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이와 9/9 전력 60분 
주제: 신뢰 





 옅은 비누향 사이로 살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공통적인 향이라 한들 특유의 살내음이 섞여버릴 경우 독특한 향이 되어 머리를 팽팽 잡아당겼다. 누구라 한들 마음에 품은 이가 평범한 향 가운데 살내음을 숨기고 다가온다면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법이였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다. 
동시에 제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한 손 가득 잡히는 배구공 탄력을 무심히 흘렸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상황이였지만 훌쩍 큰 키는 배구공을 통통 작게 튀길 수 있게 만들었다. 길쭉한 손이 배구공을 튕겼다. 속눈썹이 깜빡였다. 

 “흐응..” 

배구공 가득 손자욱이 들어갔다. 생그랗던 얼굴이 거멓게 죽기 시작했다. 한가득 집착이 어리기 시작했다. 음영이 어그러졌다. 

“이와쨩. 이와이즈미. 이와이즈미 하지메. 하지메.” 

무릎을 끌어안았다. 침침하게 어두워진 눈이 팔 아래로 사라졌다. 살랑이는 갈색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하지메. 이와이즈미 하지메. 단단하게 앞으로 뻗어나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나의 하지메.” 

풀어버린 무릎을 제치고 손을 깍지꼈다. 파르라니 손가락이 하얗게 새었다. 맞잡은 손이 이마에 닿았다. 꾸욱 감은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을까.” 

 번뜩 귀광이 나타났다. 오이카와의 눈이 진지하게 변했다. 

 “우정은 그만하고 싶어. 하지메..”

 입술을 깨물었다.

 “신뢰가 너무 깊잖아. 하지메..” 

푸욱 고개가 숙여졌다. 슬그머니 물기가 어렸다. 비죽 입술이 튀어나왔다. 10년은 거뜬한 신뢰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얌굿 9/4 전력 60분 
주제: 잠결에 







 “으웅..” 

 오물오물 야마구치의 입술이 움직였다. 꼬옥 베게를 껴안고 고로롱 소리를 냈다. 야마구치가 눈썹을 찌푸렸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 야마구치 깨워야하는 거 아니야?” 

 히나타가 흘끗 쳐다보았다. 조로록 여러 시선이 야마구치를 향했다. 사와무라와 스가와라가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정말. 깨워야 되려나.” 

 “낑낑 앓는데..” 

살그마니 니시노야와 타나카가 다가갔다. 잔뜩 끙끙대는 얼굴에 땀까지 얼핏 맺혀있자 기겁을 하고 손을 뻗었다. 드르륵 문이 열였다. 츠키시마가 수건을 목에 걸치고 있었다.

 “모두 뭐하세요.”

 “츠키시마!” 

불쑥 츠키시마의 시야에 타나카의 빡빡머리가 나타났다. 츠키시마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뭐하세요.”

 “츠키시마! 야마구치가 끙끙 앓아!” 

 “네? 아. 야마구치 지금 자요?” 

츠키시마가 머리를 툴툴 수건으로 털며 야마구치에게 향했다. 여전히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츠키시마가 제 몸을 수그렸다.

 “타다시.” 

츠키시마의 손이 야마구치의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눈 밑을 건드리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야마구치의 얼굴이 펴지며 눈이 살그마니 떠졌다. 

“케이..?”

 야마구치가 팔을 뻗었다. 츠키시마가 능숙하게 야마구치의 팔을 제 목 뒤로 넘겼다. 품에 안겨드는 야마구치를 츠키시마가 끌어당겼다. 고로롱 야마구치가 제 얼굴을 부볐다. 야마구치의 얼굴이 편하게 펴졌다. 새액새액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댕그란 눈들이 츠키시마를 응시했다. 동글동글 푹 죽어버린 눈에 츠키시마가 얼굴을 찌푸렸다.

 “으우오아아아!!!!” 

 “히나타!” 

히나타가 소리지르자 사와무라가 히나타의 입을 막아냈다. 잔뜩 찌푸려져 화를 표현하던 얼굴이 적당히 줄어들었다.

 “히나타. 야마구치가 자고있으니까 일단 조용히. 알았지?”

 히나타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사와무라의 손이 떼어졌다. 반짝반짝 히나타의 눈망울이 츠키시마를 쳐다보더니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우물쭈물 카게야마도 가까이 다가섰다. 

 “츠키시마! 어떻게 된거야?” 

은근슬쩍 묻는 말에 방 안에 있던 얼굴들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얼굴로 꽂히는 시선들에 츠키시마가 불편한 듯 팔에 힘을 주었다. 

 “우웅..” 

 야마구치가 몸을 꿈틀이자 츠키시마가 등을 토닥였다. 

 “그거. 그거 말야!”

 과하게 반짝이는 니시노야의 눈에 츠키시마가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린 곳에도 엔노시타가 호기심 섞인 얼굴로 난처하게 웃자 부루퉁하게 변했다. 

 “쳇. 별건 아닙니다.” 

 츠키시마가 야마구치를 쳐다보았다. 느슨하게 풀어진 얼굴이 나타났다. 길쭉한 손가락이 야마구치의 볼을 간질였다. 

 “어릴 때 서로의 집에서 자고간 적이 있었는데 야마구치가 밤 중에 끙끙대던걸 토닥이던게 계속 이어졌을 뿐이에요.” 

 부루퉁한 말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소중함 가득한 얼굴에 부드러운 얼굴들이 모두의 얼굴에 만연했다. 

“그거면 됐어. 츠키시마 혹시 어디에서 잠을 자던지 그렇게 되는거야?” 

“아. 지금까지 된 거로는 그렇네요. 잠결에 끙끙 앓고 딱히 다른 사람 품에 안신 적은 없네요.” 

 “앗 그래? 그러면 직접 해보면 되지!” 

타나카가 낼름 입을 열었다. 사와무라와 스가와라의 눈이 마주쳤다.

 “으음.. 그 것도 그렇네. 합숙 때마다 야마구치가 먼저 잠들어서 끙끙 앓으면 조금 달래줘서 재우면 될테니까.” 

 “그렇네. 계속 끙끙 앓는걸 볼 수는 없으니까.” 

이래저래 말을 엮다 사와무라가 스가와라에게 떠밀렸다. 

 “하아..” 

야마구치가 어설프게 사와무라의 품에 들어갔다. 불편한지 몸을 뒤척이고는 다시 끙끙 앓았다. 이리저리 조심스러운 손들이 야마구치를 품에 안았지만 끙끙 앓는 통에 다시 츠키시마의 품으로 돌아갔다. 불만이 쏙 들어간 츠키시마의 표정에 키들키들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어쩔 수 없네. 츠키시마 너도 피곤할텐데 눕고 이만 자자.”


 주섬주섬 모두 흩어졌다. 이불까지 푸욱 덮고 불이 꺼졌다. 츠키시마의 품에는 여전히 야마구치가 있었다

 “으우.. 츳키.. 케이.. 좋아해..” 

 살그마니 들린 잠꼬대에 츠키시마가 야마구치를 꽈악 껴안았다. 츠키시마의 입술이 야마구치의 이마에 닿았다. 

“잘 자 타다시. 나도 좋아해.” 

 작은 목소리가 야마구치의 귓가에서 흩어졌다. 밤이 깊었다.


우카타케 9/3 전력 60분 
주제: 열병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안쪽부터 솟구친 열이 온 몸을 강타했다. 열병이였다. 



 깜빡이는 두 눈은 순하게 휘어졌다. 동그란 눈매가 상냥함으로 가득차 휘어지고 말랑한 볼은 붉게 물들었다. 환하게 웃어주는 얼굴에 열이 올랐다. 우카이가 애써 고개를 돌렸다. 간질간질 가슴께가 울컥였다.

 “우카이군. 괜찮은가요? 체온이 높아보이는데요?”

 “아, 아. 괜찮아, 선생. 단순히 체온이 오른 것 뿐이니까. 물 한번 먹으면 괜찮아질거야.” 

 타케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그란 머리가 아래위로 흔들리는 것을 계속 쳐다보았다. 설핏 보이는 목라인에 시뻘개진 얼굴을 돌렸다. 우카이 케이신은 지독한 열병에 걸렸다.




 “하아..” 

우카이가 담배를 뻐끔였다. 푹푹 위로 솟아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연기는 금세 타케다의 웃는 얼굴로 변했다. 

 “으악!”

 쿠당탕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우카이가 제 뒤통수를 슬슬 문지르며 책상을 잡아 상체를 올렸다. 타케다의 얼굴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의자를 마저 세운 우카이가 털푸덕 주저앉았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아아아.. 젠장.. 지독하네.” 

 우카이가 머리를 흐트렸다. 머리띠마저 벗고는 턱을 괴었다. 상점 문을 쭈욱 쳐다보았다. 

 “선생이 올까..” 

 꿈뻑꿈뻑 눈꺼풀이 움직였다. 

 “우카이군!” 

 우카이의 눈이 커짐과 동시에 타케다의 시선이 우카이를 향했다. 타케다가 우카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선생? 왜 그래?” 

우카이가 타케다의 근처에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타케다의 이마에 우카이의 손이 닿고 이마를 대었다. 

 “열은 없고.. 오늘 무리한 거야?” 


 타케다가 퍼엉 볼을 붉혔다. 팽글팽글 돌던 눈에 타케다가 손을 뒤로 돌렸다. 

“저저저저저 이만 가볼께요 우카이군!!!!”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우카이가 멍하니 쳐다보더니 제 손에 남은 온기를 쥐락펴락 움직였다. 주먹 쥔 손을 이마에 대었다. 귀가 붉었다. 우카이가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 선생.” 

 열병이 피어올랐다. 



 “으으으.. 우, 카이구운..!!” 

 타케다가 벽에 등을 기댄채 주저앉아 있었다. 발간 얼굴이 도드라졌다. 손으로 제 붉은 볼을 잡았다. 머리띠를 하지 않아 자연스레 내려온 머리를 한 우카이의 모습이 타케다의 앞에 퐁 나타났다. 타케다의 눈이 팽글팽글 돌았다.

 “이이이이이..!! 이 무슨..!” 

 열병이 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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