멮 9/26 전력 60분

주제: 증오






쏟아지는 핏줄기는 장엄한 폭포와도 같았다. 차가운 판에서부터 바닥으로 떨어지는 핏줄기는 차가운 금속을 더더욱 차갑게 민들었다. 겹쳐지는 고통은 목을 괴롭히고 뇌를 괴롭혔다. 통증은 뇌를, 뉴런을 파괴했다.

*

지지직거리며 공간이 설정되어갔다. 파릇한 풀잎도 싱그러운 나뭇잎도 깜빡이며 나타났다. 두리번거리는 작은 아이가 눈물을 내보였다.

“흐윽... 어딨어..? 어딨어어어!!”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안타까이 울려퍼졌다. 훌쩍거리는 아이의 앳된 목소리가 점점 울음으로 변했다.

“흐으.. 흐우와아아아앙!”

공간에 목이 터져라 우는 꼬마가 남았다. 살랑이던 푸른 잎들은 노랗게 갈대로 변하며 너른 갈대밭으로 나타났다.

바스락

울음소리는 계속 되고 갈대가 바스락거렸다. 멍한 눈빛의 청년이 나타났다. 초점 없는 눈과 피로 얼룩진 청년은 우는 아이의 가까이에 다가갔다. 우는 아이는 청년을 흘끗 보고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흐윽... 너는... 으으.. 흐어어엉!”

멍한 눈의 청년은 아이의 옆에 주저앉았다. 청년이 무릎을 모으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갈대가 바람에 흩날렸다. 갈대가 흩어졌다. 고개를 숙인채 비틀거리며 청년이 다가왔다. 어둡기만 한 청년의 얼굴이 우는 꼬마와 무릎에 고개 묻은 청년을 직시했다. 어둡던 청년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 하... 하하하하하하하하!!!”

“흐아아아앙!!”

울음소리와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섞였다. 광소를 터트리는 청년에게 우는 꼬마아이가 흡수되었다. 무릎에 고개를 묻은 청년도 흡수되었다. 청년의 광소가 그쳤다.

“겔리메르..!”

청년의 눈이 증오로 얼룩졌다.

“겔리메르!! 겔리메르!!!”

청년의 몸이 기계로 변하기 시작했다. 철컥거리는 몸은 파괴를 행했다. 살랑이던 갈대밭은 검게 재가 되고 땅은 파였다. 검은 연기가 솓구치고 불길이 일었다. 

“하.. 하하... 빌어먹글! 겔리메르!! 이 개자식!!”

청년이 제 얼굴을 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강한 악력에 청년의 얼굴이 안으로 움푹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드득

바닥이 갈라졌다. 마른 하늘에 벼락이 내려쳤다. 검은 바닥이 갈라지고 벼락이 떨어지며 갈대에 불이 붙었다. 청년은 그런 공간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오늘도.. 실패인가.. 나는 언제까지...”

아릿한 목소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번개가 청년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공간은 무너졌다.

*

멍한 눈이 깜빡였다. 고개를 갸웃거린 청년이 몸을 움직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작은 기계소리가 울렸다.

“제논. 임무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뒷모습이 울부짖었다.

갈 곳을 향하지 못한 증오는 어디로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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멮 9/12 전력

주제: 소원



땅이 갈라지고 불타며 생명을 없앴다. 검은 로브는 먼지와 피가 묻어있었지만 꼿꼿이 서있었다.

“내가.. 희생할께.”

“은월!”

경악어린 목소리들이 질타했다.

“희생하지 않으면 검은마법사는 계속 존재하잖아? 우리는 그걸 막기 위해 모인 거니까 괜찮아. 내가 할께.”

저마다의 인물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치욕과 분노가 범벅되어 자기혐오감으로 변하는 눈동자들이 은월을 쳐다봤다. 자기혐오로 가득찬 눈들을 은월이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꾸했다.

콰아앙!!

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섬광은 눈을 가렸다. 그리고 추억도 가렸다.

*

쫑긋거리는 여우귀가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귀가 재빠르게 파닥거렸다.

“심장소리..”

녹빛의 풀밭에 검은 머리는 이질적이였다.

“이게 뭐지? 귀가 없네? 꼬리도 없어!”

-

“가지마!! 그냥 여기에 있자!!”

눈물은 볼을 타고 턱에서 떨어져내렸다. 방울지는 눈물이 풀의 숨을 죽이고 은월의 숨도 죽였다.

“랑아..”

안타까움이 가득 들어간 목소리가 떨렸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또다른 인연을 뒤로했다. 움직이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

“하아...”

내뱉어진 한숨이 귀를 때렸다. 재빠른 발걸음이 숲을 지나쳐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낙낙한 흙길이 사람의 흔적을 안내했다.

“저기... 검은마법사는 봉인이 된지 얼마나 되었나요?”

“으엉? 뭐야 당신 어디에서 왔길래 그런 것도 모르는거야? 위대한 다섯명의 영웅들이 검은마법사를 봉인한지 10년이 되었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발 뻗고 편안하게 살고 있는걸세!”

은월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혹... 말입니다.. 혹... 은.. 은월이라는 이를 아십니까..?”

꼬랑지 수염을 쓰다듬던 남자가 궁금증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다.

“응? 은월이라니? 그게 누군가? 혹시 자네가 아는 사람인가?”

어리둥절한 이의 얼굴에 은월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뒤를 돌아 길을 가는 뒷모습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은월이라.. 그게 누구... 방금 누가 왔다가 갔던가..?”

남자는 귀를 후비적거리고는 과일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

“기억.. 하지못해기억하지못해기억하지못해기억하지못해”


멍한 눈빛의 은월이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 나뭇가지와 부딫쳐 몸 곳곳에 상처가 나 피가 배어나왔다. 널다라한 공간이 나타났다. 작은 연못과 평평한 공간에 은월이 주저앉았다. 차가운 연못물에 은월의 손이 담겼다.

“하... 으...”

차가운 물이 은월의 얼굴을 때리고 은월이 고개를 숙였다.

“.... 랑.. 랑... 랑...!!!”

은월이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반짝이며 은월이 사라졌다.

*

은월이 풀밭에 내려앉았다. 비틀거리며 은월이 달려나갔다. 초목으로 이루어진 집들이 나타났다.

“저게 뭐야? 귀가 없어! 꼬리도 없는데?!”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은월의 귀를 때렸다. 경계어린 눈들이 은월을 괴롭혔다. 은월이 사라졌다. 다른 존재에 수근거리던 입들이 곧 사라졌다.

*

“나를... 나를 기억하지 못해... 나를...”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은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그러진 몸이 잔뜩 웅크려졌다.

“나를.. 기억해줘...”

-

번쩍

눈이 나타났다. 울멍거리는 눈이 눈물을 쏟아냈다.

“하...”

은월이 제 눈을 닦고 머리를 비볐다. 흐느적거리며 몸을 움직여 욕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잘게 들리고 물로 축 처진 은월이 나타났다. 잘게 움직여 부엌으로 향한 은월이 볼을 긁적였다.

“먹을게 없네..”

터덜터덜 움직이던 은월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나타난 마을에 은월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험가니?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인자한 얼굴과 인자한 물음에 은월이 어색하게 웃었다. 밍기적거리며 식료품을 산 은월이 뒤를 돌았다.

“처음보는 얼굴이구려 허허”

은월의 귀가 쫑긋거렸다. 늦은 걸음이 움직였다. 현관에 은월이 주저앉았다. 식료품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나를.. 기억해줘.. 제발.. 나를..!! 은월이란 존재를.. 기억해줘..”

은월이 몸을 구부렸다. 구부정하게 옹송그려진 몸이 애처로이 떨렸다.

“소원이.. 하나 있어요.. 누군가.. 제발.. 누군가가... 저를 기억하게 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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멮 60분 전력

주제: 만약에




꽃잎이 살랑였다. 들쑥날쑥하면서도 가지런한 풀잎 역시 살랑였다. 바람이 간드러지는 웃음을 지으며 지나갔다. 선명하게 내려보는 하늘빛에 검은빛 머리카락과 하얀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입술이 뾰로통하고 볼을 부풀린 검은 남성의 모습에 하얀 남성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매그너스.”

매끄럽게 뱉어지는 이름에 매그너스의 귀가 빨개졌다.

“매그너스.”

옆으로 돌아가는 몸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발갛게 물든 귀와 목덜미가 눈에 박혀 들어갔다.

“매그너스.”

뒷모습을 껴안고 귓가에 한번에 들어가는 이름에 매그너스가 결국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불러!! 닳아!”

“그렇게 발간 얼굴로 소리쳐 봤자 귀여울 뿐이다.”

“이익!!”

매그너스가 몸에 감겨진 팔을 강하게 풀고 쿵쿵거리며 걸어갔다. 심술맞게 걸어가는 듯 하지만 느려져 가는 속도에 실소를 터트렸다. 천천히 뒷모습을 향해 다가가고 뒤를 껴안으며 풀잎에 내려앉았다.

“삐지지 마라. 나에게 뒷모습을 보이지 마.”

“으.. 카이저... 네 놈..!”

귓바퀴를 뭉근하게 핥고는 속삭이는 말에 매그너스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장미꽃같은 외형이 장미꽃처럼 물들었다. 카이저가 매그너스의 목덜미에 연신 입을 맞췄다. 검은 머리카락과 하얀 머리카락이 녹빛의 풀잎 위로 엉켜들었다.

“연모하고 있다. 매그너스, 너를 연모한다. 나를 떠나지 마라.”

꽉 붙들고 매그너스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카이저가 중얼거렸다. 아릿하게 다가오는 감정선에 매그너스가 카이저의 팔을 풀었다. 몸을 틀어 마주보고는 팔을 뻗었다. 마주보는 상태로 껴안은 포즈가 되고 매그너스가 카이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대었다.

“떠나지 않는다. 너를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아.”

곧은 금빛의 눈동자가 거목같은 파란 눈동자와 마주쳤다. 살그마니 다가가는 입술이 맞물렸다. 나긋나긋하고 다정하던 입맞춤은 점점 격해지고 질척해졌다. 그럼에도 그 속에 숨은 애정은 오롯이 남아 마음을 전했다. 격한 입맞춤에 카이저가 매그너스의 위로 올라타고 매그너스의 팔이 카이저의 목을 끌어당겼다. 탄탄한 몸이 서로 얽히고 대비를 이루는 머리카락도 얽혔다. 숨소리가 그쳤다.

“너를 연모한다. 너를 연모하고 또 연모한다. 너는 나에게 소중한 이다.”

길다란 속눈썹이 내려앉고 그림자가 금빛눈을 가렸다. 깃털처럼 카이저의 입술이 매그너스의 눈에 내려앉았다. 속눈썹을 핥고 눈꺼풀을 열어 눈에 혀를 대었다. 까슬한 혀가 부드러운 안구를 핥고 선명한 금빛을 매만졌다.

“읏.. 카이저.. 그만...”

눈에서 떨어진 입이 이마에 내려앉았다.

“괜찮다.”

단정한 한마디가 매그너스의 귀를 타고 매그너스가 욱한 얼굴로 카이저의 위를 점했다.

“너말이야..! 눈은 하지 말라고!”

매그너스가 입을 카이저의 눈으로 돌진했다. 긴 편에 속하는 속눈썹을 핥고 강하게 눈꺼풀을 열었다. 격정적으로 눈을 핥고 눈꺼풀을 깨물며 매그너스가 열중했다. 눈을 살짝 핥고는 의기양양하게 매그너스가 고개를 들었다.

“흥 눈은 하지 말라고. 느낌 좀 이상하잖아!”

반들거리고 당당하게 어깨를 핀 매그너스의 모습에 카이저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매그너스의 허리를 잡아 아래로 눌렀다. 매그너스의 상체가 아래로 내려가고 카이저가 매그너스의 뒤통수를 잡아 입을 맞댔다.

“나의 매그너스. 매그너스.”

붉은 얼굴은 붉은 입술을 열었다.

“나, 나도 좋아한다...”

카이저의 쇄골에 매그너스의 얼굴이 내려앉았다. 따끈따끈하게 느껴지는 얼굴이 카이저의 팔이 매그너스의 등을 토닥였다.

평행하던 검은빛과 하얀빛은 하나의 점으로 연결되었다. 연결은 얽히고 얽혀 하나의 면이 되었다.

*

“허얽!”

식은땀이 떨어졌다. 강대한 힘은 육체를 괴롭혔다. 영글지 못한 육체는 강대한 힘에 파들거리며 강제로 버텼다.

투두둑

눈물이 눈에서 떨어져 내렸다.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이 애달피 울었다.

“뭐지.. 왜 눈물이...”

욀칵왈칵 솓구치는 눈물에 파란눈은 당황으로 가득찼다. 눈을 가득 채우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카이일!!”

멀리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은 사라졌다.

기억은 사라진다. 당사자가 잊는다면 그건 기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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