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님이랑 연성교환
주제: 밤바다





짐정리를 하다가 점점 노을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수평선으로 깔리는 홍빛에 얇은 가디건을 손에 쥐고 신발을 구겨 신었다. 짭쪼롬한 바다내음이 코로 가득 몰려왔다. 웃음소리가 귀를 스쳐갔다. 잠시 주변에 눈을 돌리다 바다를 향해 걸었다. 점점 짠내가 강해지고 파도소리가 가까워졌다. 바다가 나타났다. 붉은 해가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해가 저물어갔지만 아직 바다는 붉었다. 노랗고 붉은, 주홍빛을 띄는 바다가 너를 닮았다.

“하아..”

너를 꼭 닮은 색이 찬란하게 바다를 물들였다. 저처럼 너도 나를 물들였다. 느리게 저물어가는 해처럼 너도 저물었다면 좋았을 것을. 너는 어째서 그리 빨리 저버렸나. 왜그리 빨리 저버렸을까.

고등학교까지 엮였던 소꿉친구의 관계를 보다 달달하고 아릿하며 행복한 관계로 발전시킴으로서 너와 나는 행복을 만끽했었다. 앞선 시간을 보낸 것이 헛되지 않게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은 당연히 아는 것이였다. 그 뿐일까 부모님들 마저도 조금은 알고 계셨다며 인정해주셨다. 아쉬움 가득하셨지만 정말로 가족이 되었다고 하시며 웃으셨지. 나 역시 그리 느끼고 충만한 감정이 마음에 피어올랐었는데.. 네가 그리 저물지 않았다면... 너는 정말이지 그렇게 커다란 존재였고 존재이며 존재했을 거였다.

해가 사라졌다. 까만 밤하늘이 바다를 물들였다. 그래. 너 역시 저랬다.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 거멓게 죽어버렸었지. 나를 보며 웃어보이던 그 얼굴도, 나에게만 보이던 색기어린 얼굴도. 아니, 네가 나에게 보이고 주었던 모든 감정, 행동들이 모두 붉게 물들며 철지난 동백꽃처럼 떨어졌었다. 그렇게 저버리는 것을 내가 모두 보았다. 그 와중에도 너는 아스라이 웃어보이며 내 걱정을 했었다. 짠내 짙은 바람이 볼을 스쳤다. 밤바다가 울렁였다. 손이 허전했다. 검고 검은 바다가 앞에 펼쳐져 있는 이 상황에서 너는 어떤 말을 했을까.

‘너랑 같이 보니까 운치있는 거 같아.’
‘다음에 또 보러오자! 그 때에는 밤바다 보면서 밤을 새는거야!’
‘진해야! 불꽃놀이 하면 예쁠 거 같아!’

너는 정말이지 내 빛이였고 내 꿈이였으며, 나의 하나뿐인 소중한 애인이였다. 아니, 애인이다. 너는 아직 나에게 있어서는 잊지 못하고 잊지 못할 내 하나뿐인 사랑이니까.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는지 볼이 차갑게 식었다. 챙겨온 가디건을 대충 꿰어입었다. 멍하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걸까. 저녁놀을 괜히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놀을 보지 않았다면 밤바다를 보며 울 일은 없었을텐데. 아니. 그저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방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점점 볼에 감각이 사라졌다. 계속 눈물이 나는지 따뜻하고 차가워짐을 반복했다. 아마 내일 일어나면 눈이 부어있겠지. 네가 봤다면 깔깔 웃으면서도 얼음을 대주었을거야. 조금씩 대어주다가 눈이 정도껏 가라앉으면 뽀뽀를 해주면서 웃었겠지. 활짝 개화한 진달래꽃처럼 너는 그리 웃었을거다. 그러면 나는 네가 흔히 말하던 개화한 벚꽃처럼 웃었을테지.

푹! 큰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손잡고 지나가던 연인 중 남자가 엉덩방아를 찐 탓이였다. 멋쩍게 웃는 그 얼굴 위로 짖궃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시원스런 웃음소리에 부루퉁한 표정의 남자가 제 애인을 잡아 넘어트렸다.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갑자기 배알이 꼴려 고개를 돌렸다.

나도 저러던 시간이 있었는데. 너와 내가, 비록 동성커플은 환영받지 못한다한들. 네가 같이 있기에 행복하던 그 시간들이 있었는데. 울컥 솟구치는 짜증에 주머니를 뒤졌다. 값 올라간 담배 한곽이 잡혔다. 열어재껴 한개피를 물었다. 하얗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밤바다에 사별한 동성애인을 둔 남자가 알콩달콩한 커플을 보고 배알이 꼴려 담배를 문다라. 하찮고 하찮은 놈아. 5년. 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러냐. 내면이. 울부짖었다. 소꿉친구로 18년!! 애인으로 9년에 가까운 세월을!! 어떻게 5년으로 잊겠나!! 피부가 벗겨진 듯 쓰렸다. 숨을 들이마시자 벌겋게 담배가 달아올랐다. 폐 속으로 연기가 차올랐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밤바다와 뒤에서 빛을 발하는 가로등, 그 사이 애매한 밝기 속에 서있는 사람 하나. 나는 왜 이 곳에서 떠나지 못하는가. 앞이던 옆이던 가야하는데 머무르고 있을까. 물었다. 내가 잊을 수 있어? 내가 가슴에 묻을 수 있어? 과거를 지켜볼 수 있어? 내가 달래를 포기할 수 있어? 모든 질문의 답은 아니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불가능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차가운 볼이 느껴졌다. 또한 눈물자욱이 선명히 느껴졌다. 나는 달래가 보고싶다. 이거 하나만은 인정할 수 있었다.

더듬거리며 목걸이를 찾았다. 얇게 이어진 줄에 달린 두개의 링을 잡았다. 깔끔하면서도 유려한 반지에 괜시리 눈이 시렸다. 이 걸 끼던 네 손가락이 생각났다. 네 손가락에 끼워줄 때 너는 발간 눈으로 웃었다. 고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고 나는 그 볼을 감싸쥐며 달디 단 키스를 했었지. 반지에 입을 맞췄다. 앞으로 22년이 지나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 아니, 더이상 울지 않을 수 있을까. 27년의 인연 중 5년이 지났다. 여전히 나는 아프다. 나머지 22년이 지난다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 눈을 뜨고 바라본 앞은 검고 까맸다. 밤바다는 어둡고 질척였지만 그만큼 감성적이고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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