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카타케 9/3 전력 60분 
주제: 열병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안쪽부터 솟구친 열이 온 몸을 강타했다. 열병이였다. 



 깜빡이는 두 눈은 순하게 휘어졌다. 동그란 눈매가 상냥함으로 가득차 휘어지고 말랑한 볼은 붉게 물들었다. 환하게 웃어주는 얼굴에 열이 올랐다. 우카이가 애써 고개를 돌렸다. 간질간질 가슴께가 울컥였다.

 “우카이군. 괜찮은가요? 체온이 높아보이는데요?”

 “아, 아. 괜찮아, 선생. 단순히 체온이 오른 것 뿐이니까. 물 한번 먹으면 괜찮아질거야.” 

 타케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그란 머리가 아래위로 흔들리는 것을 계속 쳐다보았다. 설핏 보이는 목라인에 시뻘개진 얼굴을 돌렸다. 우카이 케이신은 지독한 열병에 걸렸다.




 “하아..” 

우카이가 담배를 뻐끔였다. 푹푹 위로 솟아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연기는 금세 타케다의 웃는 얼굴로 변했다. 

 “으악!”

 쿠당탕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우카이가 제 뒤통수를 슬슬 문지르며 책상을 잡아 상체를 올렸다. 타케다의 얼굴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의자를 마저 세운 우카이가 털푸덕 주저앉았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아아아.. 젠장.. 지독하네.” 

 우카이가 머리를 흐트렸다. 머리띠마저 벗고는 턱을 괴었다. 상점 문을 쭈욱 쳐다보았다. 

 “선생이 올까..” 

 꿈뻑꿈뻑 눈꺼풀이 움직였다. 

 “우카이군!” 

 우카이의 눈이 커짐과 동시에 타케다의 시선이 우카이를 향했다. 타케다가 우카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선생? 왜 그래?” 

우카이가 타케다의 근처에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타케다의 이마에 우카이의 손이 닿고 이마를 대었다. 

 “열은 없고.. 오늘 무리한 거야?” 


 타케다가 퍼엉 볼을 붉혔다. 팽글팽글 돌던 눈에 타케다가 손을 뒤로 돌렸다. 

“저저저저저 이만 가볼께요 우카이군!!!!”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우카이가 멍하니 쳐다보더니 제 손에 남은 온기를 쥐락펴락 움직였다. 주먹 쥔 손을 이마에 대었다. 귀가 붉었다. 우카이가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 선생.” 

 열병이 피어올랐다. 



 “으으으.. 우, 카이구운..!!” 

 타케다가 벽에 등을 기댄채 주저앉아 있었다. 발간 얼굴이 도드라졌다. 손으로 제 붉은 볼을 잡았다. 머리띠를 하지 않아 자연스레 내려온 머리를 한 우카이의 모습이 타케다의 앞에 퐁 나타났다. 타케다의 눈이 팽글팽글 돌았다.

 “이이이이이..!! 이 무슨..!” 

 열병이 옮았다.


다이스가 9/3 전력 60분 
주제: 마법 
판타지au입니다 :3








 부드럽게 바람이 일었다. 푸른 이파리가 흔들렸다. 연한 잿빛 머리카락이 살랑였다. 길게 늘어진 속눈썹 아래로 그늘이 졌다. 나무그늘이 넓었다.

 “스으가아!!” 

우렁찬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속눈썹이 팔랑이며 몽롱한 눈이 나타났다. 얇은 손가락이 눈을 부볐다. 

 “으으.. 다이치..?”

 “스가!!” 

활짝 핀 웃음을 지으며 사와무라가 나타났다. 언덕을 올라오며 후드가 펄럭였다. 금세 스가와라의 앞에 나타난 사와무라가 숨을 골랐다. 

 “정말. 뭐 때문에 그렇게 뛰어온거야. 천천히 오지 그랬어, 다이치.” 

 “하아. 하. 스가. 후아. 나. 성공했어!” 

동그랗게 스가와라의 눈이 뜨여졌다. 입이 벙긋 벌어졌다. 

 “에?! 정말?! 진짜 성공한거야?!” 

 “어! 봐봐.” 

사와무라가 제 손을 바닥에 대고 눈을 감았다. 갈색 도는 빛이 찬란히 뿜어졌다. 밝게 뿜어지는 빛이 일직선으로 이어졌다. 

 콰가가강!! 

 멀리 떨어진 평지에 땅이 솟구쳤다. 뾰족하거나 뭉툭하게 솟구친 땅이 덜덜 떨었다. 바들바들 떨리던 땅이 콰앙 터져나갔다. 사와무라가 배시시 웃었다. 스가와라가 흐트러진 흙무더미와 사와무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꿈뻑꿈뻑 눈꺼풀이 움직였다. 

 “와...” 

 “스가?” 

 “와아아!!! 다이치!!!!” 

스가와라가 사와무라를 푸욱 껴안았다. 목덜미를 간질이는 머리카락에 사와무라가 키들키들 웃으며 마주 껴안았다.

 “다이치!! 진짜 된거지! 나 잘못 본 거 아니지!” 

“푸핳 스가! 진짜! 나 계속 연습하다가 되자마자 바로 너한테 보여주려고 왔어!” 

 꼬옥 껴안고 온기를 나눴다. 붉은 눈동자가 풀숲에서 꿈뻑였다. 



 비린 피냄새가 가득 흘러넘쳤다. 가득한 시체들 사이사이로 살점이나 장기가 널부러져 있었다. 노릿한 탄내가 피냄새와 섞였다. 꿈틀꿈틀 시체더미가 들썩였다. 

 콰아앙!! 

 시체들이 위로 솟구쳤다. 콰드득 시체들 가득 흙에 꿰뚫려 올라왔다. 피 묻은 흙이 후두둑 떨어졌다. 

 “후...” 

듬직한 손이 얼굴을 가리고 부볐다. 피곤 가득한 얼굴 옆으로 손이 나타났다. 하얀 손이 꽈악 잡았다. 

 “스가..” 

사와무라의 손이 스가와라의 손을 마주 잡았다. 스가와라가 사와무라의 곁에 앉았다. 스가와라의 얼굴에 사와무라의 어깨에 기대졌다. 사와무라가 스가와라의 손을 꽈악 잡았다. 

 “다이치.” 

 “스가.” 

 비린 피냄새가 둘의 코를 간질였다. 꾸욱 눈을 감았다. 

 “도망칠까.” “다이치?”

 “우리 도망칠까 스가?”

 “그럴까.” 

 “마법을 버릴까.”

 “마법을 버릴까?” 

꾸욱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얼핏 물기어린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렀다. 가픈 숨이 섞였다.

 ““도망치자.”” 

 “도망쳐서 마법을 버리고 평범하게 살자.”


 “그냥 평범하게.. 너하고 나하고 글선생하고..” 

눈물이 뭉클 솟았다. 붉은 눈동자가 꿈뻑였다. 



 “들어라! 군을 탈영하려는 자를 잡았다! 만일 군을 탈영하려는 시도조차 보인다면! 이들처럼 즉결처리할 것이다!” 

팔다리가 밧줄에 묶인 채 나무에 흔들렸다. 사와무라와 스가와라가 피범벅이 된 눈을 꿈뻑였다. 퉁퉁 부은 눈에서 피눈물이 솟았다. 움찔움찔 손가락이 꿈틀였다. 

 “다이치..” 

 “스가.. 미안..” 

 스가와라가 고개를 저었다. 휘어진 칼날에 불빛이 반사됐다. 사와무라와 스가와라가 마주보고 배싯 웃었다. 눈물 한줄기에 피가 씻겨졌다.

 “처형해라.”

 칼이 짧게 빛났다. 팔다리 묶인 둘의 몸에서 투욱 머리가 떨어졌다. 미소 띈 입술이 도드라졌다. 

“시체는 태워라! 군법을 어기게 된다면 여기 죽은 이들처럼 사형이다! 그럼 그만 막사로 돌아가라!” 

 파르륵 불꽃이 일었다.


같은 문장 앞 or 뒤 레셔 
리에야쿠 뒤





 야쿠가 부드럽게 웃었다. 울쌍을 하며 코즈메를 졸졸 쫒는 하이바를 눈으로 쫒았다. 말랑한 볼이 붉었다. 쭈욱 드링크통을 눌러 드링크를 마셨다. 그냥저냥 똑같이 달릴 거 달린, 시큼한 땀냄새 나는 고교 1학년일 뿐인데 야쿠의 눈은 하이바를 쫒았다. 뜨끈한 열이 볼에 몰리자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찰진 소리가 크게 울리자 동그란 눈들이 몰렸다. 

 “야쿠선배!” 

 “어이 야쿠. 괜찮냐?” 

 “야쿠씨!!” 

 “호들갑 떨지마. 그냥 정신이 산만해서 그런거니까.” 

 손자국이 날 듯 발갛게 올라오는 볼에 슬슬 손등으로 문질렀다. 체육관 등에 눈이 반짝였다. 



 킁킁 밤공기에 매연냄새가 섞였다. 와글와글 10대 청소년들의 방과 후 하교길은 시끄러웠다. 저마다 군것질거리를 하나씩 입에 물고 생글생글 웃었다. 

“야쿠씨이! 야쿠씨는 뭐 먹을 때도 귀엽네요!” 

한심함 가득한 시선들이 하이바를 찔렀다. 야쿠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리를 들어올리자 하이바가 큰 몸을 구기며 뒤로 물러섰다. 

“야야야야야쿠씨이??!!” 

잔뜩 구겨진 얼굴로 하이바를 쳐다보던 야쿠가 다리를 내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됐어. 내일 리시브 2배니까 리에프. 나 먼저 간다.” 

“에엑?! 야쿠씨!! 2배요?! 아아안돼요오!! 야ㅋ.. 퀣!” 

쿠로오와 이누오카가 각자 하이바의 입과 팔을 붙잡았다. 길쭉한 덩치가 구겨지듯 잡힌 모습에 야쿠가 푸핫 튀어나오는 웃음을 짓고는 길을 걸었다. 뒷모습을 하이바가 빤히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세로로 길쭉해져 있었다. 



 “아아 정말. 어쩌다가 좋아하게 된 건지 모르겠네.” 

 야쿠가 제 머리카락을 슬슬 헝클였다. 북슬북슬 흔들리는 머리카락 속으로 퐁퐁 하이바가 나타났다. 해맑게 웃는 얼굴이 나타나자 야쿠가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붉은 얼굴을 한 채 입술을 삐죽였다. 

 “좋아해 리에프.” 

가만히 멈춰있더니 방방 뛰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빨간 제 귀를 손으로 덮었다. 푸욱 한숨이 터져나왔다. 

 “물론 이런 말은 절대로 입 밖에 내놓지 못하겠지만.” 

 씁쓸하게 웃은 야쿠가 제 발걸음을 재촉했다. 꿈뻑꿈뻑 가로등이 늘어졌다.




얌굿 8/28 전력 60분 
주제: 주근깨 






 안절부절 몸을 움직였다. 부산스레 움직이는 모양새가 마치 웅덩이에서 몸을 단장하는 참새같았다. 

 “으아.. 시간 시간!!” 

 시간을 마저 확인하더니 끼야악 볼을 붙잡았다. 

“타다시이. 케이군이랑 놀러가니?” 

 “아 엄마아?” 

 부드러우면서도 개구지게 웃은 어머니가 살랑살랑 야마구치를 불렀다. 캐주얼하게 입은 옷을 한 번 훑어 보더니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어머. 이 옷 입고 데이트 가는 거야? 머리 손 봐줄까? 맞아. 얼굴에 뭐 좀 발라줄까, 타다시?” 

 “아.. 그.. 네, 네에..” 

묘하게 수줍은 얼굴에 입을 가리고 웃었다. 쫄래쫄래 뒤를 쫒았다. 





 “츳키!” 

 급히 뛰어온 야마구치가 츠키시마의 앞에 섰다. 배시시 웃는 얼굴에 츠키시마의 얼굴에서 불만이 쏙 들어갔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시간 맞춰서 나오지!” 

“아니. 뭐.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 야마구치.” 

살짝 고개가 들렸다. 

 “얼굴에 뭐 발랐어?” 

 살짝 시선을 피했다. 살살 목부근을 긁적였다. 

 “으응.. 엄마가 데이트 간다고 뭐 발라주셨어. 많이 티나?” 

은근슬쩍 불만 어린 표정에 야마구치의 더듬이가 삐죽 솟았다. 

 “어.. 저기 마음에 안 들면..” 

 “아냐. 가자. 데이트. 잖아.”

 배시시 꽃이 개화했다. 





 꿈뻑꿈뻑 가로등이 눈을 크게 떴다. 가득 어두움을 품은 하늘이 빛을 꾸역꾸역 먹어갔다. 우걱우걱 베어물자 하늘이 금새 어두워졌다. 흔들흔들 마주잡은 손이 흔들렸다. 발그레한 볼이 가로등 불빛을 따라 눈에 아른거렸다. 츠키시마의 눈이 야마구치의 얼굴을 쫒았다. 귀가 얼핏 붉었다. 

“츳키! 츳키! 오늘 재밌었어! 간단하게 돌아다니는 거였는데도 츳키랑 같이 돌아다녀서 좋았어! 츳키는?” 

 반짝반짝 야마구치의 얼굴이 빛났다. 츠키시마가 손에 힘을 주어 꽈악 잡았다. 손에 가득 차는 온기와 힘에 배시시 웃었다. 허물어진 웃음에 츠키시마가 시선을 돌렸다. 돌려진 옆얼굴에 귀가 붉게 도드라졌다.

 “츠읏키이!! 진짜 좋아해!” 

 “..알고있어.” 

 야마구치가 츠키시마를 결국 껴안았다. 품에 가득 차는 온기를 놓치 않았다. 팔을 둘러 껴안았다. 

 “...해. ..시...” 

 “히잇!”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를 타고 곧장 머리로 들어왔다. 야마구치가 따끈따끈하기 물든 얼굴을 꾹 츠키시마의 어꺄에 묻었다. 홧홧하게 느껴지는 온기에 츠키시마가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가득, 한가득 집착이 얽어있었다. 

 “타다시. 대답. 해줘야지. 응?” 

 살살 뒷목을 쓸어주며 묻자 야마구치가 빼꼼 눈을 어깨 위로 내보였다. 입술을 오물거렸다. 

 “나도 사, 사랑해. 케이..” 

 바들바들 떨리는 말이 나와도 껴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츠키시마가 문득 부드럽게 웃었다. 

 “가자. 너 집에 들어가는 거 보고 돌아갈께.” 

“엣?! 안 그래도 되는데?!! 츳키! 츳키 집에 가야지!” 

불쑥 품에서 튀어나와 팔을 버둥거렸다. 츠키시마가 부루퉁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흠칫 어깨를 올리더니 시선을 피했다. 

“아아아니이이.. 그래도오..” 

 “내가 너 집에 들어가는 거 보고싶어서 그러니까 가자.” 

“으으.. 츳키 데레!!” 

제 얼굴을 가려버리는 야마구치의 행동에 츠키시마가 꾹꾹 야마구치의 머리를 눌렀다. 금새 쪼르르 다가와 배시시 웃어보였다. 

“헤헤.. 그러면 츳키가 원하는 대로!” 

 가로등 불빛에 그림자가 겹쳐지며 길어졌다. 

 “츳키츳키 이제 집에 가! 집에 다왔잖아!” 

팔을 바동거리며 재빨리 뛰어갈 준비를 하는 모양새에 츠키시마가 비죽 웃어버렸다. 

 “뭐. 이번은 져주지.” 

 키들키들 야마구치가 웃었다. 곱게 눈이 휘어졌다. 

 “츳키! 조심해서 가!” 

 “응. 잘 들어가. 그리고. ….” 

츠키시마가 뒤를 돌아가고 야마구치가 풀썩 쪼그려 앉았다. 

‘주근깨 안가려도 좋아. 나는 타다시의 모든게 좋으니까.’ 

 “으아아아... 츳키 완전 반칙이야... 데레 반칙.. 반칙..!!” 

 야마구치의 더듬이가 파닥파닥 움직였다.


우카타케 8/27 전력 60분 
주제: 옆자리 






 문득 손을 옆으로 뻗으면 체온이 느껴졌다. 따스한 사람의 체온이 손에 닿았다. 



 “선생.”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귀가 나타나고 동그란 얼굴이 나타났다. 환하게 웃었다. 

 “네. 우카이군.” 

시선이 계속 머물렀다.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쳐다보았다. 시선이 이어지자 어색한 얼굴이 지어지며 시선을 돌렸다. 이곳저곳 향하는 시선마저 쳐다보면 돌리던 시선을 들어 마주보았다. 근거리에 존재한다. 손가락을 뻗었다. 말랑한 볼이 닿고 손가락이 안경을 살짝 들어 눈 밑을 문질렀다. 

 “우카이군?” 

 “좋아해, 선생.” 

금새 놀란 얼굴을 하다가도 부드럽게 흐드러지는 웃음을 지었다. 

“저도 좋아해요, 우카이군.” 

볼에 닿은 손을 마주잡았다. 얕은 버드키스가 이어졌다. 살짝살짝 닿는 입술이 따뜻했다. 꾸욱 몸을 껴안았다. 비누향이 닿고 옅은 땀냄새와 체향이 흘러들었다. 틈없이 맞닿은 몸으로 두근두근 심장이 엇갈리며 뛰었다. 조용한 가운데 쿵쿵 느껴지는 심장과 오감 가득 채워지는 충만감이 흐드러졌다. 어두운 하늘은 그새 달이 걸려 웃고 가로등이 점점이 눈을 떴다.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턱선이 도드라졌다. 츠웁 깨물어 빨아당겼다. 선히 느껴지는 고통에 맞서 깨물었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색스런 소리가 울렸다. 

 “내 옆에 선생이 있어서 다행이야.” 

 조금은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애정 가득히 낮은 목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팔에 힘을 주었다. 

 “저도. 제 옆에 우카이군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쿵 

 쿵 

 쿵 

 심장이 뛰었다. 옆자리에 닿았다.


다이스가 8/27 전력 60분 
주제: 여행 







 흐응흐음음 미약한 흥얼거림이 바람을 타고 일렁였다. 살랑살랑 맞잡은 손이 흔들렸다.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고 나붓한 바닷바람이 불어 헐렁하게 입은 옷이 살랑였다. 쏴아악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며 발 옆으로 다가왔다. 반달이 반짝반짝 빛을 뿜었다. 

“이제 가을이 되려나 봐. 바람이 미지근해도 조금 차갑다.” 

“응. 이제 9월 거의 다 되어서 그런가봐.” 

부드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사브락사브락 모래를 밟고 맞닿은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속눈썹이 팔랑이면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그림자가 생겼다.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을 팔 벌려 안았다. 

“이렇게 조용하니까 갑자기 애들이 생각난다.” 

“푸핫. 그러네. 그 녀석들 있으면 바람 잘 날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조용한건 오랜만이야. 그렇지?” 

“당연하잖아. 무엇보다 우리 둘만 있는 거잖아?” 

 곱게 미소 지어졌다. 마주친 얼굴 가득한 미소에 괜한 쑥쓰러움이 섞였다. 발간 볼과는 다르게 맞닿은 손을 놓지 않고 더욱 단단히 잡았다. 

“녀석들이. 그냥 받아줬지.” 

 “응. 그럴거 같다고 하면서. 알려줘서 고맙다고 그랬지.” 

“우리가 더욱 고마운데.” 

“응. 나는 츠키시마도 그렇게 말해줄줄은 몰랐어.” 

 “에이. 거짓말하기는.” 

 꾸욱 옆구리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갈비뼈 사이를 들어간 통증에 수그리고 말았다. 개구진 얼굴에 키들키들 웃고말았다. 

“정말 그렇게 웃는거 완전 반칙이야. 어떻게 고등학교 때랑 바뀐게 하나도 없는 웃음인 거야.” 

 “에이 그렇게 따지면 나보다는 네가 더 사기지. 너도 바뀐거 하나도 없는걸?” 

키득키득 웃음이 겹쳐졌다. 다시 손을 마주 잡았다. 옹골지고 단단한 손가락과 두툼한 손바닥이 얽혔다. 성인의 손은 굳건하고 따스했으며 서로의 약함을 의지할 수 있었다. 뜨끈한 온기에 땀이 배어나왔으나 풀지 않았다.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이, 1분 1초가 소중했다. 

 “다이치.” 

 “응.” 

사박사박 모래가 흔들렸다. 건물들의 불빛이 야경을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사랑하자.” 

 “코우시.” 

 “응?” 

걸음이 멈췄다. 얼굴을 마주보았다. 배시시 웃음이 지어졌다. 

 “사랑해. 평생 사랑하자.”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이마가 부딪쳤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에 귀가 붉었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었다.


얌굿 8/14 전력 60분 
주제: 장난 









 “사귑니다.” 

 통 토동 통통 

배구공이 떨어졌다. 댕그란 눈들이 츠키시마와 야마구치를 쳐다보았다. 꿈뻑꿈뻑 깜빡여지는 눈들에 츠키시마가 비죽 제 입술을 올렸다. 야마구치가 제 입을 오물거렸다. 붉은 볼에 눈이 모였다. 

 “츠키시마?!!” 

 “야마구치?!!” 

 우다다다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달려들었다. 츠키시마의 손이 야마구치의 앞에 나타났다. 달려들던 둘의 몸이 멈춰섰다. 

 “너 누구냐!” 

 “츠키시마가 그럴리 없어!” 

사와무라와 스가와라가 당황 가득한 얼굴로 츠키시마를 향해 뛰어갔다. 

“츠키시마. 괜찮아? 어디 아픈거야?” 

“츠키시마! 부실에 가서 쉴래? 어디 아파?” 

아즈마네까지 다가와 입을 벙긋거렸다. 슬금슬금 다가온 엔노시타, 나리타, 키노시타마저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보았다.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세모난 입을 뽀끔거렸다. 

 “뭡니까. 대체.” 

“아니. 츠키시마 너 그렇게 티나게 다정한 놈은 아니였잖아?” 

“맞아. 소꿉친구인 야마구치에게도 딱히 티나지 안잖아?” 

 살그마니 찌푸려진 츠키시마의 아미에 사와무라와 스가와라가 눈을 마주쳤다. 장난끼가 솟아났다. 

 “우리 츳키는 키도 크고 블로킹도 잘하고.” 

“의외로 다정해서 잘 챙겨주는데.” 

 키득키득 조그만 악마 날개와 악마 꼬리가 나타났다. 

“티가 하나도 안나는지라.” 

 “야마구치에게도 무덤덤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보이지도 않고.” 

야마구치가 당황스런 얼굴로 츠키시마를 쳐다보았다. 츠키시마의 얼굴이 불편을 담았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티 안난다고는 했지만.” 

 “하루에 많이 보는 데다가.” 

 “다른 이랑은 행동도 다르고.” 

 “그럴 줄 알았지.” 

쭈욱 이어지며 사람마다 이어지는 말들이 야마구치의 얼굴을 딸기로 만들어버렸다. 팽글팽글 야마구치의 눈이 돌아갔다. 츠키시마가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왜요.” 

 사와무라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 예상은 했지만 말이야. 진한 애정행각만은 부활동 끝나고 해주라. 부활동 중에 하고싶으면 제발 숨어서 해줘.” 

 “풉. 선배도 부활동에서 보이시지 않았..” 

“아아아아아아!! 츠키시마!! 야마구치랑 예쁘게 사귀고!” 

 사와무라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비죽하게 올라간 입술에 스가와라가 사와무라를 보며 입을 가려 웃었다. 뱅글뱅글 여즉 도는 야마구치의 눈동자에 츠키시마가 옆구리를 잡아 제 몸에 기대었다.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반짝였다. 

“오오오오!” 

와글와글 깨져버린 시간에 사와무라가 멋쩍게 뒷목을 쓸었다. 

“하아.. 어째 오늘 부활은 그른 것 같네. 리시브 연습 조금 하고 돌아가자.” 

“오오스!” 

 널부러진 배구공이 다시 주워졌다. 야마구치가 체육관 의자 여럿에 눕혀졌다. 발간 얼굴에 츠키시마가 제 입술을 이마에 꾹 누르고는 금세 떼었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 

 “저기 츳키. 괜찮을까?” 

 야마구치의 더듬이가 살랑였다. 뾰족 튀어나온 츠키시마의 입술에 야마구치가 계속 시선을 두었다. 입술이 열였다. 

 “뭐 괜찮찮아. 네가 먼저 하자고 한 장난이였고.” 

 “아니.. 그건 그렇지만.. 너무 다 믿어주니까. 후폭풍이 조금 무섭달까..” 

야마구치의 손가락이 꼼지락 움직였다. 부산스런 시선이며 구겨진 더듬이에 츠키시마가 야마구치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야마구치의 고개가 들어올려졌다. 

“그러면. 그 장난을 진짜로 만들면 되잖아.” 

 달이 반짝였다.


카라스노 from Jt







 

까악!”


끼이익 고개가 돌아갔다. 나무 무늬 가득한 체육관에 검은 뭉치 하나가 사와무라를 졸졸 쫒아왔다.


까악?”


까마귀가 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사와무라를 향해 탁탁 걸었다. 부원들의 시선이 까마귀를 따랐다.


까악!”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였다. 사와무라의 몸에 날아오르자 사와무라가 얼결에 팔로 까마귀를 받아 안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까마귀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


?”


.”


으아아아아아??!!!”


까아아아아악!!!”


저음비명이 활기차게 울리자 까마귀마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체육관이 비명소리로 광광 울었다.


뭐무머뭐야?!! 뭔 일이야?!!”


무슨 일이에요?! 웬 비명이..!”


우카이코치와 타케다고문이 다급하게 뛰어와 체육관 문을 열었다. 사와무라의 품에 안긴 까마귀에 둘의 눈이 댕그랗게 변했다. 1, 2학년들이 우르르 우카이코치와 타케다고문에게 향했다. 뻐끔뻐끔 움직이는 입모양에 우카이코치와 타케다고문이 애써 침착을 머리에 새겼다. 그 사이 사와무라의 품에 있는 까마귀에게로 스가와라가 다가갔다.


, 얌전한데? 스가. 가까이 좀 더 와도 될 거 같아.”


아 정말? 아예 옆으로 가볼게.”


스가와라가 느릿한 걸음으로 사와무라의 가까이로 다가섰다. 아즈마네가 초조한 듯 떨리는 눈으로 사와무라의 품에 안긴 까마귀를 쳐다보았다. 스가와라가 까마귀의 가까이에 다가섰다. 체육관의 시선이 몰렸다.


손 올려도 괜찮을까?”


.. 글쎄? 일단 내가 안고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스가와라가 턱에 손을 대어 짧은 고민을 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손을 가져갔다. 까마귀의 턱에 스가와라의 손가락이 닿았다. 그 상태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얌전한 까마귀의 상태에 스가와라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턱을 간질이는 손가락에 까마귀가 제 고개를 사와무라의 품에 부볐다.


. 귀엽다.”


그러게. 귀엽다. 우리 학교 주변이나 근방에 까마귀가 사람 손을 탔을 리가 없는데 말야.”


그러네. 어쩌다가 온거지? 아 이거 그거 때문에 아냐?”


사와무라가 고개를 돌렸다. 얼굴 가득한 물음표에 스가와라가 배실배실 웃었다. 그 사이 체육관 문 앞에 몰려있던 이들이 조심조심 사와무라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이치는 흔하게 카라스노 아빠라고 불리잖아? 그래서 그걸 이 녀석도 알아서 다이치를 따라온거지! 봐봐 지금도 다이치 품에서 얌전히 있고 머리도 부비고 있잖아. 아사히. 뭐 그렇게 무서워 하는거야, 정말. 소심쟁이.”


. 그건 좀 넘겨짚는 거 아니야? 아사히. 그렇게 소심하게 손가락만 꿈질거리고 있으면 뭐해. 한 번 만져봐.”


노야나 타나카도 만져 봤던데. 안 만져 볼 거야?”


아사히선배! 깃털! 완전 부드러워요!!”


츳키! 츳키도 만져봐봐! 부드러워!”


어이어이 카게야마아. 혹시 너 또 까마귀가 거부할 까봐 못 만지고 있는거야아? 으응?”


히나타가 히죽히죽 웃으며 카게야마 근처를 맴돌았다. 아사히가 까마귀를 만지다가 카게야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문득 체육관 내 모든 이들의 시선이 카게야마를 향했다. 잔뜩 긴장한 모양새에 모두의 얼굴에 웃음기가 서렸다.


까악?”


까마귀가 사와무라의 품에서 날개짓을 했다. 여럿이 만지니 꽤나 불편했는지 다시 이리저리 자세를 잡더니 푸욱 눌러앉았다. 까마귀의 눈이 카게야마를 향했다. 카게야마가 반발자국 물러서고 말았다.


카게야마느은 고양이나 강아지도 도망가고 새도 도망가나요오.”


히죽 웃어버리는 히나타에 카게야마가 울컥 소리를 지르려다 까마귀를 보고 애써 눌렀다. 한반자국씩 다가가던 카게야마가 후욱 손을 뻗었다. 스가와라의 손이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고 타나카가 카게야마의 어깨를 짚었다. 카게야마가 얼떨떨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선배?”


스가선배!”


스가와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사와무라가 둥기둥기 까마귀를 진정시켰다.


자아 카게야마 천천히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거야. 놀라지 않게 손바닥 보이고.”


카게야마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까마귀에 닿자 카게야마의 얼굴이 기쁨으로 물들며 발갛게 볼까지 물들었다. 까마귀가 조심 쓴다는 듯 머리를 부벼주었다. 돌이 되어버린 카게야마의 모습에 사와무라가 비식비식 웃었다. 까마귀가 흔들리는 몸체에 발딱 일어섰다.


어라. 왠지 슬슬 갈 거 같은 느낌인걸.”


그러네. 아쉽다.”


까마귀가 폴짝 사와무라의 품에서 뛰어내렸다. 빵빵한 궁뎅이를 씰룩거리며 까마귀가 종종 걸어 체육관 문을 향했다. 졸졸 까마귀의 뒤를 쫒던 부원들이 날아가는 까마귀의 뒷모습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까마귀가 날았다.


, 까마귀 날아갔다.”

다이스가 from Jt

 







단단한 사와무라의 몸에는 이질적인 꽃 하나가 피어있다. 꽃은 다채로운 색으로 흐드러졌으나 그 것은 스가와라에게만 보였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사와무라 다이치가 내보이는 감정이 간지러웠다.


.. 다이치.. 다이치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아아아 정말 왜 나한테만 꽃이 보이는거야... 부끄러워..”


스가와라가 볼을 부풀렸지만 불그스름한 귀나 볼이 도드라졌다. 사와무라의 든든한 등이 스가와라의 눈에 들어왔다. 심장께에 보이는 꽃인지라 등을 보고있으면 보이지 않았으나 스가와라의 눈에는 붉은 꽃이 선연했다.


.. 진짜. 다이치 반칙이야. 반칙. 웃어주면 붉은색. 다른 이에게 웃어주면 녹색. 부원들에게 잘해주면 노랑색과 녹색. 그 뿐인가. 그냥 나랑 같이만 있어도 분홍색. 다이치 심술쟁이.”


스가와라가 결국 잔뜩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엎드리고 말았다. 잿빛 머리카락 사이로 붉은 귀가 도드라졌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와글와글 배구부원들이 우르르 길을 걸어 내려왔다. 검은색 가득한 곳에서 노란 꽃이 피어났다. 스가와라가 사와무라의 눈치를 조금씩 보며 부원들을 챙겼다. 사와무라의 시선이 스가와라를 쫒았다. 말랑말랑한 만두가 저마다의 입으로 들어갔다. 씨익 웃어보이는 입들이 종종 사라져갔다. 분홍색 꽃이 사와무라의 몸에서 불거졌다. 스가와라가 힐끗 사와무라의 꽃을 훔쳐보았다. 흘끗거리는 시선에 사와무라가 개구지게 웃으며 스가와라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스가와라가 움틀 놀라 한발자국 멀어섰다. 꽃이 붉게 물들었다.


스가. 왜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 그게. .. 저기 다이치.”


.”


사와무라가 생그라니 웃었다. 스가와라의 얼굴이 개구지게 변했다.


다이치. 나 좋아해? 나는 다이치 많이 좋아해.”


배시시 웃어보이자 사와무라가 웃어보였다. 매끄러운 웃음이 보이자 스가와라가 눈을 꽃으로 돌렸다. 한껏 붉게 물들던 꽃이 추욱 시들었다. 꽃이 애처로이 팔랑였다.


나도. 좋아해, 스가.”


배시시 웃는 얼굴이였으나 가득한 처연함이 도드라졌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볼이 기쁨을 나타내고 꽃이 빨갛게 흐드러졌다. 한껏 흐드러지는 꽃이 사와무라의 주변에서 달달한 향을 뿜어냈다. 스가와라의 볼이 붉어졌다.


-


밤이 찾아왔다. 연습은 길었고 감정은 깊었다. 일상에서 조금은 다름을 찾고 싶었다.


스가.”


사와무라가 스가와라를 불렀다. 꽃이 개화했다. 한 송이만이 피어있던 사와무라의 심장에서 여러 송이가 다발적으로 피어올랐다. 스가와라의 눈 앞이 붉은 꽃으로 흐드러졌다.


좋아해, 다이치.”


사와무라의 얼굴이 잔뜩 얼이 빠져있었다. 넋 나간 표정에 스가와라가 피식 웃고말았다. 살풋 튀어나온 웃음에 사와무라가 제 얼굴을 손으로 몇 번 부비더니 스가와라를 쳐다보았다. 사와무라의 얼굴이 잔뜩 긴장으로 가득했다. 사와무라의 손이 꾸욱 쥐어졌다가 바지춤에 문질렀다. 붉은 꽃이 피어올랐다.

좋아해. 스가.”


스가와라의 눈 앞에서 꽃이 흐드러졌다. 붉은 꽃, 분홍빛 꽃, 노란 꽃과 녹빛의 꽃까지 지금까지 사와무라가 느끼고 스가와라가 보았던 꽃들이 사와무라의 심장에서 튀어올라 피어났다. 그 사이에서 사와무라의 얼굴이 스가와라를 응시했다. 붉어진 얼굴은 설렘과 긴장, 기쁨을 담고 있었다. 온연히 느껴지는 감정과 흐드러지는 꽃들, 스가와라 자신이 자각해버린 감정이 섞여 얼굴로 피어올랐다. 붉어진 얼굴과 풀어진 미소가 띄워졌다. 조심스럽게 사와무라가 손을 내밀었다. 손을 마주 잡았다.


... , 잡았다. 스가.”


문득 사와무라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스가와라가 놀라 걸음을 옮겼다. 마주치려는 얼굴에 사와무라가 주저앉아 얼굴을 숨겨버렸다. 붉어진 귀가 잔뜩 나타났다.


저기, 다이치. 다이치 머리는 짧아서 귀랑 목덜미랑 다, 보여.”


스가와라의 얼굴마저 붉어지고 말았다. 애써 침착하게 누른 스가와라가 쪼그려 앉아 사와무라의 어깨를 건드렸다.


다이치?”


스가와라의 몸이 껴안아졌다. 사와무라와 스가와라의 몸이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같은 성별,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 평생 친구만 될 줄 알았으니까. 스가. 정말 좋아해. 정말.”


스가와라가 붉어진 얼굴을 사와무라의 어깨에 묻었다. 따스하게 느껴지는 목에 사와무라가 좀 더 강하게 껴안았다.


나도 좋아해, 다이치. 애인으로도 잘 부탁해.”


. 코우시.”


꽈악 팔에 힘이 들어갔. 귓가로 들려오는 이름은 자극이 강했다. 붉은 꽃이 어두운 밤에서 도드라지며 흩날렸다.

츠키야마 from Jt






츠키시마 케이에게는 특별한 꽃이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야마구치를 구해주었던 시각 야마구치의 더듬이 주변에는 새싹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나 있었다. 더듬이가 파닥거릴 때면 야마구치의 새싹도 같이 파닥였다. 새싹은 중학교 시절의 중반이 지나갈 때 쯤에는 줄기가 돋아나 더듬이만큼 자라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꽃봉오리가 망울지어져 있었다. 더듬이를 넘어서 망울진 꽃봉오리가 살랑거릴 때면 츠키시마는 제 자제심을 한껏 늘려야했다. 꽃봉오리는 무르익어갔고 중학교 3학년 여름. 개화했다.


야마구치의 더듬이가 삐죽 솟았다. 어깨까지 움틀 솟아올라 한껏 놀란 감정을 나타냈다. 츠키시마의 손이 야마구치의 옆구리를 훑고 있었다. 파르르 떠는 더듬이와 같이 한 송이의 꽃이 잔뜩 위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야마구치. 요즘 살 빠졌어? 옆구리가 매끈해.”


츠키시마가 흘끗 야마구치의 눈치를 살폈다. 불그스름한 귀며 파닥이는 더듬이와 꽃까지 츠키시마는 유쾌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이곳저곳으로 꽤나 불려갔다. 훤칠한 키나 미남형에 속하는 얼굴에 츠키시마는 여학우들의 흥미를 돋구었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여학우들에게 불려나갈 때 면 야마구치의 꽃은 며칠은 물을 얻지 못한 것처럼 흐물거리며 추욱 쳐져있었다. 의외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야마구치의 감정은 꽃을 통해서 도드라져 츠키시마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결국 나가지 못한 인터하이라 해도 그 여파는 츠키시마가 좀 더 불려나가게 만들었다. 츠키시마가 불려나가는 횟수가 많을수록 야마구치의 꽃은 시듬과 생기를 번갈아가며 파득거렸고 츠키시마는 그런 야마구치가 눈에 밟혔다. 츠키시마는 야마구치 타다시가 귀여워졌다.


야마구치 너 귀...”


, 츳키? 뭐라구 했, ?”


아니, 아무것도.”


츠키시마는 연신 야마구치의 옆구리나 배를 만지작거렸다. 야마구치의 귀와 볼이 붉어진 채 유지되었다. 배구부원들의 눈초리가 여간 곱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야마구치만이 눈치를 살살 보았다.


-


흐응..”


야마구치의 꽃이 파들파들 떨며 불안정했다. 츠키시마는 심기가 불편했다.


야마구치.”


, ! 츳키!”


화들짝 놀라는 야마구치의 모습에 츠키시마가 제 아미를 모았다. 야마구치가 지레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고백 받아서 좋아?”


야마구치의 더듬이가 삐죽 솟구쳤다. 츠키시마의 한구석에서 심술이 나타났다. 꽃은 시무룩 쳐져있었다.


츠츠츳키?! , 봤어?”


하아.. 너하고 같은 반인데 네 책상에 놓여진 쪽지 하나 못 볼까봐?”


야마구치가 한껏 안절부절 못하자 츠키시마가 야마구치의 머리를 꾸욱 눌렀다. 고개가 돌려졌다.


부활 안가?”


부활동은 여전히 활기찼다. 배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언제나 활기찼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저녁을 마주쳤다. 익숙하게 만두를 손에 쥐고 뿔뿔히 흩어졌다. 츠키시마와 야마구치가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야마구치가 눈치를 살폈다.


야마구치. 혹시 나 좋아해?”


야마구치의 꽃이 삐죽 솟았다. 꽃이 생기를 머금었다가 금세 시들었다.


, 저기, 츳키. 그게. , 미안!”


츠키시마가 걸음을 멈춰섰다. 야마구치가 고개를 들었다. 츠키시마의 얼굴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게 왜 미안한데.”


아니, 그게. 같은 성별이고, 나는 잘하는 것도 없고.. 츳키랑 안 맞으니까..”


그걸 왜 네가 정해.”


야마구치의 고개가 번뜩 올려졌다. 츠키시마의 눈에 야마구치의 꽃이 도드라졌다.


, ?”


내 감정은 생각 안 해? 너 안절부절하는 거 보면 신경 쓰이고 너 고백 받은 거 기분 나빠. 너 다른 애들한테 웃어주면 짜증나고 게속 너 생각나. 너 보면 만지고 싶고 그래. 그래서 내가 너랑 연애하자고 하면 싫어?”


야마구치가 고개를 숙였다. 츠키시마가 야마구치의 고개를 잡아 들어올렸다. 눈에 가득한 눈물에 츠키시마가 손가락으로 야마구치의 눈 아래를 문질렀다. 금세 손가락에 눈물이 묻어났다.


, . 츳키. 좋아해.”


야마구치가 훌쩍훌쩍 눈물을 쏟아냈다. 몽글몽글 쏟아지는 눈물에 츠키시마가 움칠 놀라 야마구치의 눈을 닦아냈다. 짧게 혀까지 찬 츠키시마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아냈다.


눈 붓는다.”


다정한 손길에 눈물을 슬슬 그쳐갔다. 꽃이 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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