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21 수정

 

인과

 

좋아한다좋아한다좋아한다... 빼곡히 적힌 좋아한다 라는 글자에서 시작한 샤프가 쭉 뻗은 손에 갇혔다. 차근차근 시선을 올리자 고운 손으로 얼굴을 덮은 진해가 보였다.

 

"진달래. 달래야."

 

긴 손가락이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살짝 움직이는 손이 글자를 적었다.

 

'달래가 피한다. 나를. 왜? 언제부터? 고등하교에 들어오고부터. 왜? 왜 피하지?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소꿉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는데?달래가 언제부터 피했지? 고등학교 초반은 아니였는데? 분명 같이 지냈는데? 내 눈빛을 알았나? 아니, 그럴리가 없어. 달래는 마이페이스에 둔해서 모를텐데? 그럼 뭐지. 대체 뭐 떄문.. 아, 여자애들 때문인가 여자애들이 너무 많이 붙어서.. 젠장 내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나아지려고..'

 

띵동띵동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벌컥 문이 열리고 진해의 눈이 점차 아래로 향했다. 조그마한 머리통, 댕그라한 두눈과 발그레한 볼까지 노오란 유치원복을 입은 달래였다.

 

"지내야? 왜 그러케 커져써?"

 

순간 멍하니 있던 진해가 눈을 크게 뜨고는 달래를 안으로 들였다.

 

"달래야, 잠깐 여행 온 거라고 생각해. 아주머니랑 아저씨는 우리 부모님과 같이 여행 가셨어. 일단 나랑 같이 있자."

 

"에? 웅. 그럼 어쩔 슈 없찌."

 

고개를 꾸닥이며 말을 하는 달래의 모습에 진해가 애써 얼굴을 돌려 감췄다. 갸웃거리는 달래의 조그마한 머리가 귀여웠다.

 

*

 

달래의 자그마한 몸이 움직이고 얼굴이 티없이 밝았다. 소파에 앉아 보는 진해의 얼굴에도 미소가 티끌 하나 없이 밝았다.

 

"달래야 이리 와봐."

 

"웅? 응."

 

종종 달래가 다가오고 달래가 서있는 키가 진해의 앉은 키보다 작았다. 휘어지는 눈꼬리와 올라가는 입까지 달래가 진해의 얼굴을 보다가 배싯 웃었다.

 

"지내 예쁘다!"

 

 

진해의 볼에 손을 얹은 달래가 볼을 쓰다듬고는 손을 내렸다. 진해가 큭큭 웃으며 달래를 무릎 위로 욜려 앉혔다.

 

 

달래의 볼에 진해의 입술이 닿고 달래의 큰 눈이 더더욱 커졌다.

 

"에, 지내야?"

 

"아아 달래 네가 너무 귀여워서."

 

"아닝데... 지내가 더 귀여워!"

 

달래가 고갯짓을 몇번 하더니 진해의 볼을 잡아 당겼다. 달래의 작은 입이 진해의 입에 살짝씩 닿았다 떨어졌다.

 

"내가 이겼찌! 지내가 더 귀여워!"

 

의기양양하게 진해를 쳐다보는 달래의 모습에 진해가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아, 정말.."

 

순간 진해의 얼굴에 음영이 어렸다.

 

"지, 지내야 왜그래? 어디 아파? 응?"

 

안절부절 못하는 달래의 행동에 진해의 입꼬리가 손에 가려진 채 말려 올라갔다. 순식간에 얼굴을 시무룩하게 봐꾼 진해가 입을 열었다.

 

"달래야, 내 첫키스였는데... 첫키스를 한 사람과 결혼해야 되는거래..."

 

"에? 진챠?! 나, 나도 첫뽀본데?! 그러묜 지내랑 겨론해야되?!"

 

"응.. 흑흑"

 

진해가 눈물을 훔치는 연기를 하자 달래가 몸을 들썩거렸다.

 

"그, 그럼 내가 지내를 채김져주께! 나한테 시집와!"

 

"으응? 정말? 나한테 달래가 시집오는 거야?"

 

"웅.. 아니, 지내가 나한ㅌ.."

 

"고마워, 달래야. 나한테 시집 와준다고 해서."

 

"우우.. 그게.."

 

어물쩍거리는 달래의 말에 선수 쳐 말하는 진해가 달래를 꼭 껴안고 달래는 갸우뚱거리다가 결국 진해를 맞서 껴안았다.

 

*

 

"흐음.. 벌써 일주일이네."

 

진해의 침대 위에 달래가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었다. 잠을 자는 달래의 모습에 진해가 빙긋 웃고는 찰칵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었다. 흥얼거리며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고는 핸드폰 안의 사진을 지웠다.

 

"흐음.. 뽑아서 앨범에 놓은 다음에 컴퓨터도 지우는게 안전하겠지.."

 

선선히 움직이는 진해가 살짝 내려간 이불을 달래의 목까지 올려주고 방을 나섰다. 시간이 지나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시계가 5시 30분을 맞이했다.

 

 

은은한 빛과 함께 달래의 몸이 빛나며 길이가 길어졌다.

 

"달래야?"

 

"진..해?"

 

성장한 달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진해의 얼굴을 보고는 붉어져 방을 나서려 움직였다. 달래의 팔을 붙잡은 진해가 입꼬리 올리며 웃었다.

 

"기억하는구나?"

 

"ㅁ, 뭐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샐쭉하니 웃어보이는 진해의 모습에 달래가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달래 네가 나랑 결혼한다고 했잖아?"

 

"그건 네가 첫키ㅅ..합!"

 

"기억하네?"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쪼그려 앉는 달래의 모습에 진해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손을 잡으며 일으켜 세웠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달래의 머리카락에 진해의 입술이 닿았다.

 

"머리카락 키스의 의미는 사모. 달래야, 진달래"

 

달래의 얼굴이 멍하니 초점이 없다가 붉어졌다. 진해가 달래의 몸을 끌어안고 달래가 붉은 귀를 진해의 품 속에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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