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사와무라 다이치 생일 웹진 참여작 입니다.




※ 봄고 후 합숙이라는 미래 조작이 있습니다.

※ 미래에 대한 날조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에 잔뜩 울려 퍼졌다. 크리스마스와 겹친 연말은 언제고 활기찼다. 휘황찬란한 작은 전구 불이 가게마다 빛을 발했다.


“어, 아니. 연말이니까 죽겠지. 뭐 그렇게 술을 들이붓는지 모르겠다니까.”


여러 감정 섞인 미소를 지으며 사와무라가 고개를 저었다. 뜨듯하게 열 내는 핸드폰을 고쳐 쥐며 말을 이었다.


“약속은 안 잊었으니까 걱정 마. 장소도 예약되어 있고 연락도 돌렸다.”


슬쩍 위를 올려본 사와무라가 잘게 웃었다.


“그래. 연말 회식날 보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장갑 낀 양손을 비볐다. 겨울이었다.



*



텁텁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풀썩 침대 위로 쓰러지는 몸과 함께 베게에 얼굴을 부볐다. 베게에 턱을 괴고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날은 벌써 크리스마스를 지나 새해를 앞두고 있었다. 기지개를 피자 우두둑 소리가 나며 근육이 늘어졌다. 벌러덩 자세를 바꾸며 늘어지는 하품이 나왔다. 끔벅끔벅 눈꺼풀이 느려지고 서서히 잠이 들었다.


“아.. 씻어야, 하는데..”


시야가 어두워졌다.


-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앳되었다. 들리는 목소리는 익숙하기 그지없었다. 사와무라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노력했다.


“~~~! 다~~??”


“그~~!!! 설~~~!”


더욱 시끄러워지는 목소리에 눈이 기어이 떠졌다. 형광등이 산란되고 눈이 적응하기 위해 동공을 좁혔다. 눈을 깜빡일수록 빛이 익숙해지고 주변의 소란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일어났다!!!”


“이, 이이이이 일어났어!!”


“어어어어 진짜 일어났어!!”


야단스런 목소리들이 익숙했다. 사와무라가 상체를 일으키고 목소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앳되기 그지없는 얼굴들이 눈을 깜빡였다.


“하?”


사와무라가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았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는 미야기 현립 카라스노 고등학교 배구부 부원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얼굴이 시퍼렇게 뜬 아즈마네와 히나타를 필두로 호기심 만만한 니시노야와 타나카, 당황이 가득한 엔노시타와 나리타, 미간을 찌푸린 츠키시마와 그런 츠키시마를 보지 못하고 굳어버린 야마구치, 카게야마까지 고등학교 1,2,3학년의 앳된 얼굴이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며 머리를 굴리던 사와무라가 애석하게도 문이 강하게 열리며 키노시타와 스가와라가 나타났다. 그 뒤에는 우카이와 타케다가 숨을 몰아쉬었다. 야치와 시미즈마저 방 안을 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지, 금이. 몇 년도. 인가요.”


화들짝 놀란 듯 모두의 어깨가 위로 튀었다.


“목소리도 똑같아요..”


“진짜 다이치..?”


“뭔가 다른데.. 좀 더 농축?된..”


고개가 갸우뚱 휘어지는 면면을 보던 사와무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인가..”


손을 내려보더니 스스로 뺨을 꼬집었다. 강한 통증에 어리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스가? 아사히? 시미즈?”


움찔 이름을 불린 스가와라와 아사히, 시미즈가 입을 다물었다.


“자, 잠깐만요! 혹시 자기소개 해줄 수 있나요, 사와무라군이라고 추정되는. 성인 분..?”


타케다가 한 발 앞서나왔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여전하시네요, 타케다 선생님.”


사와무라가 헛헛하게 웃었다.


“사와무라 다이치입니다. 나이 29세, 10년 전이네요. 지금이면, 아니 건물이.. 봄고 후인가요. 그리고 음. 사와무라 다이치 맞습니다.”


알게모르게 조용해진 가운데 불쑥 니시노야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다이치씨 맞습니까. 롤링!”


“썬더!”


개구지게 웃으며 니시노야의 말을 받아쳤다. 곧 니시노야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머리를 잔뜩 흐트렸다.


“이렇게 보니 진짜 너네 앳되네. 타케다 선생님도, 우카이 코치님도 앳되네요.”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시선을 고정했다. 점차 분위기가 풀려갔다.


“10년 전의 나도 있는 건가요.”


“그, 게..”


시선이 분산되고 흐릿해졌다.


“혹시 방에만 있어야 할까요.”


담담하게 사와무라가 말을 이었다. 고민과 함께 말소리가 천천히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


체육관은 여전했다. 높은 천장은 체육관 특유의 길쭉한 전등이 빛났고, 땀냄새와 쿨링시트 냄새가 섞여있었다. 익숙한 면면들이 앳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물음표가 잔뜩 주변으로 새어나갔다.


“어? 어? 어어어???”


“우악 뭐야!”


“사와무라가 늙었어!!!”


순식간에 시끄러워져 한 쪽으로 인원이 몰렸다. 시퍼런 얼굴 몇몇이 사람의 벽에서 얼굴이 튀어나왔다.


“하.. 하하... 사와무라 다이치 29세입니다. 잠깐동안 잘 부탁합니다.”


90도로 허리 숙이며 사와무라가 인사했다. 구석에 모여 관찰하던 이들이 인사를 보고는 주춤주춤 풀어져 가까워졌다.


“진짜 사와무라야?”


“오야오야 사와무라?”


“주장군이야?”


“어, 음.. 사와무라?”


입이 벌어져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술로 보쿠토가 기웃거렸다. 조금 창백한 얼굴의 오이카와가 사와무라의 주변을 살피고 능글맞은 척하며 쿠로오가 사와무라의 근처에 다가왔다. 한걸음씩 다가오던 모니와가 쿡 사와무라의 어깨를 찔렀다.


“헐 환상 아니야.”


사와무라가 모니와의 말을 듣고 쓰게 웃었다.


“모니와...”


순식간에 사람이 모여들었다. 허허롭게 웃던 사와무라가 눈을 개구지게 물들였다.


“그러고보니 내가 여기 이들하고 술자리를 하면서 들은 게 좀 많은데 말이야..?”


알게모르게 느껴지는 압박에 한걸음씩 뒷걸음질 쳤다.


“뭐야뭐야! 미래 이야기야?! 나나나! 나 역시 국가대표 선수지!”


보쿠토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피고 가슴을 내밀었다. 아카아시가 아차 한 얼굴로 보쿠토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물렀다.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괜찮겠지요 뭐.”


곁에서 말을 듣고만 코미와 사루쿠이가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웃음이 비죽 튀어나왔다. 코즈메가 한걸음 더 물러서고 야쿠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카라스노는 당했나 본데.”


턱으로 가리킨 곳에는 니시노야와 타나카가 반열에 오른 표정으로 합장하고 있었다.


“술 취해서 말하는 것의 대부분은 흑역사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카이가 턱에 손가락을 대고 중얼거렸다.


“보쿠토 너 말이야? 들은 게 꽤 있긴 있지. 넥타이를 안 매고 학교 돌아다니다가 아카아시가 매어 줘서 간신히 선도부의 눈을 피했다던가? 대청소 하는 날 책상을 비워야 하는데 안 내용물이 안 나와서 힘을 줬더니 먹다 남은 빵은 상해 있고 여분 넥타이와 상한 음료ㅅ, ”


보쿠토가 눈이 댕그래져 사와무라에게 달려가 입을 막았다. 왁스로 인해 위로 솟구쳐 있던 머리카락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사와무라! 나 또 무슨 이야기 했어..?”


추욱 쳐져 작게 소근거리는 말임에도 커다란 목소리가 체육관을 알게 모르게 채웠다. 웃는 얼굴이지만 묘하게 오싹한 느낌에 사와무라의 입을 막고 있던 보쿠토가 반걸음 물러섰다.


“상사가 짜증난다며 술을 먹고먹고먹고 또 먹더니 가다가 결국 구토해서 그 뒤처리를 내가 했다는 거? 술 취해서 가다가 보이는 판넬과 부딪쳐 무한한 사과를 하다가 갑자기 울면서 판넬을 껴안고 울다가 판넬을 부숴버린 거? 아니면 차였다며 위로주를 마신다고 했다가 술 먹으러 간 곳에서 그 당사자를 만나서 술에 쫄닥 젖어서 사람들 입소문감 만든 거? 아니면”


한명씩 눈을 마주쳐가며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시선을 피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아 그러고보니 햄스터를 너무 키우고 싶은데 핸들링을 하거나 방에 풀었을 때 자기가 실수로 죽이면 어떻게 하냐며 의기소침해서 술 먹다가 햄스터 5마리 입양한 것도 있네? 배구하자고 나가서 배구로 시간을 다 보냈더니 갑자기 온천에 가자고 해서 온천 하는 곳에 갔다가 사람들한테 치여서 온천은 하지도 못하고 돌아간 적도 있네?”


인물들이 잔뜩 쪼그라들었을 때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진짜 나 10년 전이네.”


새롭다는 듯 웃다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사와무라가 익숙하고 앳된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10년을 미리 알 생각 말고 채워나갈 생각 해야지.”


곧 매끄러운 체육관 바닥을 밟으며 벤치를 향했다.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앉으며 입을 열었다.


“합숙하러 온 거면서 그러고 있으면 시간이 흐를 텐데? 배구 안 할 거야?”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똑 닮은 웃음에 점차 왁자지껄해졌다.


“다이치!”


“다이치씨!”


“일어나서 같이 배구해요!”


“배구!”


배구길만 걸어온 10대 청소년들이 눈을 반짝였다. 배구공이 체육관 천장, 전등을 가리며 올랐다.


-


“타나카! 니시노야!”


“카게야마! 히나타! 넘어져!”


어느덧 기울어진 해는 모습을 감추고 별이 뜨고 있었다. 씻고나와 물기로 젖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우당탕탕 뜀박질 했다.


“다이치씨!”


수건을 목 뒤로 걸치고 물을 마시던 사와무라가 고개를 돌렸다. 처음 눈을 뜬 카라스노 배구부의 숙소였다.


“아마 잠에 들면 돌아가 있겠지.”


놀라 달려오던 그대로 멈춰선 타나카, 니시노야,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한걸음 뒤로 물렀다.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은 사와무라가 깔려진 이불 위로 덮는 이불들을 하나씩 올렸다.


“애초에 내가 지금 이 곳에 있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니까. 원래라면 오후쯤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예상 외의 결과라서.”


덤덤히 말을 이으며 이불을 깔던 사와무라가 시원스레 웃으며 조르륵 서있는 네 명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10년 후에 10년의 기억을 가지고 보자.”


올망졸망 모여 있는 10년 전의 부원들을 보며 말의 마무리를 지었다.


“다이치 혹시 영업직 하는 거야? 말이 엄청 능수능란한데..?”


스가와라가 투덜이 듯 하는 말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이치씨 완전 멋져요! 처음 여기서 봤을 때 정장 입고 있었잖아요!”


“직장인 포스!!”


“인, 인탈라 느낌!”


“인텔리 느낌이겠지.”


꽤 오랜 느낌에 사와무라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만담에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갔고 그와 같이 하품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슬슬 잘까.”


불 끄는 스위치가 내려갔다. 어두운 방 안에서 멀리 있는 가로등 빛에 먼지가 떠다니는 것이 눈에 선했다. 점차 느리고 고른 숨소리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끼며 사와무라가 눈을 깜빡였다. 배구공을 리시브할 때에도 체육관 바닥을 디딜 때에도 그 어떤 순간에도 사와무라 다이치는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후각, 통각, 촉감 이 세 가지가 사와무라에게 실제로 다가왔다. 과거가 있기에 미래가 있는 것이 통상적이라면 이번 경험은 미래가 있기에 과거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몰랐다. 몸은 진득한 운동에 피로감을 뱉어냈고 눈꺼풀은 무거워졌다.

29살의 사와무라 다이치는 눈을 감았다.

19살의 사와무라 다이치가 그 곳에 존재했다.



-



번쩍 눈이 떠졌다. 무난한 흰 벽지로 도배된 천장이 눈에 들었다. 진동으로 바뀐 핸드폰이 머리맡에서 울었다. 쉬지 않고 울어대는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큼, 크흠.”


잠긴 목을 풀어내며 사와무라가 몇 번 숨을 토했다. 핸드폰을 열자 라인 메시지가 깜빡이며 계속 이어지고 진동이 겹쳤다. 몇 번의 터치가 행해지고 라인 창이 열렸다.


“아, 생일이네.”


라인 창마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생일 축하 메시지가 사와무라의 눈동자에 반사되었다. 까먹고 있던 생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봄고가 끝나고 있던 합숙의 빈 하루가 채워졌다. 환한 미소가 사와무라의 얼굴을 채웠다.






올해 다이치의 웹진↓ (모바일 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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