잽소 12/6 전력 60분

주제: 가방
아마×일홍








샹들리에가 반짝이면서 은은한 빛을 뿌렸다. 티끌 하나 없는 하얀 벽이 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고즈넉한 공간을 들어가고 들어가자 조근조근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퇴마사가…… 흡혈귀… 함께… 네가……… 퇴마사……”

“하지만…! 흡혈귀…… 좋으...”

마찰소리가 들렸다. 하얀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퇴마사 아마 릴리스는 지금 이 시간후로 퇴마사가 아니다. 모든 것을 두고 가라. 퇴마복도, 무기도, 퇴마사로 가졌던 모든 것을 놓고 가거라. 사복은 챙기게 해주마.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공로를 인정해 약간의 보상은 있을게다. 가거라.”

싸늘한 말이 아마의 머리를 울렸다. 옆으로 치우쳐졌던 아마의 고개가 바르게 돌아왔다. 허리를 숙이고 곧게 몸을 굽혔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마의 몸이 뒤를 돌았다. 작게 문이 닫혔다.

*

깔끔한 여행가방이 길을 지나쳤다. 얇지만 단단한 손가락이 손잡이를 쥐고 길쭉하고 탄탄한 팔이 가방을 이끌었다. 아마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살랑였다. 파리해 보이는 얼굴색과 붉은 눈동자로 인해 피로가 잔뜩 몰려 있는 듯 보였으나 아마의 입에서는 얕게 노래가 나왔다.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이 길을 내딛고 하얗게 반짝이는 햇살이 골목을 비추었다.



불룩 튀어나온 보도블럭에 가방이 위로 튀어올랐다. 가볍게 위로 올라가는 가방에 아마의 입이 벌어졌다.

“아, 이런.. 흔들리면 안돼는데..”

울쌍을 지은 아마가 가방을 제 몸통쪽으로 들어올렸다. 고개를 돌며 주위를 보면 아마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길 잘 살펴야겠네. 흔들리면 안돼니까..!”

아마가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었다. 가방에 달린 바퀴가 도록도록 굴러갔다.

-

철커덕

문이 열리고 아마의 뽀얀 얼굴이 집으로 들어섰다. 집 안이 어두웠다.

“일홍니임, 아마 릴리스 다녀왔습니다아.”

아마가 생글생글 웃으며 신발을 벗었다. 여행가방을 들어 집 안으로 옮기고 겉옷을 벗었다. 어두컴컴한 채 가구들이 보이지 않는 모습이 아마의 눈에 담겨졌다. 가장 어두운 곳 더욱 짙은 그림자 사이로 하얀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마의 하얀 손이 여행가방을 향했다.

“쨔잔! 일홍님 외출은 어떠셨어요?”

여행가방이 열렸다. 눈이 감긴 일홍의 머리가 가방에 존재했다. 천과 쿠션으로 가득한 가방 안쪽 그 가운데 일홍의 머리가 놓여있었다. 수줍게 웃은 아마가 일홍의 머리를 들어 품에 껴안았다.

“일홍니임, 저는.. 일홍님만 있으면 다아아 괜찮아요오.”

아마가 몸을 일으켰다. 앞에 놓인 여행가방을 발로 밀어버린 아마가 몸을 움직였다. 침대가 출렁였다.

“일홍님이 주무셨던 침대라서 그런지 일홍님 냄새가 나요. 이 집도 일홍님 냄새로 가득해서 좋아요. 일홍님은요? 일홍님은 제 가방 좋으셨어요? 일부러 일홍님 좋으시라구 제가 일홍님 머리만 넣어드렸어요. 몸이 있으면 일홍님은 가방이 불편하실 거잖아요 그쵸?” 

황홀한 듯 볼까지 붉힌 아마가 일홍의 머리를 꼬옥 껴안았다. 품에 안긴 일홍의 머리에 부빗거리며 아마가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일홍님일홍님일홍님일홍님일홍님... 일홍님은.. 제 곁에 있어주실 거죠? 퇴마사 아마 릴리스에게도 같이 있어주시던 일홍님이니까.. 일반인 이마 릴리스도 같이 있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건 제 예상이 맞았어요! 일홍님, 일홍님. 사랑하는 일홍님. 부디 제게만 있어주세요. 밖에 잠시 나가더라도 일홍님과 같이 있고 싶어요. 일홍님.. 일홍님을 정말.. 사랑해요.”

몽롱한 아마의 눈이 흐릿해졌다. 점점 흐려지던 아마의 눈이 감겼다. 품에 있던 일홍의 머리가 헐렁해진 팔에 살짝 옆으로 굴렀다. 새근거리는 아마의 숨소리가 방을 채웠다.



구석에 있던 검은 그림자가 쓰러졌다. 어렴풋이 보이는 하얀 손가락이 꺾이고 바스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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