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가 전력 03/31

주제: 거짓말


판타지au
사와무라 다이치 : 퇴역 기사
스가와라 코우시 : 퇴역 마법사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짙게 물든 하늘 아래로 그림자 두개가 길게 늘어졌다.

“이걸로 될까.”

“... 되지 않을까?”

스가와라가 사와무라를 쳐다보았다. 사와무라의 손이 스가와라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를 꼈다.

“떠나서 행복하면 되잖아. 우리는 그럴 수 있어.”

바닥을 딛고 걸음을 옮겼다. 움직이는 그 뒤편으로 검게 물든 바닥이 울렁였다.

*

“코우시!”

한 손에 몬스터를 잡은 다이치가 코우시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붕붕 손을 흔들며 후다닥 달려왔다.

“다이치! 바로 안 가고 또 여기로 왔어?”

“음.. 그야 코우시가 보고싶으니까.”

다이치가 코우시를 껴안고 이마를 맞대 부볐다. 배시시 웃음이 튀어나왔다.

“허이고... 징글징글하다 진짜.. 매일매일..”

늙그막한 노인이 혀를 쯧쯧 차며 다이치와 코우시를 바라보았다. 탁자를 탁 손바닥으로 쳤다.

“떽! 그만하고 어여 가봐, 다이치 네 녀석! 아이고 사랑하는 레일나 어째서 그리 빨리 가버렸소! 저 녀석들 꼬라지를 보니 당신이 생각나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구려. ”

천연덕스레 눈가를 콕콕 찍으며 다이치를 째려보는 노인에 의해 어색한 웃음을 뱉었다. 코우시가 소근소근 입을 우물였다.

“다이치 어서 가봐. 타이로 할아버지가 더 심하게 째려보실라.”

왼쪽 눈을 찡긋 윙크하고 코우시가 다이치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코우시이.. 엉덩이는 토닥이지 말라니까.. 정말..”

다이치가 난감한 듯 바라보다가 쪽 코우시의 눈에 입 맞췄다.

“있다가 집에서 보자, 코우시.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다이치가 쏙 피해 나갔다. 홀로 남은 코우시를 향해 노인이 지그시 응시했다.

“거... 참... 에잉 정말이지. 어쩌다가 저런 녀석들이 왔는지 이거 참!”

“하.. 하... 할아버지 약초 캐올까요?”

찌릿 노인이 코우시를 흘겼다.

“말 돌리려고 하지 마라 요 놈! 뭐 다녀오긴 해라. 토리 녀석이 또 산을 타고 뛰다가 넘어져서 무릎팍을 다 깨먹고 와서 재생초가 좀 부족할 참이다. 어여 다녀와.”

“알겠어요. 다녀올게요 할아버지.”

주섬주섬 망태를 챙겨 문을 나서는 코우시의 뒷모습을 노인이 흘끗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고 노인이 의자에 앉았다.

“쯧...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녀석들인지.. 정 주면 안되는데 잔뜩 주고받아 버렸으니..”

주섬주섬 곰방대를 꺼낸 노인이 끔뻑끔뻑 연기를 피웠다.

-

쭈욱 기지개를 핀 다이치가 길을 걸었다. 어두운 밤하늘은 을씨년스러웠다.

“으음... 이 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대략 5년인가... 떠날 때.. 가 되었네.”

씁쓸한 미소를 지은 다이치가 터덜터덜 길을 걸었다. 계속 걷고 걸어 저 쪽 불빛이 켜진 집을 발견하고 얼굴이 환해졌다. 걸음을 빨리했다.

“코우시 나 왔어.”

“다이치 왔어?”

약초를 만지던 코우시가 배시시 웃었다. 코우시를 향해 뽀르르 달려간 다이치가 꼬옥 껴안았다. 얼굴을 잔뜩 부볐다.

“으아아.. 코우시다..”

“다이치 간지럽다구우!”

핀잔을 주는 듯 쳐다보면서도 정작 팔을 풀지는 않았다. 꼭꼭 껴안고 상대의 온기를 즐겼다. 다이치의 입이 코우시의 귓가에서 웅얼였다. 순간 굳었던 코우시의 몸이 부드럽게 풀렸다.

“자자 일단 피곤하니까 씻고 잘까? 음.. 같이 들어가?”

일부러 짖궂게 다이치를 보며 턱을 잡은 코우시가 낼름 다이치의 입술을 핥았다. 앙 코우시의 입술을 문 다이치가 잘게 뽀뽀했다.

“같이 들어오기만 할 거면서 응?”

키득키득 웃으며 콩 이마를 부딪쳤다. 등을 토닥이는 코우시에 의해 다이치가 팔을 풀었다. 밤은 더욱 깊어졌다.



눈만 나타나 달빛에 반짝였다. 어두운 공간 속 어렴풋이 보이는 작은 집을 향해 무언가가 움직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둥글게 부푼 침대에 칼날이 박혔다. 이불이 난도질 당하며 흩어졌다.

“...!”

어느새 두 명이 줄어있었다. 눈만 보이던 이들이 약간의 당황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밤손님이군.”

“질리게도 오네.”

코우시가 얼굴을 질색팔색하며 찌푸렸다. 다이치가 툭 코우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정해, 코우시. 어차피 그런 건 알고 있었잖아.”

뾰로통 코우시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 사이, 여러개의 날날이 둘을 향해 날아왔다.

천천히 불길이 치솟았다.

집 밖에서 코우시가 손을 모았다. 살짝 빛나는 흰빛이 코우시의 손을 물들였다. 집의 주위로 쳐진 반투명한 막에 의해 연기마저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이치.”

“응.”

숲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속속이 나타났다. 다이치가 검을 들어올렸다.

“와라.”



숲으로 숲으로 깊게 들어갔다. 수없이 몰려오는 이들에 의해 땀으로 젖은 다이치와 코우시가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

“후우...”

주변이 둘러 싸였다.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등이 맞닿았다. 손을 내리고 깍지를 껴 강하게 잡았다. 짧은 스킨쉽을 끝으로 입을 열었다.

“푸른 빛이 가득하고.”

“붉은 빛이 가득한.”

““그 곳에서.””

다이치와 코우시가 각자 다른 곳으로 등졌다.

“사랑해. 있다가 보자.”

“사랑해. 있다가 보자.”

둘로 나뉜 다이치와 코우시의 뒤를 검은 그림자들이 우르르 쫒았다. 쫒던 그림자들이 멈춰서 반대로 달렸다. 코우시의 쪽으로 향했던 그림자들이 다이치 쪽으로 달려갔다. 꽤나 많은 수가 여전히 남아 코우시 뒤를 쫒았다.

‘사와무라를 먼저 죽여라. 서로 의지하고 있겠지만 사와무라가 먼저 죽으면 스가와라는 어느정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때를 노리면 되겠지.’

말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흐아... 징글징글하게.. 진짜..!”

튀어나온 단검이 날아가 검은 그림자를 공격했다. 날카로운 바람에 검은 그림자가 반토막 나며 쓰러졌다. 이곳저곳 베이고 화상을 입은 코우시가 주변에 가득한 시체를 두고 나무에 기댔다.

“후아.. 하.. 뭐지... 왜.. 다이치!”

스가와라가 고민을 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제발.. 제발.. 제발... 다이치..!”

피냄새가 짙어졌다. 점점 칼에 베이고 무딘칼에 찢긴 시체가 많아졌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의 흔적이 이어졌다.

“다이치... 다이치... 제발...”

스가와라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코를 가득 메운 피비린내 사이로 말소리가 들렸다.

“돌아가자. 스가와라 코우시를 잡아야한다.”

스가와라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뒤 쫒던 녀석들은 죽였을 것. 바로 쫒아가면 이 쪽으로 오는 녀석을 발견하겠지. 출발하지.”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숲 속에서 스가와라가 최대한 몸을 숙이고 입과 코를 막았다. 스산한 가운데 들리지 않던 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제야 스가와라 코우시는 움직였다. 피로 가득하고 사람 조각이 만연한 가운데 사와무라 다이치가 있었다. 알아 볼 수 있는 건 수년간 보고 섞었던 몸뿐이었다.

“다시 보자는 건.. 못 지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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