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가 전력 6/2


주제: 녹음


과거날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매미소리가 시작됐다. 여름이 시작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끄러운 녀석들이었다.

“그아아 카게야마!”

“보게! 히나타 보게!”

“키요코씨이이이이”

사와무라가 슬그머니 목 뒤를 짚었다. 꾹꾹 누르고는 숨을 내쉬었다. 여름 해가 쨍쨍한 가운데 눈 부시도록 옅은 색의 인물로 시선이 돌아갔다. 천천히 가라앉았다.

“모두 그만!!”

얌전히 정좌한 이들 앞으로 든든한 등이 바로섰다.


*


밤이 되었지만 여전히 뜨거웠다. 흘린 땀은 쿨시트로 닦았지만 땀냄새가 나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해도 이미 후각은 모르는 채였다. 흘끗 시선이 움직였다. 근육통으로 인해 늘어진 몸과 하얀 피부는 자극적이었다. 기실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와무라 다이치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짝사랑 중이었다.

사와무라의 감정이 언제부터였는지에 대해서는 과거로 돌아가야 했다.


기대하던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들어간 사와무라는 입을 꽉 다물며 체육관을 향했다. 작은거인이 있던 체육관에서 3년간 배구를 하고 전국대회에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체육관은 새로웠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얇은 머리카락과 함께 하얀 피부가 도드라졌다. 서둘러 시선을 돌렸지만 시선이 계속 향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곧 카라스노 선배들과 마주쳤다.



시간은 빨랐다. 사와무라의 두근거리는 심장은 왜인지 스가와라의 옆일때면 더욱 거세게 뛰었다. 뒷목과 귀로 오르는 열의 원인을 알지 못 해 속으로 묵혔다. 사와무라와 스가와라, 아즈마네가 길을 걸었다. 입에는 저마다 가리가리군을 물고 아삭아삭 씹었다.

“아 진짜 벌써 이렇게 더워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구우!”

스가와라가 툴툴거리며 가리가리군을 크게 물었다. 아즈마네의 시선이 가리가리군을 향했다.

“그건 그래.. 이렇게 빨리 흐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배시시 웃는 아즈마네에 스가와라와 사와무라가 입을 슬쩍 벌렸다.

“하여간.. 섬세해..”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스가와라가 다먹은 막대를 입에 물고 삐죽였다. 얌전히 가리가리군을 먹던 사와무라가 말을 뱉었다.

“아. 매미허물.”

쫑긋 스가와라가 몸을 기울였다.

“매미허물? 벌써? 진짜 여름이 오나 본데?”

“히이ㅣㅣ 스가ㅏㅏㅏ 어디 가는거야?!”

“스가?”

스가와라가 통통 걸어 사와무라의 시선이 닿았던 곳으로 향했다. 애매한 녹음이 펼쳐진 곳이었다. 적당히 커다란 나무들과 듬성듬성한 잡초에 의해 드러나는 흙 사이의 작은 매미허물이 있었다. 천천히 사와무라가 발걸음을 옮겼다. 달달달 아즈마네가 팔을 저었다.

“왜 가는거야아... 다이치이...”

그 사이 스가와라가 매미허물을 쥐고 살펴보는 중이었다. 마냥 반짝이는 눈이 매미허물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톡톡 건드렸다. 반짝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매미허물 보는 것 같아! 이거 봐!”

아래로 내려오는 나무그늘과 저 멀리의 약한 가로등빛, 그리고 환한 스가와라의 얼굴 그 모든 장면이 사와무라의 눈에 들고 뇌에 들었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아빠가 너네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어땠는 줄 아니, 다이치? 너네 엄마가 정말 예뻤거든.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지. 넓은 챙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그늘과 뽀얀 피부가 어우러졌고 해변이라 입은 원피스는 몸에 잘 맞아 바닷바람에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지. 그 때의 얼굴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 할거야.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내 심장이 아래로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단다. 그러면서도 심장이 엄청나게 뛰었지. 뒷목과 귀, 얼굴로 열이 뜨끈하게 오르고 나는 그 날 그 시점부터 사랑을 했단다.’

사랑이 시작되는 건 사소했지만 강렬했다.

“어..? 다이치 괜찮아? 뒷목이 엄청 빨간데? 귀랑 얼굴도 그러잖아? 혹시 오늘 무리한 거야?”

아즈마네의 말에 의해 사와무라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 괜찮아. 별 거 없어. 밤이 되어도 더우니까 그런 거지. 돌아가자. 스가! 매미허물 그만 놓고 집에 가자!”

“어? 알았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름 특유의 눅눅하고 물내나는 바람이 흔들렸다. 흘끗 더위로 흐르는 땀방울이 스가와라의 목선을 타고 흘렀다.




*




시미즈와 아즈마네는 각자 볼 일이 있어 갈라지고 사와무라와 스가와라만이 돌아가는 길이었다. 비가 올 듯 눅눅한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가방 한쪽에 있을 우산이 무거웠다.

“오늘도 카게야마랑 히나타는 기력 넘쳤지? 나중에 선배가 되어도 그럴 거 같아서 조금 걱정이야.”

키득키득 스가와라가 웃었다. 달랑달랑 손을 흔들면서 걸었다. 살짝씩 손등이 스치면 사와무라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그저 귀여운 듯 사와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소나기가 올 것 같았다. 멈춰섰다. 과거 심장이 떨어지며 뛰던 그 장소였다. 콧망울에 빗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푸른 녹음 위로 비가 쏟아졌다. 다급하게 비를 피하려는 스가와라를 보며 사와무라가 우산을 꺼내 들었다. 스가와라의 손에 우산을 쥐어주었다.

“다이치?”

“좋아해 스가.”

비가 오고나면 녹음은 더 푸를 것이 분명했다. 빗방울에 감정이 흘러가는 것이 된다면 좋을텐데 라고 머리 한구석이 중얼거렸다.

캐비어님 심해어들 을 제 문체로 바꿔 썼습니다 :D
https://cavhq0.postype.com/post/248810





두근두근 두근 두근 두 근 이 것이 아니라면

혹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이 아닐까.

야마구치 타다시는 심장이 뛰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항상 머리로는 차분해야 한다고 되뇌면서도 이런 생각의 근본부터 차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도록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생각을 이었다. 현재 해야할 것. 처음 쉴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두, ㅅ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죽지 않아 죽지 않아 숨. 을 쉬면 죽지 않아. 숨을 쉰다 숨을 쉰. 막혔다. 숨이 막혔다. 진공상태에 들은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진공상태도 아니었고 숨을 쉬어야 했다. 숨을 들이마셨다. 들이켜선 안 되었음에도 들이켰다. 쉽게 숨을 헐떡였다. 주변에 숨겨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여를 없이 야마구치 타다시는 숨을 쉬어야 했다. 숨을 들이쉬고 들이쉬고 들이쉬고 들이쉬고 들이쉬고 들이쉬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생리적으로 맺힌 눈물 속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깊은 바다를 생각했다. 만약 깊은 바다에 잠긴다면, 아니. 깊은 바다에 사는 심해어가 뭍으로 나온다면 야마구치 타다시처럼 한껏 발버둥 치고 숨을 쉬려 발악했을 거라 생각했다. 흐린 눈으로 시야를 확인했다. 도드라지는 시각적으로 길고 노란 것. 그리고 것들. 사람. 사람들. 걱정하면, 들이켠 공기가 아프고 짜 폐를 찔렀다. 폐인가 기관지인가. 차라리 기절한다면 편할 것을 이라 생각하며 입으로는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려 했다. 안정하도록 괜찮아 까지,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다. 아파. 아파. 아파. 숨. 괜찮. 아파. 살려. 살려주세요. 아파. 아파. 아파. 살려, 살려줘.
무언가 감싸졌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이 것이 올바른 것이라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한들 숨이 부족한 것은 틀림없었다. 숨을 쉬어야 했다. 가장 익숙한 목소리를 어눌하게 인지했다. 알고 있는 것. 알고 있어. 살려줘. 도와줘. 뭍에선 숨을 쉴 수가 없다.

열넷의 누군갈 구한 것처럼.



숨 쉴 수 없었다. 밤늦게까지 숙제를 하느라 잠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혹은 중간고사 성적에 대한 부모의 유독 차가운 말 때문일지도 모른다. 학교에 늦으면 필히 부모의 꾸중을 들을 테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니, 아직 괜찮을 거다. 빨리 정신을 차리면 된다. 늦지 않는다. 아직 츠키시마에게 답장하지 못했다. 미안해. 곧 괜찮아질거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숨을 내쉬면 된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ㄷ. 괜찮지 않다. 순식간에 억눌리고 압도당했다. 무섭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살려주세요. 그 단 한마디마저 나오지 못한 채 꺽꺽거렸다. 현관바닥의 차가운 냉기마저 느끼지 못하고 위에서 억눌리 듯 통증이 일었다. 물고기가 안온한 바다에서 공기 중으로 나온 듯 펄떡이며 숨을 갈망했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공기 중에서 익사하는 중이었다.
아주 작은 온기마저 없는 곳에서 뿌옇게 흐려졌다. 정신을 잃는 것과 달랐다. 차라리 그 것이 나았다. 육체에 휩쓸리는 중이었다. 숨을 쉬고 쉬고 쉬고 쉬었음에도 숨이 부족했다. 키가 자랐음에도 숨을 담기엔 부족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바닥을 애써 기었다. 괜찮아 라는 말 따위는 도움 되지 않는다. 사실을 인지했다. 아무도 없었고 없으며 없을 것인 이곳엔 오롯이 혼자였다. 야마구치 타다시라는 개체 혼자 받아내고 인내해야 할 일이었다. 후에 죽을 거라는 무서운 공포가 닥쳐와도 홀로 감내해야 할 것을 알기에, 앞으로 얼마나 이어지고 얼마나 수많을지를 알기에 더더욱 비참했다.

현관은 어두웠다. 시야라기보다 위치적으로 빛이 적은 곳이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현관문은 열렸고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부모일 리는 없다. 시간도 시간이었고 그들이라기엔 조심스러웠다. 얼핏 소리를 들은 느낌이 있었지만 그럴 리 없다. 이토록 무섭고 아프고 외로운 상태이기에 환청과 환각을 보는 거라고 여길 수 있었다. 어쩌면 주마등일지도 모른다. 죽을 때 주마등을 본다고 들었으니 그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금색으로 물들었다. 작은 온기가 따뜻했고 몸이 흔들리는 감촉을 느꼈다. 숨이 부족했다. 숨을 들이켜고 들이켜고 들이켜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금색이 내려왔다.


야마구치 타다시의 세계가 회전했다. 그제야 인식할 수 있었다.


츠키시마 케이가 정석의 인공호흡을 한 건 아니었다. 키스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숨과 숨을 교환해 호흡한 것. 종이봉투나 비닐을 이용한 것과 같은 그런 것이었다. 그럼에도 야마구치 타다시라는 개체는 인식했다. 붉은 아가미로 생그러운 물이 가득 올라 차고 바스러지던 세계 사이로 따스한 온기가 품을 가득 데우고 끌어안은 것을.

바다가 생겨났다.
받지 못했던 것을 받았다.
최초의 호흡이었다.





츠키시마 케이가 야마구치 타다시의 얼굴을 덮었다. 둥글게 만든 손으로 코와 입을 감싼 것이었다.

“누구든 종이봉투, 비닐도. 아니 뭐든 좋으니까, 부탁드립니다.”

츠키시마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을 본 이는 드물었다. 그것을 본 사람은 츠키시마의 품 안에서 숨을 쉬기 위해 꺽꺽였다. 사람이 익사하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공포인지 두려움인지 혐오인지 모를 감정이 섞였다. 걱정보다 크게 감도는 죽음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과 도망치고 싶은 감정 사이의 혼란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스가와라인가 히나타인가 그것조차 모를 만큼 츠키시마는 야마구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야마구치. 괜찮아. 정신 차려. 야마구치. 야마구치. 야마구치. 진정해. 야마구치. 야마구치. 괜찮아. 야마구치.”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야마구치를 껴안고 등을 쓸었다. 계속 말을 걸었다.

“야마구치. 진정해. 괜찮아. 숨 쉬어. 천천히. 야마구치. 얕게 쉬어. 깊게 쉬지 마. 야마구치. 야마구치. 내 말 들려? 괜찮아. 괜찮아.”

야마구치 타다시를 진정시키기보다 츠키시마 케이를 진정시키는 것에 가까웠다. 침착하지 못한 채 야마구치의 손 위에 손을 다시금 겹쳤다.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린 손을 마찬가지로 하얗게 질린 손으로 쥐며 말을 걸었다. 야마구치의 의식을 어떻게든 잡으려 노력했다. 야마구치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을 천천히 피며 깍지꼈다.



우카이도 타케다도 오래 걸린다. 구급차는 소용이 없을 거다. 짧디짧은 시간이 길어 츠키시마는 불안했다. 알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종이봉투가 한계였다. 현재 야마구치 타다시의 상태를 몰랐다. 츠키시마 케이는 무지하고 무력했다. 자신을 향해 차오르는 혐오감에 야마구치를 더욱 강하게 잡았다. 애써 숨을 절제하며 야마구치의 호흡기를 손으로 감쌌다. 숨이 손바닥에 닿았다. 와중에 철제난간을 만진 손에서 쇠 냄새가 날까 걱정했다. 숨을 쉬려는 간절함이 손목을 쥐는 데도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 튀어나간 것에 혐오했다. 야마구치의 손은 차갑고 따스했다. 야마구치의 몸을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야마구치는 숨을 쉬기 위해 노력했다. 츠키시마의 손 위로 손을 눌렀다. 몸을 웅크리는 야마구치를 따라 츠키시마가 움직였다. 맞닿은 몸으로 야마구치의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은 느린 것도 빠른 것도 느껴졌다. 분명한 건 츠키시마 케이의 심장은 그보다 빨랐다.


츠키시마는 야마구치와 부실로 향했다. 조금 어두우며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침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츠키시마는 최대한 사와무라와 스가와라에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두 명은 어른이 오기 전까지 야마구치를 츠키시마에게 맡겼다. 기실 맡기기보다는 츠키시마를 살피고 수긍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 두 명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압도당한 것뿐이었다.
야마구치의 등이 캐비닛에 기대어졌다. 야마구치의 손이 뻗어졌다. 츠키시마가 숨을 크게 마셨다. 몸을 낮추었다. 힘 하나 없이 기댄 야마구치의 눈에 초점이 있는지 없는지 츠키시마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입술을 붙였다. 입술이 부드럽고 따스한 것에 대해 츠키시마는 생각을 이어도 안 되었고 생각해서도 안 되었다. 그저 이것으로 야마구치가 숨을 쉬게 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해야 했다. 과호흡 상대에게 이것은 효과적이다. 정확히는 과호흡의 야마구치에게. 거리낌 같은 건 없다. 그래야 한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로 들리는 것은 그저 야마구치의 안위에 대한 것뿐이었다. 폐가 터질 만큼 길고 커다란 숨을 야마구치에게 불어넣었다.
안온한 바다가 차올랐다.


천천히 숨이 되돌아오는 야마구치가 숨을 내쉬었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헐떡이지 않았다. 츠키시마 케이로서는 야마구치 타다시가 바다로 돌아간 것인지 바다에서 꺼내진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야마구치의 초점이 조금씩 돌아오고 무언가 말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 다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

가볍게 야마구치의 턱을 잡아 올렸다. 작게 벌어진 입에 입을 맞췄다. 고개를 살짝 틀고 입술을 제대로 맞물렸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이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때야 츠키시마 케이는 온전히 숨 쉬었다.

크게. 숨 쉬었다.

다이스가 전력 03/31

주제: 거짓말


판타지au
사와무라 다이치 : 퇴역 기사
스가와라 코우시 : 퇴역 마법사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짙게 물든 하늘 아래로 그림자 두개가 길게 늘어졌다.

“이걸로 될까.”

“... 되지 않을까?”

스가와라가 사와무라를 쳐다보았다. 사와무라의 손이 스가와라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를 꼈다.

“떠나서 행복하면 되잖아. 우리는 그럴 수 있어.”

바닥을 딛고 걸음을 옮겼다. 움직이는 그 뒤편으로 검게 물든 바닥이 울렁였다.

*

“코우시!”

한 손에 몬스터를 잡은 다이치가 코우시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붕붕 손을 흔들며 후다닥 달려왔다.

“다이치! 바로 안 가고 또 여기로 왔어?”

“음.. 그야 코우시가 보고싶으니까.”

다이치가 코우시를 껴안고 이마를 맞대 부볐다. 배시시 웃음이 튀어나왔다.

“허이고... 징글징글하다 진짜.. 매일매일..”

늙그막한 노인이 혀를 쯧쯧 차며 다이치와 코우시를 바라보았다. 탁자를 탁 손바닥으로 쳤다.

“떽! 그만하고 어여 가봐, 다이치 네 녀석! 아이고 사랑하는 레일나 어째서 그리 빨리 가버렸소! 저 녀석들 꼬라지를 보니 당신이 생각나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구려. ”

천연덕스레 눈가를 콕콕 찍으며 다이치를 째려보는 노인에 의해 어색한 웃음을 뱉었다. 코우시가 소근소근 입을 우물였다.

“다이치 어서 가봐. 타이로 할아버지가 더 심하게 째려보실라.”

왼쪽 눈을 찡긋 윙크하고 코우시가 다이치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코우시이.. 엉덩이는 토닥이지 말라니까.. 정말..”

다이치가 난감한 듯 바라보다가 쪽 코우시의 눈에 입 맞췄다.

“있다가 집에서 보자, 코우시.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다이치가 쏙 피해 나갔다. 홀로 남은 코우시를 향해 노인이 지그시 응시했다.

“거... 참... 에잉 정말이지. 어쩌다가 저런 녀석들이 왔는지 이거 참!”

“하.. 하... 할아버지 약초 캐올까요?”

찌릿 노인이 코우시를 흘겼다.

“말 돌리려고 하지 마라 요 놈! 뭐 다녀오긴 해라. 토리 녀석이 또 산을 타고 뛰다가 넘어져서 무릎팍을 다 깨먹고 와서 재생초가 좀 부족할 참이다. 어여 다녀와.”

“알겠어요. 다녀올게요 할아버지.”

주섬주섬 망태를 챙겨 문을 나서는 코우시의 뒷모습을 노인이 흘끗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고 노인이 의자에 앉았다.

“쯧...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녀석들인지.. 정 주면 안되는데 잔뜩 주고받아 버렸으니..”

주섬주섬 곰방대를 꺼낸 노인이 끔뻑끔뻑 연기를 피웠다.

-

쭈욱 기지개를 핀 다이치가 길을 걸었다. 어두운 밤하늘은 을씨년스러웠다.

“으음... 이 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대략 5년인가... 떠날 때.. 가 되었네.”

씁쓸한 미소를 지은 다이치가 터덜터덜 길을 걸었다. 계속 걷고 걸어 저 쪽 불빛이 켜진 집을 발견하고 얼굴이 환해졌다. 걸음을 빨리했다.

“코우시 나 왔어.”

“다이치 왔어?”

약초를 만지던 코우시가 배시시 웃었다. 코우시를 향해 뽀르르 달려간 다이치가 꼬옥 껴안았다. 얼굴을 잔뜩 부볐다.

“으아아.. 코우시다..”

“다이치 간지럽다구우!”

핀잔을 주는 듯 쳐다보면서도 정작 팔을 풀지는 않았다. 꼭꼭 껴안고 상대의 온기를 즐겼다. 다이치의 입이 코우시의 귓가에서 웅얼였다. 순간 굳었던 코우시의 몸이 부드럽게 풀렸다.

“자자 일단 피곤하니까 씻고 잘까? 음.. 같이 들어가?”

일부러 짖궂게 다이치를 보며 턱을 잡은 코우시가 낼름 다이치의 입술을 핥았다. 앙 코우시의 입술을 문 다이치가 잘게 뽀뽀했다.

“같이 들어오기만 할 거면서 응?”

키득키득 웃으며 콩 이마를 부딪쳤다. 등을 토닥이는 코우시에 의해 다이치가 팔을 풀었다. 밤은 더욱 깊어졌다.



눈만 나타나 달빛에 반짝였다. 어두운 공간 속 어렴풋이 보이는 작은 집을 향해 무언가가 움직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둥글게 부푼 침대에 칼날이 박혔다. 이불이 난도질 당하며 흩어졌다.

“...!”

어느새 두 명이 줄어있었다. 눈만 보이던 이들이 약간의 당황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밤손님이군.”

“질리게도 오네.”

코우시가 얼굴을 질색팔색하며 찌푸렸다. 다이치가 툭 코우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정해, 코우시. 어차피 그런 건 알고 있었잖아.”

뾰로통 코우시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 사이, 여러개의 날날이 둘을 향해 날아왔다.

천천히 불길이 치솟았다.

집 밖에서 코우시가 손을 모았다. 살짝 빛나는 흰빛이 코우시의 손을 물들였다. 집의 주위로 쳐진 반투명한 막에 의해 연기마저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이치.”

“응.”

숲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속속이 나타났다. 다이치가 검을 들어올렸다.

“와라.”



숲으로 숲으로 깊게 들어갔다. 수없이 몰려오는 이들에 의해 땀으로 젖은 다이치와 코우시가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

“후우...”

주변이 둘러 싸였다.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등이 맞닿았다. 손을 내리고 깍지를 껴 강하게 잡았다. 짧은 스킨쉽을 끝으로 입을 열었다.

“푸른 빛이 가득하고.”

“붉은 빛이 가득한.”

““그 곳에서.””

다이치와 코우시가 각자 다른 곳으로 등졌다.

“사랑해. 있다가 보자.”

“사랑해. 있다가 보자.”

둘로 나뉜 다이치와 코우시의 뒤를 검은 그림자들이 우르르 쫒았다. 쫒던 그림자들이 멈춰서 반대로 달렸다. 코우시의 쪽으로 향했던 그림자들이 다이치 쪽으로 달려갔다. 꽤나 많은 수가 여전히 남아 코우시 뒤를 쫒았다.

‘사와무라를 먼저 죽여라. 서로 의지하고 있겠지만 사와무라가 먼저 죽으면 스가와라는 어느정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때를 노리면 되겠지.’

말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흐아... 징글징글하게.. 진짜..!”

튀어나온 단검이 날아가 검은 그림자를 공격했다. 날카로운 바람에 검은 그림자가 반토막 나며 쓰러졌다. 이곳저곳 베이고 화상을 입은 코우시가 주변에 가득한 시체를 두고 나무에 기댔다.

“후아.. 하.. 뭐지... 왜.. 다이치!”

스가와라가 고민을 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제발.. 제발.. 제발... 다이치..!”

피냄새가 짙어졌다. 점점 칼에 베이고 무딘칼에 찢긴 시체가 많아졌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의 흔적이 이어졌다.

“다이치... 다이치... 제발...”

스가와라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코를 가득 메운 피비린내 사이로 말소리가 들렸다.

“돌아가자. 스가와라 코우시를 잡아야한다.”

스가와라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뒤 쫒던 녀석들은 죽였을 것. 바로 쫒아가면 이 쪽으로 오는 녀석을 발견하겠지. 출발하지.”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숲 속에서 스가와라가 최대한 몸을 숙이고 입과 코를 막았다. 스산한 가운데 들리지 않던 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제야 스가와라 코우시는 움직였다. 피로 가득하고 사람 조각이 만연한 가운데 사와무라 다이치가 있었다. 알아 볼 수 있는 건 수년간 보고 섞었던 몸뿐이었다.

“다시 보자는 건.. 못 지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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