피 향이 좋군. 루왁 커피까지는 가져올 수 없었나 보군..”

 

이번 축제의 녹차도 상당하네. 가져가 볼까나.”

 

역시 축제 때 먹는 초콜릿이 제일 맛있다니까!”

 

조곤조곤하지만 복작복작하게 저마다의 입맛을 드러냈다.

 

이번 축제 때 신생은 얼마 안 되어 보이는군.”

 

붉은 머리의 남성이 와인잔을 흔들며 새로운 이야기의 물꼬를 틔웠다. 순식간에 이야기가 부풀려졌다.

 

각인되는 녀석들 보기도 힘들 거 같긴 하던데..”

 

이번 신생은 몇이야? ? ?”

 

아마 홀수일걸? 셋이던가.”

 

, 저기. 저기 못 보던 놈 하나 있네. 나머지는 오지도 않은 건가?”

 

오랜만이라고 순한 놈이 나왔구먼.”

 

저 녀석 각인은 동족이 아니겠는데?”

 

눈치를 보며 먹을거리가 가득한 탁자를 둘러보는 주홍빛 청년을 홀에 있던 이들이 훔쳐보았다. 초콜릿이 가득한 곳에 자리를 잡고 초콜릿을 집어 먹자 토끼 눈을 하는 청년의 모습에 청년을 주시하던 이들이 미소를 지었다.

 

저쪽 신생은 토끼인데? 이종족일 것 같다. 끌끌.”

 

토끼네, 토끼. 잡아먹어야 할 놈이 잡아먹히게 생겼어.”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환한 금발이 와인잔을 들었다.

 

흐응 아무래도 제 상대는 없는 것 같네요.”

 

짓궂은 감정 가득한 말에 고개가 돌아갔다. 금발이 살랑이며 자빛의 눈을 간질였다.

 

신생?”

 

. 790 정도 되었을 겁니다.”

 

매끈하게 올라가는 입꼬리에 모여 있던 이들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아직 한 놈이 더 와야 해. 이미 성 내부에는 있을 터인데 아마 홀을 못 찾고 있거나 귀찮아서 홀에 안 왔을 수도 있는 거지.”

 

팬텀의 자안이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

 

여기 안 와도 되는 겁니까.”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모여 있던 이들이 넉살 좋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아아 그건 아닌데, 뭐랄까. 어차피 여기 모이는 건 각인상대 찾는 거 70%, 맛 좋은 음식 먹는 거 20%, 나머지 10%가 잡다하게 이야기하려고 모이는 거니까. 그냥 와서 얼굴만 비치면 그 다음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거지. 1초라도 누군가한테 얼굴을 보이면 그냥 가도 상관없어. 어차피 각인은 얼마나 같이 있느냐가 아닌, 본능이거든.”

 

입꼬리만 올라가며 미소 짓는 그 모습에 다른 이들이 킬킬대며 웃었다. 장난 가득한 목소리가 미소를 헝클었다.

 

그 본능을 못 찾은 자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네만?”

 

은근한 미소가 깨어지자 여러 웃음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요란스런 웃음소리에 팬텀이 뒷걸음쳐 몸을 빼내었다.

 

쿠웅

 

뱀파이어는 심장이 뛰지 않는 존재로서, 생에 단 한 번 심장이 뛴다.

 

팬텀이 몸을 움직였다. 지금껏 살아오며 맡아본 적 없는 달콤한 혈향에 팬텀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은발이 휘날렸다.

 

각인인가 보네.”

 

부럽네.. 저렇게 바로 찾다니..”

 

“1000년도 안 된 놈들이 벌써 각인 찾았네. 경우야 드물지마는 모습을 볼 줄이야.”

 

배 아프다아.”

 

술렁이는 목소리들은 곧 사그라지고 금빛과 은빛이 마주쳤다. 시선들이 금빛과 은빛을 향했다.

 

목 물어뜯고 싶은데, 각인 씨?”

 

목덜미를 뜯어 삼키고 싶군, 각인.”

 

집착이 묻어 나왔다. 팬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는걸?”

 

나 역시. 이름은?”

 

팬텀. 너는?”

 

루미너스.”

 

루미너스의 얼굴이 미세하게 허물어졌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팬텀이 제 얼굴을 활짝 폈다. 달콤한 혈향이 코에 머무르고 머릿속을 휘저었다.

 

*

 

어두운 공간에 약한 빛이 깜빡였다. 깜빡이는 빛에 공간이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원 안에 루미너스와 팬텀이 마주보고 앉아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둘이 앉은 원 밖으로 복잡한 선이 엉켜있었다. 선을 차근차근 풀어볼수록 하나같이 유려하고 부드러운 문양들과 알 수 없는 그림들로 복잡했다. 동그란 원과 그 밖의 문양, 그리고 앉아있는 둘의 사이에 있는 작은 원까지 공간은 고즈넉하지만, 위엄을 품은 채 존재했다.

 

루미너스와 팬텀의 양 손목이 갈라졌다. 작은 피 한 방울이 둘 가운데에 있는 원에 떨어졌다. 원보다 크기가 조금 작은 그릇이 나타났다. 하얀 그릇이 깜빡이는 빛에 의해 은빛으로 빛을 발했다. 루미너스와 팬텀의 손목에서 핏줄기가 솟았다. 솟아오른 핏줄기가 느릿하게 그릇 안으로 몸을 뉘었다. 딱 절반씩 피가 섞이지 않고 그릇 안에서 꿀렁였다.

 

“V. 루미너스.”

 

“V. 팬텀.”

 

말이 끝나자마자 둘의 손목에서 피가 쏟아져 원 밖의 문양을 덮쳤다. 루미너스의 피는 팬텀이 있는 쪽을, 팬텀의 피는 루미너스가 있는 쪽을, 하얀 문양들이 피로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 루미너스와 팬텀의 손목이 아물었다.

 

원 밖 문양이 빛을 발했다. 흩뿌려진 피를 흡수하면서 빛은 핏빛으로 변하고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둘의 피가 있던 그릇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릇 안에 있던, 물과 기름 같던 피들이 섞였다. 조금씩 섞일 때마다 루미너스와 팬텀의 몸에 상처가 생겨났다. 그릇 안 피들이 온전히 섞였을 때 루미너스와 팬텀의 몸이 갈라졌다. 온갖 자상이 피를 뿜어냈다.

 

구우우우우우웅

 

그릇이 있던 곳부터 문양이 끝나는 곳까지 진공상태가 만들어졌다. 자상에서 흘러나오던 피들이 공간에 떠올랐다. 계속해 나오는 피들이 위치를 바꿨다. 루미너스의 피는 팬텀에게, 팬텀의 피는 루미너스에게, 핏방울은 주체를 변경했다. 진공이 끝났다. 오롯이 서로의 능력으로 떠있는 피들이 뭉쳐졌다. 몸 곳곳에 존재하는 자상들로 핏방울이 흡수되었다.

 

가까이에 있는 피를 흡수할 때마다 자상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서로의 몸에 흡수되고 끝까지 마주보고 있던 오드아이와 자안이 반들거렸다. 그릇 속 섞여있던 피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 루미너스와 팬텀에게 향했다. 쇄골 아래를 통해 몸 내부로 들어가고 흔적이 남았다. 루미너스에게는 보랏빛 도는 장미가 팬텀에게는 적 빛과 청 빛이 교차한 하이포시스오리어가 흔적을 대신했다. 은은하게 빛이 나는 흔적이 각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팬텀이 마른 입술을 혀로 쓸었다. 야살스레 올라가는 미소에 루미너스가 팬텀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입술이 마주 닿았다. 팬텀의 입술을 열고 들어간 루미너스의 혀가 활개를 쳤다. 말캉한 입 점막을 쓸고 도톰한 혀를 옭아매며 루미너스가 팬텀의 위를 점했다. 루미너스가 팬텀을 밀자 팬텀이 뒤로 넘어가 바닥에 몸을 눕혔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점막이 겹쳐지는 소리가 뇌를 달구었다.

 

츠읍

 

입술이 떼어졌다. 타액으로 둘의 입술이 반들거렸다. 팬텀의 손가락이 제 입술을 쓸었다.

 

뒈질 때까지 잘 부탁한다.”

 

루미너스가 팬텀의 쇄골을 물었다.

 

뒈질 일 없으니 계속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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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팬텀 생일








어두운 공간에 금발이 살랑였다. 초점없이 걷고 있는 사내가 걸을수록 공간은 점점 더 탁하고 어두워졌다. 사내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아, 나 왜 여기서 걷고있는거지?”

팬텀이 멈춰섰다. 하얗게 빛이 나며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리아!”

아리아가 눈을 떴다. 초점이 사라지고 생기 없는 눈으로 아리아가 걸어갔다. 팬텀을 지나쳐 다소곳이 걸어갔다.

“아리아!!”

팬텀이 아리아의 뒤를 쫒았다.

“아리아!!”

아리아가 어두운 공간을 계속 걸었다.

“아리아!”

아리아가 멈춰섰다. 두 손을 꼬옥 맞잡은 채 눈을 감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아리아의 옷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 피가 흐르고 흘러 옷을 적시고 바닥에 고였다. 아리아가 쓰러졌다.

“아리아! 아리아!! 제발! 아리아!!”

아리아가 쓰러지고 팬텀이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아리아 가까이로 향하지 못했다. 팔을 버둥거리고 발로 차기도 하며 연신 비명을 질렀다.

“아리아!! 제기랄! 아리아!! 아리아아!!!”

아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금발이 피로 물들어갔다. 아리아의 고개가 팬텀을 향해 꺽였다. 팬텀의 눈과 아리아의 눈이 마주쳤다

“팬.. 터엄..”

아리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서려졌다. 아리아가 눈을 감자 몸이 사라지고 바닥에 고였던 피도 사라졌다. 팬텀이 아리아가 있던 곳으로 향했지만 어느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무, 뭐야.. 아리아가, 아리아가..!”

팬텀의 몸이 떨렸다. 연신 손을 움켜잡으며 자리를 빙빙 돌았다. 초조한 듯 제 입술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아리아가, 아리아가, 또. 또, 또 다시.. 다시? 다시? 아리아가 다시?”

팬텀의 앞에 빛이 생겼다. 프리드, 에반, 메르세데스, 아란, 루미너스,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에 자안의 인물까지 팬텀의 앞에 나타났다.

“하.. 어라? 하, 너네가 왜, 왜 여기.. 저기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

녹았다. 다리에서부터 천천히, 곰팡이가 습한 구역을 좀먹어 가듯 느릿하지만 꾸준하게 녹았다.

“하, 아? 그게 뭐ㅇ..”

“와, 내 다리 녹는거봐!”

“아란, 그런 말은 대놓고 하는게 아니야.”

“메르세데스.. 너도 그런 말 하면 어떻게 해.”

“모두 똑같이 녹고있군.”

“으음.. 이런 건 처음인데?”

질척한 액체상태로 변해 녹아내린 것들이 한갈래로 모이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색으로 흐르던 것들은 서로 섞여가며 어둡고 탁해지기 시작했다. 느릿한 액체가 한길 생겼다. 고개가 꺽인 아리아의 피가 흘러 같이 석였다. 팬텀이 몸을 움직였다. 막에 걸려 뒤로 나동그라졌다.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기도 하며 막을 공격했다. 그 사이 하반신이 다 사라져 있었다.

“아하하 팬텀 잘 지내! 너무 걱정하지마!”

“이런 거 처음이지만 괜찮은데?”

“통증도 팔이 떨어지거나 다리가 날아간 것보단 적군.”

“나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걸?”

팬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파랗게 변했다. 입이 사라졌다. 곧은 시선의 눈이 팬텀을 응시하고 곧 녹아 흘러내렸다. 덜덜 떨던 팬텀이 고개를 돌리자 아리아가 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패..ㄴ.. 터...엄..’

아리아가 사라졌다. 이어진 피의 길이 흘러 모였다. 질척하고 어두운 웅덩이가 꿀렁였다. 크게 울렁이더니 솟아 올랐다.

‘그워어어어어!!!’

14개의 팔과 14개의 다리가 솟았다. 6개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있었다. 각자 애용하던 무기가 날카롭게 벼려있었다. 꿈틀거리던 표면에 얼굴이 솟았다.

“어라, 나타났다.”

“와아.. 이거 신기해..”

“이거 이동은 어떻게 하는거지.”

“이거 신기하군.”

아리아의 얼굴이 나타났다.

“팬텀.”

팬텀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얗게 질린 입술에 피가 흘러내렸다.

“팬텀?”

“팬텀?”

“팬텀?”

“팬텀!”

“팬텀!”

“팬텀!”

“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팬텀?”

메아리쳤다. 팬텀의 이름이 불려지고 공간을 돌아 뇌를 좀먹고 활기찬 목소리가 반복되며 음습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아.. 나는.. 으.. 아..”

팬텀의 아래가 울렁였다. 위로 움틀거리던 바닥이 위로 솟았다. 허벅지를 휘여감아 아래로 끌어당겼다. 발목, 종아리, 허벅제를 감고 더 튀어나온 검덩이들이 팔을 붙잡았다. 팬텀의 이름이 메아리쳤다. 팬텀이 아래로 내려갔다. 검덩이들은 상체를 부여잡고 끌어 내렸다. 목을 휘감아 졸랐다. 입을 막았다. 팬텀의 몸이 아래로 꺼져갔다. 뭉텅이에 달린 얼굴들이 입을 닫았다. 메아리가 이어졌다. 팬텀의 입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얼굴들이 눈꼬리가 처질만큼 웃었다.

“팬텀.”

-

“..텀!..”

“ㅍ..! 팬..!”

“팬...! ㅌ..!”

“팬..! 텀..!!”

“팬텀!!”

팬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루미너스의 얼굴 가득 걱정이 서려있었다. 식은땀이 팬텀의 턱을 타고 떨어졌다. 파란 팬텀의 입술이 떨렸다.

“팬텀? 너 괜찮은가?”

팬텀의 눈이 초점을 잃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팬텀의 몸이 떨렸다. 루미너스가 침대에 앉아 팬텀을 껴안았다. 토닥이는 루미너스의 손에 팬텀의 손이 루미너스를 껴안았다. 덜덜 떠는 몸이 루미너스를 흔들리게 만들자 루미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더욱 강하게 팬텀을 껴안은 루미너스가 손은 천천히 움직였다. 점점 잦아가는 떨림에 루미너스가 팬텀의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금발이 흐드러졌다. 루미노스의 입술이 팬텀의 이마에 내려앉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 괜찮다. 팬텀, 나는 여기에 있다. 사라지지 않아.”

팬텀의 자색눈에 눈빛이 차올랐다. 자수정이 빛을 받아 반짝이듯 울렁이는 눈에 루미너스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팬텀의 눈 위에 루미너스가 입맞췄다.

“쉬이.. 괜찮다.”

루미노스가 팬텀을 껴안고 등을 도닥였다. 팬텀이 루미노스의 목에 제 이마를 부볐다.

“아아.. 너라서 다행이야. 정말이지, 개같은 꿈이였거든.”

팬텀이 조금 쉰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시 혀를 찬 루미너스가 곧 탁자에서 물을 따라 팬텀에게 건넸다. 단숨에 들이키고는 루미너스의 품에 팬텀이 안겼다. 따스하게 느껴지는 온기에 팬텀이 안정하자 루미너스가 등을 토닥였다. 팬텀의 볼을 잡고 입술에 뽀뽀한 루미너스가 입을 떼었다.

“씻고 다시 누워서 쉬어라, 팬텀.”

팬텀의 눈이 크게 뜨여지다 얇게 휘었다.

“같이 씻을까, 루미너스?”

루미너스가 제 이마를 붙잡았다. 앓는 소리를 낸 루미너스가 제 얼굴을 팬텀 가까이에 붙였다.

“악몽 꿔서 시퍼런 네 녀석 덮칠 생각 없으니까, 쉬기나 해라.”

팬텀이 환하게 웃으며 루미너스의 목을 감싸안았다.



순식간에 팬텀의 입술이 루미너스와 맞닿고 떨어졌다.


“이래도 안 할거야? 응? 이 몸이 유혹도 해주는데?”

루미너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호오?”

루미노스의 혀가 팬텀의 입을 열어재쳤다. 도톰한 혀가 팬텀의 입천장을 간질였다. 말캉한 옆을 간질이다 혀를 잡아채 비볐다. 목 깊숙히까지 파고들기도 하며 따뜻한 입 속을 휘젓고 다녔다. 펜텀의 목에서 앓는 소리와 비음이 흘러나왔다.



크게 소리가 나며 둘의 입술이 떨어졌다. 조금은 헐떡이는 팬텀의 모습에 루미너스가 잘게 키스했다. 팬텀을 들어올린 루미너스가 화장실로 향했다. 

“일단, 씻을까?”

팬텀이 키들키들 웃고는 샐쭉하게 웃었다.

“좋아.”




*

생일 축하한다네 팬텀★ 내 비록 멘탈을 갈기갈기 찢었으나 끝은 루미너스와 연애물을 찍었으니 그로도 좋지 아니한가★
클클클 늦어서 미안하진 않지만 빈말로 미안하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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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행복






햇빛이 반짝였다. 살랑이는 바람결에 나뭇잎이 흔들렸다. 커다란 파라솔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파라솔 크기보다 조금 작은 원형 탁자에 올망졸망 머리들이 모여있었다. 얼굴 가득 미소가 가득했다.

“정말이지 지각을 일삼는다니까?”

“너무 그러지 마, 나이 많은 이들이 많잖아? 푸후후.”

얼굴을 좌우로 저으며 말하는 은월의 말에 프리드가 곱게 웃었다. 에반이 발을 동당거리며 버터쿠키를 집어먹었다.

“으갸갸갸 날씨 조오타! 돗자리 깔고 한숨 자고싶다.”

“돗자리 챙겨오지 그랬냐, 팬텀. 네가 챙겨왔으면 나도 낮잠이나 한숨 청했을텐데.”

“어라? 내가 언제 빌려준대?”

장난기 가득한 팬텀의 말에 루미너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얼굴을 이상하게 늘이며 팬텀이 약을 올렸다. 루미너스가 팔을 뻗었다. 팬텀이 탁자에서 멀어지고 그 뒤를 루미너스가 쫒았다.

“정말이지, 어쩜 저렇게 힘이 남아돌까..”

“그게 저 녀석들 나름의 우정이잖아? 저렇게 뛰놀다가 오겠지 뭐.”

한심하다는 듯 메르세데스가 팬텀과 루미너스를 쳐다보았다. 아란이 시원스레 웃으며 메르세데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아, 아프리옌이다!”

“미르도 옆에 있네.”

“저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컸네?”

아프리옌과 미르의 모습이 점점 다가왔다. 강한 바람과 함께 내려앉았다. 아프리옌과 미르가 탁자 가까이 다가왔다.

“꾸얽!!”

팬텀이 아프리옌의 다리에 얼굴을 박았다. 요상스런 비명에 모여있던 이들이 어깨를 부들거렸다. 살금살금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에 팬텀이 제 입술을 비죽였다.

“으씨.. 그만 웃어!”

발갛게 변한 제 코를 부여잡으며 팬텀이 의자에 몸을 맡겼다. 루미너스가 그 뒤를 잡았다.

“이봐 팬텀? 나랑 할 이야기가 있지 않았던가?”

입술만 끌어올려 웃는 루미너스의 모습에 팬텀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루미너스..?”

루미너스가 팬텀의 옆구리를 노렸다.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간지럼을 피웠다. 팬텀의 몸이 꿈틀거렸다.

“으하하하 자자잠깐 으항항 마법 걸어논거는 으히히 바, 아하 반칙!! 으하항”

눈물까지 흘리려는 팬텀의 얼굴에 루미너스가 얼굴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루미너스의 손이 멈췄다.

“아, 이제 오나보다.”

마나에 익숙한 이들의 고개가 한 곳으로 몰렸다. 팬텀이 탁자 위로 늘어졌다.

파앗

하얀빛과 함께 여러 인물들이 나타났다.

“여어, 왔어? 검은마법사아?”

“이야 검은마법사잖아?”

“크 검은마법사랑 군단장들이잖아?”

“왔네? 지각쟁이들이네에.”

능글맞은 목소리들이 섞였다. 검은마법사가 머리를 쥐어잡았다.

“휴.. 그만해라..”

검은마법사가 제 로브를 벗으며 의자에 앉았다.

“깔깔깔 검은마법사 깔깔.”

힐라가 환하게 웃으면서 의자에 앉았다. 힐라가 탁자를 치며 윳는 바람에 탁자가 덜걱거렸다. 매그너스가 흐느적거리며 의자에 몸을 의지했다. 손으로 머리를 슬슬 긁더니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매그너스의 상체가 탁자 위로 쓰러졌다.



매그너스의 상체가 팔에 놓여있었다.

“어, 카이저네? 이야, 역시 매그너스 보모!”

“하.. 보모 아니다만. 매그너스 적당히 해라. 오기 전까지 누워있어서 어떻게든 끌고 왔는데 또 엎어지려는 거냐. 대체 그 놈의 성격은 어떻게 되먹은 거냐. 그래가지고 잘도..”

카이저가 매그너스를 붙잡고 잔소리를 계속했다. 반복적인 잔소리에 고개를 저은 이들이 시선을 돌렸다. 매그너스가 정신을 놓기 시작했다. 검은빛이 나타났다. 데몬형제가 모습을 나타냈다. 동글동글한 눈매가 탁자 위의 쿠키에 꽂혔다. 의자에 앉은 둘이 쿠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똑같은 손을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에 작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자, 마시면서 먹어. 목 멕힌다.”

아란이 차를 건네주고 메르세데스가 쿠키를 형제 가까이에 놓아주었다. 에반이 데몬형제를 보며 눈을 빛냈다.

“우앗!”

오르카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검은 구체가 떠올랐다. 구체가 점점 커지더니 오르카로 변했다.

“으으 정말이지, 왜 계속 넘어지는 거야.”

“오르카, 그렇게 빨리 가니까 넘어지지. 그리고 넘어질 때마다 정령으로 변하지마. 그 이유도 있어서 계속 넘어지는 거야.”

“치..”

오르카가 볼을 부풀리고는 의자에 몸을 놓았다. 스우가 제 고개를 저으며 탁자로 향했다.

“여, 정령남매 왔어?”

팬텀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르카가 맞서 손을 흔들고 스우가 목례를 했다.

“흠.”

“우왁!!”

루미너스가 어깨를 움츠렸다. 나온 비명소리에 팬텀이 히쭉 웃었다.

“여어 루미너스으 비명이 참 구수한걸?”

“패앤터엄..!!”

팬텀이 날새게 도망가고 루미너스가 제 로드를 꺼냈다. 팬텀이 멈춰서고 루미너스가 팬텀을 향해 걸어갔다.

“여전하구만, 저 둘은.”

“아 구와르 왔어?”

“.. 진작부터 있었다만..”

“아, 하핫.. 미안..”

아란이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를 하고 구와르가 고개를 저으며 탁자 가까이로 움직였다.

“쉭!”

“이 소린..! 아카이럼이다!”

“허허.. 벌써 많이 모였구려.”

아카이럼이 제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타났다. 커다란 뱀이 걸어가던 아카이럼을 제 몸에 태우고 재빠르게 다가왔다. 어지러웠는지 아카이럼이 몸을 비틀거렸다.

“거 나이도 많은 노인이..”

은월이 고개를 저으며 아카이럼을 들어 의자에 눞혀놓았다. 팬텀의 울음 섞인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어머, 팬텀과 루미너스는 관계가 저렇게 고착되었나 보네요?”

“이피아? 저 둘은 이미 글러먹었다네. 가실까요, 아가씨?”

“이봐! 반레온!!”

반레온이 이피아의 손등에 작게 키스하며 이끌었다. 팬텀과 루미너스가 화를 내려다가 이피아가 반레온의 팔짱을 끼자 입술만 비죽였다.

“아아아 정말이지 날씨 너무 좋은거 아니야?”

“놀러가자!”

“물놀이 가자!!”

“가까이에 강 있던거 같았는데 강에 가요!”

“오오 놀러가는거야? 그걸 원했다구!”

시끌벅적하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미르가 아프리옌의 목에 제 얼굴을 비볐다.

“있죠, 아프리옌. 이게 행복한거죠?”

“그래. 이게 행복이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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멮 12/15 전력 60분

주제: 희생




검불게 피가 말라붙었다. 흩어진 내장들이 피로 샤워를 했다. 팔이 덜렁거리고 옆구리가 뜯어진 메르세데스, 다리 한쪽이 날아가고 머리 한쪽이 함몰된 아란, 양쪽 손목이 떨어져 나가고 옆구리가 헤쳐진 루미너스, 눈이 파이고 어깨까지 사라진 팬텀, 다리가 꺽이고 팔이 떨어진 은월이 프리드의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한쪽 눈이 파여 피를 흘리던 프리드가 몸을 움직였다. 피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모습에 팔을 움직이려던 프리드가 멈췄다. 양쪽 팔이 덜렁이고 발이 꺽이고 옆구리에서 내장이 보이는 모습에 프리드가 멍하니 주변을 둘렀다.

“메르세데스, 아란, 루미너스, 팬텀, 은월.. 왜, 어째서 그러고 있어.. 일어나, 왜 일어나지 못해.. 응? 일어나..”



커다란 동체가 쓰러졌다. 거대한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얇지만 뫂은 강도의 날개피막 역시 찢겨 너덜너덜했다. 반짝이던 몸의 비늘도 떨어져 나가 연한 속살이 찢겨 피를 흘렸다. 프리드의 남은 눈이 흐릿해졌다.

“아.. 으.. 하으..”

프리드의 몸이 구부정해졌다.

“아, 아, 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어린 비명이 터져나왔다.

혼자 남을 이를 위한 희생은 이득인가 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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멮 11/28 전력 60분

주제: 함께







파릇파릇한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렸다. 온통 녹빛과 연두빛으로 가득한 산 속에서 이질적인 얼음벽이 한기를 내뿜었다. 커다란 얼음벽 앞에 작은 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질반질한 광택이 지붕부터 문까지 집을 반짝였다. 얕게 열린 창문 사이로 머리카락이 살랑였다. 얼음벽을 유지한 채 지어진 집은 얼음벽이 뒤를 지지하고 앞으로 방들이 지어졌다. 커다란 얼음벽에는 눈을 감은 이들이 들어있었다.


호록

찻잔에 들린 홍차가 입 속으로 들어가 속을 데웠다. 프리드의 눈이 곱게 휘었다.

“나는 너희를 버릴 수가 없어. 너희를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내가 꿈 꾼 미래에서 너희가 없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걸. 그렇기에 닥쳐올 미래를 틀었어, 내 소중한 친우들.”

얇게 읊조린 프리드가 입꼬리를 올리고는 제 앞 종이에 손을 가져갔다. 펜대가 움직이며 술식을 풀어나갔다.

“나 역시 너희처럼 되어야겠지. 그럴려면.. 필요한 절차야. 나는 너희와 같은 미래에서 살아갈 거거든.”

프리드가 생글생글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담았다. 

“아.”

연신 술식을 풀어나가던 프리드가 고개를 들었다. 공기가 요동쳤다. 파르르 떨리던 공기 사이에서 하얀 불덩이가 튀어나왔다. 불똥이 튀지도 않고 오롯이 타오르던 불꽃이 얼음벽을 향해 돌진했다.

콰앙!

얇은 수증기가 공기로 되돌아갔다.

콰앙! 쾅! 쾅!

연신 불덩이가 얼음벽과 충돌했다.

“흐응.. 강도는 역시 강하구나. 그 정도면 괜찮겠지.”

프리드의 손이 움직였다. 서걱이는 펜소리가 공간을 타고 고막을 거쳐 뇌를 목표로 잡았다. 햇빛이 눈을 감기 시작했다.

꼬르륵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건가... 너희들이 깨어있었다면 벌써 밥 먹으라고 왔을텐데 말이야. 만약 메르세데스와 아란이 요리를 했다면 소화제를 얻으러 왔었겠지만.” 

프리드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얼음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의 이들이 얼음벽에서 수면을 취했다. 광대한 얼음이 그들을 가두고 어두운 탐욕이 그들을 삼켰다. 살풋이 미소가 떠오르는 프리드의 얼굴과는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의 이들이 얼음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프리드가 몸을 일으켜 얼음벽으로 향했다. 두어걸음 떨어진 곳에서 프리드가 손을 뻗어 벽을 짚어 미소를 띄우고는 뒤로 돌아섰다. 짤랑이는 발걸음이 문을 열었다. 닫혀지는 문 사이로 광기어린 미소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야. 그렇지, 내 소중한 친우들?”

딸깍

문이 닫혔다. 더욱 하얗게 배어나오는 한기가 방을 어지럽혔다. 얼음벽이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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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 15.11.07 전력

주제: 변화






“메르세데스, 프리드, 팬텀, 아란, 루미너스, 그리고 은월까지. 우리 메이플 세계는 그 여섯분의 영웅들로 인해서 검은마법사라는 무서어운 적의 위험 없이 살 수 있는 거란다.”

눈을 반짝이는 꼬마아이들 앞에서 음유시인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음유시인의 입이 열리면 열릴수록 꼬마아이들의 눈은 과하게 반짝이며 입을 벌렸다.

“그럼 그럼 영웅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듣는거죠!”

“저는 그러면 영웅이 될래요!”

“나도!!”

아이들의 입이 재잘거렸다. 환하기만 한 아이들의 말에 빨간 목도리를 한 이가 목도리를 끌어올렸다. 목도리의 인영을 누구도 보지 못했는지 주변 이들의 눈에는 아이들만이 비춰졌다.

*

“휴...”

은월이 새빨간 제 귀를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발간 귀와 따끈따끈한 얼굴에 은월이 제 손등으로 애써 얼굴을 가렸다.

“어떻게 저런 말이 나도ㄴ... 다른 곳과 똑같아.. 부끄러워어..!”

얼굴을 손으로 부비적거린 은월이 챙겨온 식료품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탁자가 일렁이며 식품을 받아냈다. 하나씩 내온 은월이 냄비에 스프거리를 넣으며 국자를 들었다. 차근히 돌아가는 국자와 따끈히 퍼지는 스프냄새에 은월의 얼굴이 온화이 풀어졌다. 도톰히 잘린 빵과 따끈한 스프가 탁자 위로 올라오고 은월이 의자에 앉았다.

“오늘도 메르세데스와 아란의 음식을 피한 것에 감사하며.”

몸을 부르르 떤 은월이 빵을 집었다. 냄비 속 스프가 식었다.

*

“메르세데스, 프리드, 팬텀, 아란, 루미너스, 그리고 은월까지. 우리 메이플 세계는 그 여섯분의 영웅들로 인해서 검은마법사라는 무서어운 적의 위험 없이 살 수 있는 거란다.”

눈을 반짝이는 꼬마아이들 앞에서 음유시인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음유시인의 입이 열리면 열릴수록 꼬마아이들의 눈은 과하게 반짝이며 입을 벌렸다.

“그럼 그럼 영웅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듣는거죠!”

“저는 그러면 영웅이 될래요!”

“나도!!”

꼬마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입을 재잘거렸다. 은월이 잡화점으로 몸을 걸쳤다.

“어머, 무엇을 드릴까요? 무엇이든 모두 있는 잡화점입니다.”

상냥한 듯 딱딱한 말소리가 은월의 귀에 들어왔다. 천천히 둘러보다가도 제 몫을 챙긴 은월이 값을 치르고 잡화점을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여전히 눈을 빛내는 꼬마아이들이 음유시인의 곁에 붙어있고 주변 이들의 눈에는 꼬마아이들만이 비쳤다. 재빠른 걸음의 은월이 집에 들어가고 문에 등을 기대섰다.

“어제도.. 저 말을 하지 않.. 녀석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은월이 제 머리를 살짝 만지고는 다시 냄비에 스프거리를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고소한 스프냄사가 집을 채웠다.



“오늘도 메르세데스와 아란의 음식을 피한 것에 감사하며.”

은월이 스프에 빵을 콕 찍어 입에 넣었다. 냄비가 깨끗해졌다. 경직되어 빵을 집어넣고 스프를 먹던 은월이 다 먹은 그릇을 냅두고 침대로 걸어가 쓰러졌다. 그릇이 사라졌다.

*

“메르세데스, 프리드, 팬텀, 아란, 루미너스, 그리고 은월까지. 우리 메이플 세계는 그 여섯분의 영웅들로 인해서 검은마법사라는 무서어운 적의 위험 없이 살 수 있는 거란다.”

눈을 반짝이는 꼬마아이들 앞에서 음유시인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음유시인의 입이 열리면 열릴수록 꼬마아이들의 눈은 과하게 반짝이며 입을 벌렸다.

“그럼 그럼 영웅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듣는거죠!”

“저는 그러면 영웅이 될래요!”

“나도!!”

꼬마아이들이 흐려졌다. 일렁이는 듯한 아이들과 광장의 사람들을 무시한채 은월이 잡화점 내부로 들어갔다.

“어머, 무엇을 드릴까요? 무엇이든 모두 있는 잡화점입니다.”

상냥한 듯 딱딱한 말소리가 은월의 귀에 들어왔다. 잡화점 주인을 빤히 쳐다본 은월이 물건을 집어들고는 값을 치뤘다. 잠화점 주인의 목소리가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연신 흐리고 선명해짐을 반복하는 사람들에 은월이 제 입술을 깨물었다. 은월의 손이 흐려졌다. 은월이 순식간에 집 앞으로 도착하고 문을 열어재겼다.

“후우... 갑자기 이게 무ㅅ...”

‘은ㅇ..’

“누ㄱ..!”

은월의 눈이 커졌다. 흡사 벼락을 맞은듯 동공이 축소된 은월의 머릿 속에 기억이 홍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옹송그린 은월의 몸이 떨렸다.

“흐으.. 아..”

고개 들린 은월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되었다. 있었던 집은 사라지고 멀리 있던 마을이 폐허가 되어 나타났다.

“메르세.. 데스.. 아..란.. 그 들... 로 인해.. 우리가..”

“영웅.. 이.. 될..래요..”

“어..머.. 어서.. 오세요.. 무엇.. 이든... 있는 잡.. 화점.. 입, 니다..”

목이나 팔다리가 꺽이고 폐허조각에 몸뚱이가 찢어져 장기와 피를 흘리고 있어도 그들은 제 자신에게 주어진 말을 입에 담았다.

투둑

“프..리드.. 은.. 월.. 그들.. 걱 후리그아.. 그륵 영웅.. 꺽”

얼굴로 떨어진 폐허에 얼굴 반쪽이 뭉개진 음유시인이 입을 열어 말을 담았다. 은월이 고개를 들었다.

“하아..”

눈물 한방울이 은월의 눈에서 떨어졌다.

“그만.”

은월의 주변이 깨졌다.

*

영롱한 자안이 드러났다. 눈물로 반짝이는 얼굴에 은월의 손이 올라탔다. 꾸욱 쥐어지는 손이 은월의 얼굴을 압박했다.

“망상적인 변화는..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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멮 10/31 전력 60분

주제: 돌아오다





주황색 등불이 밤하늘을 밝혔다. 어린아이들은 저마다 가지각색의 옷을 입은채 입을 모아 사탕을 받아가고 어른들은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온갖 간식거리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누군가가 지붕 위에서 쳐다보았다. 반개한 눈이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없나.. 결국... 결국..!”

금새 눈물로 가득찬 눈동자가 눈꺼풀 사이로 사라졌다.

“거짓말쟁이... 오늘은.. 돌아오는 날이라고 했으면서..!”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모두.. 모두... 모두 보고싶어..!”

얼굴을 무릎에 묻고 잔잔히 어깨가 흔들렸다. 웅크려진 몸체에 살풋 그림자가 졌다.

“에반..”

곱게 웃음지은 메르세데스가 에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반 울지마. 이렇게 왔잖아?”

“아직 애기구나 에반.”

“다시 갈까?”

“에반, 아직 어리네?”

환하게 웃음 짓는 이들의 모습에 에반의 얼굴에 다시 눈물이 아롱졌다.

“으으... 모두...”

울먹거리며 눈물이 턱 아래로 내려오자 에반의 앞에 서있던 영웅들의 표정에 당황이 서렸다.

“어어.. 에반? 왜 우는거야? 응?”

“에반? 울지마, 응? 으어아 더 우는거야?”

“에에에에반??? 울지마 뚝! 뚝!”

“에반?! 뚝! 울지마, 뚝뚝!!”

연신 손을 버둥거리며 울지말라는 말들에 에반이 배시시 웃었다. 남은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보고싶었어요.”

에반의 말 한마디에 영웅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도, 보고싶었어. 무척이나.”

저마다의 굳은살 박힌 손이 에반의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남겨놓고가서 미안했어.”

“너만은 살리고 싶었거든.”

“너는 아직 어리니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

““소중한 아이니까.”

한명씩 나오는 그 말이 종국에는 모두의 입에서 나왔다. 한마디 한마디마다 가득 들어있는 애정에 에반이 행복을 가득 담아 웃음을 지었다.

“형들이랑 누나들이랑 나도.. 나도 너무 소중해요.”

눈, 코 그리고 볼까지 발그레한 에반의 얼굴에 영웅들이 미소지었다.

““슬퍼하지마.””

영웅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개화했던 에반의 얼굴이 바르르 떨리더니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슬퍼하지.. 않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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멮 10/24 60분 전력

주제: 운명


검은빛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에 질투와 패배감이 짙게 서려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향하는 곳에는 휘광이 찬란히 빛나는 갑옷의 인물이 서있었다.

*

“후우... 프로미넌스!!”

빛이 터졌다. 하얗게 점멸되는 시야에서 살풋이 지어지는 미소가 더욱 매그너스의 시야에 들어왔다.

“뭐, 뭐야...”

얼떨떨한 매그너스가 몸을 급히 움직여 뒤를 돌았다. 빛이 터지고 난 뒤 폐허화 된 장소가 슬프게 울었다.

-

“젠장... 내가 여길 왜 온거지.. 배신한 주제에 여길 왜 온거야..! 거기에다가 이미 카이저 그 놈은 뒤지고 없는데!”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매그너스가 길을 헤쳐갔다.

“핫! 하압!”

바람이 흩어지는 소리와 단단한 기합소리가 매그너스의 귀에 잡혔다. 기척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가자 작은 인영이 보였다. 본디 노바는 수명이 긴 종족으로 노바기준으로는 겨우 10세 초반의 육체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움틀거리는 근육의 뒷모습에 매그너스가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얕고 얄팍한 뒷모습에 성인의 모습이 겹쳐졌다.

‘오랜만이군, 매그너스.’

갑자기 들리는 카이저의 목소리에 놀란 매그너스가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선명한 카이저의 모습에 홉뜨여진 매그너스의 눈이 가라앉지 않았다. 매그너스가 사라졌다.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의 카이저가 사라졌다.

“후우...”

“카일!!!”

여린 목소리들이 가까워졌다.

-

“ㅁ, 뭐야.. 카이저 그 놈이 대체 왜... 카이저의 정수라는거 실체화 되는게 아닐텐데? 그거 힘만 전승되는 거잖아.. 그럴리가 없는데..!”

매그너스의 눈동자가 잔뜩 흔들렸다. 고개를 설레설레 돌리던 매그너스가 뒤로 누웠다.

“그럴리가 없...”

매그너스의 눈이 감겼다.

딸깍

*

“하.. 뭐야... 왜 또 노바의 땅이야.. 카이저 저 놈은 왜 살아있는건데... 나는 왜 어려져 있는거고... 하!”

삐뚤어진 웃음을 지은 매그너스가 몸을 돌렸다. 카이저의 눈이 매그너스의 등을 따라갔다.

-

“프로미넌스!”

카이저의 얼굴이 매그너스를 따랐다. 곱게 휘어지는 눈먀와 입꼬리에 매그너스의 눈이 흔들리다 눈을 감았다. 터지는 빛이 밝았다.

“나는... 틀리지 않아!”

이글거리는 매그너스의 눈이 침참되며 가라앉았다.

“나는 틀리지 않아.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침참된 눈이 흔들렸다.

-

“후우... 왜 여길 온거냐... 대체 뭐가 걸려서 이 곳에 온거냐.”

매그너스가 숲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연신 들리는 기합 소리에 매그너스의 귀가 움직였다. 땀으로 젖은 뒷모습이 움틀거리는 등근육을 내보였다. 그리고 성인의 카이저가 나타났다.

‘오랜만이군, 매그너스.’

곧은 눈동자가 매그너스를 향했다. 점점 떨리던 매그너스의 몸이 사라졌다. 씁쓸한 미소의 카이저가 곧 사라졌다. 여린 몸체가 검을 휘둘렀다.

-


“아냐.. 아냐.. 아냐... 그럴리가 없잖아.. 그 놈이 왜? 그 놈이 어째서? 배신을 한 나에게 그럴리가 없잖아!”

덜덜 떨리던 매그너스의 몸이 쓰러졌다.

딸깍

*

“아닐거야!!! 아닐거야!!! 아닐거라고!!!”

책상에 손모양 그대로 부서졌다. 손에 모인 나무조각들에 매그너스가 손을 털었다.

“후우... 다시, 다시 가보는거야...”

떨리는 손을 애써 매그너스가 강하게 쥐었다.

-

“오랜만이야, 매그너스.”

여린 몸체가 멍한 눈으로 매그너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고작 6살정도로 보이는 어린 몸체가 매그너스의 몸에 얼음물을 들이부었다. 매그너스가 옅은 빛과 함께 사라지고 어린 몸체가 쓰러졌다.

어두운 방안과 동화된 매그너스의 몸이 구석에 앉아 입을 놀렸다.

“아냐아냐아냐아냐그럴리없어그럴리없어그럴리없어그놈이그놈이그럴리없어배신한녀석이뭐가좋다고계속봐주겠어그냥죽이고말지그럴리없어그럴리없어”

연신 중얼거리던 매그너스의 몸이 쓰러졌다.

딸깍

*

“오랜만이야, 매그너스”

어린 몸체가 환하게 웃었다.

딸깍

*

“오랜만이야.. 매그너스.”

어린 몸체가 웃었다.

딸깍

*

“오랜.. 만이야.. 매그너스.”

어린 몸체가 웃었다.

딸깍

*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
·
·
·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

“오...랜만이야.. 매..그너스...”

어린 몸체가 눈을 붉힌채 웃었다.

딸깍

*

“하... 그래...”

어두운 방 안에서 매그너스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킥.. 크크크크크... 그래.. 네가 이겼어. 카이저. 매번 배신하는 나에게 웃으면서 말이야.. 크크크크크 그래.. 네가 이겼다. 이제 너를 배신하지 않아. 매번 배신하는 놈을, 회귀를 할 때마다 배신하는 놈을 그냥 냅두고 배신한 후에 찾아가도 오랜만이라면서 웃는 네놈에게.. 내가 졌다.”

비틀리면서도 시원한 웃음을 지은 매그너스가 쓰러지 듯 잠이 들었다.

-

번쩍

금빛 눈동자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하.. 뭐야? 왜.. 회귀하지 않아? 왜왜왜왜왜!!! 어째서! 어째서 회귀하지 않아?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제야 겨우 인정했는데 이제야 겨우..!! 그 녀석을 쳐다보겠다고 인정했는데!!”

이글거리던 눈동자가 사라졌다.

-

비틀거리면서도 급한 발걸음 소리가 숲을 요란스레 만들었다. 여린 동체가 있는 곳에 매그너스가 나타났다. 숨을 내쉬는 매그너스와 어린 동체가 마주섰다. 어린동체가 웃었다. 성인의 모습이 흔들리면서도 선명해졌다.

“오랜만이야.. 매그너스... 보고싶었어.”

“카이저!”

조금은 비틀거리는 매그노스의 모습에 카이저가 다가섰다.

“많이 이야기는 못해주지만.. 아니 내 욕심이였나봐 너를 그리 보내는게 아니였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당장 말해!!”

매그너스의 금안에 선명히 고이며 떨어지는 눈물에 카이저의 손이 다가갔다. 조심스레 눈물을 닦아주며 카이저가 입을 떼었다.

“나는 운명을 비틀고싶었다 네가 나의 곁에 없는 그 운명을 그리고 내기를 했지 네가 100번의 회귀 안에 배신하지 않고 곁에 있는다면 나의 승리.. 네가 곁에 없다면 너와 나의 운명의 승리.. 결국 우리의 운명이 이기고 만거다.”

씁쓸한 카이저의 얼굴에 매그너스가 연신 눈물을 흘렸다. 무표정한 채 눈물만 흘리는 매그너스의 모습에 카이저가 눈물을 닦아냈다.

“으.. 아... 하으..”

매그너스의 매끈한 이마를 드러낸 카이저가 입술을 맞췄다.

“연모한다. 매그너스.”

선명했던 카이저의 몸이 사라지고 어린 동체가 남았다. 어린 동체가 매그너스의 앞으로 쓰러지고 매그너스가 어린 동체를 잡았다. 바닥에 동체를 누인 매그너스가 사라졌다. 여린 목소리들이 어린 동체가 있는 곳으로 가까워졌다.

*

“너는...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매그너스가 벽에 등을 기댄채 눈물을 흘렸다. 손으로 카이저의 입술이 닿았던 이마를 더듬은 매그너스가 눈물을 그치지 못한채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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