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깜빡일수록 시야가 트였다. 안경을 쓰지 않아 흐린 시야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해가 뜨지 않아 아직 어두운 방은 적막했다.
“큼.”
목을 울리자 자는 동안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르렁거렸다. 더블 침대가 넓었다. 빈 침대를 손으로 한 번 쓸며 자연스레 침대에서 내려왔다.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하루의 시작에는 별거 없었다. 간략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날씨에 따라 옷을 맞춰 입고 밖으로 나선다. 하루의 일과를 확인한 후 그대로 쫓으면 다였다. 그냥 그런 하루를 반복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규칙적인 하루 사이 규칙적으로 츠키시마 케이의 이성적인 일생 중 가장 감정적인 행동을 진행한다. 그 일마저 다 하고 나면 츠키시마 케이의 하루 일과가 끝났다.
츠키시마 케이의 일생은 단조로워졌다.
주말이면 츠키시마의 행동반경은 더욱 좁아졌다. 집 밖으로 외출하는 경우의 수가 무척 줄었기 때문이었다. 사적인 약속은 오랜 연이 아니면 잡지 않았고, 개인적인 용무로 인한 외출이 아니면 나가지 않았다. 애초 츠키시마 케이라는 인간은 인사이드형 인간이었고 한 기점을 기준으로 더욱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뿐이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음악이 방을 채웠다. 츠키시마 케이의 개인적인 물품이 가득한 방은 곳곳에 다른 누군가의 흔적이 흩어져 있었다. 눈을 감자 길쭉한 속눈썹이 내려앉았고 음영이 졌다. 노란, 꿀빛의 홍채가 사라졌다.
츠키시마 케이는 스스로를 차단했다.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 일의 다른 날이었다.
하품이 길게 나왔다. 늦은 시간이었고 가로등만 깜빡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신발 굽과 바닥이 부딪치며 탁탁 소리를 내었다. 골목길은 어두웠고 가로등만 약하게 불빛을 내고 전신주가 위로 불뚝 솟아 있었다. 익숙한 길을 쫓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야기는 여전했다. 같이 조르륵 줄을 서 들어갔던 복도를 지나 어린 시절을 보낸 문을 열면 약간의 먼지내가 나는 방이 나왔다.
“음..”
들고 온 가방을 방에 내려놓고 방을 금세 나섰다. 하나씩 차근차근 보고싶은 마음이었다.
천천히 걸으면 눈에 익은 장소가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익숙한 암녹색이 장소를 따라 나타났다. 초등학교를 향해 걸으면 그 때의 기억이 겹쳐졌다. 점차 교차되는 기억과 현재를 보며 길을 찾아 걸었다. 초등학교를 지나고 중학교를 향했다. 지금까지의 기억을 돌아보기와 같았다. 데굴데굴 낙엽이 굴러갔다.
배구는 놓을 수 없었다.
카라스노 고교는 여전히 똑같았고 세월에 따라 수리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운동장은 넓었고 암녹색뿐만 아니라 검은색과 주황색, 노란색 역시 눈에 들었다. 늘어난 머릿수는 카라스노 고교 1학년 시절의 부원 수와 같았다.
“저 때가 가장 인원수가 적었지.”
툭 말을 뱉은 츠키시마가 고개를 돌리며 고교 안으로 들어갔다.
* 각 장면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와, 근데 둘 다 미인형이라 그런지 잘 어울리긴 하, 어? 여기 본다. 앗, 잠깐, 야마구치! 같이 가!”
너무 놀라 멈칫한 사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든 츳키와 눈이 마주쳐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츳키, 여자친구, 있었구나‥ 나는, 전혀, 몰랐는데‥
차마 마주 보고 말을 걸 수가 없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 교실로 달려갔다.
급하게 교실에 돌아와 가방을 챙겨서 달려나갔다. 옆의 타카시가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머릿속에는 아까 그 장면만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점심 먹지 말걸. 아니, 매점에 들르지 말걸. 그럼 그런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두 사람‥ 잘‥ 어울렸지. 얼마나 사귀었을까? 학교에서 몰래 만나 키스할 정도면 꽤 오래됐으려나? …그런데 난 둘이 사귀는 줄도 모르고 혼자 좋아하고 있었구나.’
아니, 애초에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겠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쾅!
“똑바로 대답해.”
옆에 있던 나무를 강하게 내리치며 노려보자 앞에 있던 녀석의 웃음이 짙어지는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