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와 5/5 전력 60분
주제: 연예인








적당히 그을린, 뽀얀 얼굴에 피가 튀었다. 축소된 동공에 초점이 없어 유리알처럼 반사했다. 동공 가득 너덜너덜한 이의 모습이 반사됐다. 피 투성이의 손이 바짓단을 잡아챘다. 얼핏 움직인 눈썹이 감정을 나타냈다.

“사, 살려.. 살려주.. 커헉!”

구둣발이 배를 후려쳤다. 입에서 튀어나온 피거품이 바짓단으로 스며들었다. 바짓단에 시선이 옮겨졌다.

“아 진짜.. 곱게 좀 가지.”

느릿한 말에 붉게 부푼 눈덩이가 치켜떠졌다. 흉흉한 눈빛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 어떻게 하려고? 내가 짜증나? 근데? 어쩔건데?”

휘어지는 입꼬리에 피투성이인 손가락이 꾸욱 쥐어졌다.

“크윽!”

주먹 쥔 손이 구둣발에 짓밟혔다. 좌우로 비벼지는 고통에 절로 이갈리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헤에? 이갈리는 소리네? 이를 갈 정도로 아파? 어디가 아파? 나한테 살해당할 몸? 아니면 이렇게까지 너덜너덜해진 몸을 보는 네 정신? 어디가 아파? 그리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비죽 올라가는 입꼬리에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났다. 입술이 움직였다.

“이제 재미없다. 그만하자.”

“너, 이. 씨발.. 벼락 맞아 뒤질 새끼..”

식칼이 순간적으로 들어가 내부를 헤집었다. 난도질 당한 발목에서 피가 움틀하고 얼핏 방울졌다.

“컷!”

미동없던 시체가 일어섰다.

“오이카와씨, 수고하셨어요.”

“앗, 네. 미츠와씨도 수고하셨어요. 손 많이 아프세요?”

“아하핫. 괜찮아요. 영상확인하러 가요.”

순한 미소가 피어오르며 훈훈한 대화가 오갔다. 발걸음이 카메라로 향했다.

“아, 오이카와씨. 캐릭터 해석에 조금 더 뭔가. 더 또라이? 같은, 그런게 드러났으면 좋겠어. 시로야마라는 캐릭터는 철저하게 양면을 구분하면서도 그 양면에서 극과 극을 가는. 어떤 의미인지 알 거 같아?”

“음.. 감독님 말씀은 시로야마라는 캐릭터를 표현할 때 극과 극을 좀 더 벼랑 끝에 몰린 것처럼 표현하라는 거죠?”

“거의 그렇게 볼 수 있는 거 같은데.. 오이카와씨가 시로야마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어. 지금까지도 좋아. 그런데 좀 더 미친? 그런 느낌을 줬으면 해서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아 미츠와씨는 좀 더 절박하게 살려달라고 했으면 좋겠어. 절박함이 부족한 느낌이 들어.”

“네!”

카메라에 옹기종기 모인 이들이 영상을 확인하며 말을 나눠가졌다.

-

하얀 대학건물에서 학생들이 오갔다. 연갈색 머리카락이 훤칠한 키 끝자락에서 뭉텅이로 흔들렸다.

“어이! 시로야마!”

고개가 돌아갔다. 건장한 팔이 목을 지나 어깨로 올라 어깨동무를 시전했다.

“아아, 오랜만. 시라무.”

“뭐가 오랜만이냐! 어제 안보고 그제 봤으니 이틀이다 야. 헉 너 혹시 교양 과제 했냐?”

샐쭉한 눈이 만들어졌다.

“호오 안했나봐? 그런데 이걸 어쩌나. 도와줄 생각은 없는데에.”

“헉! 시, 시로야마아. 참고한 책이라도!!”

“나는 모르는 일이네, 시라무.”

어색한 웃음이 가득 시라무를 맴돌았다. 시로야마가 장난 가득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실눈이 차가웠다.

“아, 요즘 알바는 잘 되어 가냐?”

“알바는 뭐 언제나 똑같지.”

“역시 그런건가..”

어꺄동무를 풀고 제 팔짱을 낀 시라무를 시로야마는 그저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알바를 옮겨야 할 거 같단 말이야. 너 알바하는데 괜찮냐?”

시로야마의 얼굴이 미소를 머금었다. 눈이 보이지 않았다.

“아아, 괜찮고 말고. 같이 할래?”

“그럼 나야 좋지! 언제부터 갈까?!”

“그건. 조금 후에 알려줄께.”

“좋아! 가자!”

활기찬 분의기가 시라무의 주변을 감돌았다. 비린 쇠냄새가 흘러지나쳤다.

“컷!”

오이카와가 하타오와 함께 카메라로 향했다. 하타오의 손이 바지춤을 연신 문질렀다.

*

철커덕

문이 열였다.

“이와쨔아앙.”

길쭉한 몸이 흐늘흐늘 움직였다. 부엌에서 이와이즈미가 나타났다.

“뭐냐, 오이카와. 와서 밥 먹어라.”

오이카와가 입술을 비죽였다.

“에에 이와쨩 사랑이 식었어어.”

이와이즈미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이와이즈미의 입이 삐죽 움직였다.

“이 시간에 밥 차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라, 멍청카와.”

오이카와가 입을 옆으로 돌리며 움직였다.

“체에에에”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껴안았다.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오이카와의 턱이 올라앉았다.

“이와쨩. 이와쨩.”

오이카와가 얼굴을 이와이즈미와 마주보았다. 이와이즈미가 순간 눈썹을 찌푸렸다.

“이와쨩. 앞치마 입은 김에 그거 해주면 안돼? 그거.”

“그거?”

오이카와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와이즈미의 얼굴 가득 의아함이 올라섰다. 오이카와가 해사하게 웃었다.

“응. 그거! 밥? 목욕? 아니면 나? 말이야! 이거!”

오이카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굽어들어갔다. 오이카와가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조잘거리다가 이와이즈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목에 생생히 닿는 숨결에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점점 초연함으로 물들어갔다. 응? 응? 하며 물어보는 오이카와의 숨결이 목을 간질였다. 순간 숨이 깊게 들이마셔졌다. 이와이즈미의 귀에 오이카와의 입이 닿았다.

“물론 이와쨩이 그런 말 안해도 이와쨩은 내 애인이니까 허락만 해주면 되는데. 나는 이와쨩 허락 없인 아무것도 안하니까. 그렇지. 이와쨩.”

오이카와의 얼굴이 가라앉았다. 유리구슬같이 초점 없는 눈 가득 집착이 서려 귀화를 피워냈다. 오이카와의 시야에 살짝 소름이 돋아난 이와이즈미의 목이 들어왔다. 이와이즈미의 손이 천천히 오이카와의 등을 토닥였다. 잔잔한 토닥임이 이와이즈미의 심장소리와 겹치고 오이카와의 심장소리와 겹쳐졌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목을 깨물었다. 깨문 이빨 자국 위로 오이카와가 입을 맞췄다.

“이와쨩. 사랑해. 이와쨩. 하지메. 하지메. 내, 나만의 하지메.”

주제: 등 뒤






처음 너를 봤을 때부터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너는 내 옆에 서있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동아리에 입부를 하고 그 처음부터 너는 내 옆에 서있고 같은 코트에서 같이 움직였다. 나는 아마도 너에게 첫 눈이 반한게 아니였을까. 사실 마음을 눈치챈 건 얼마 되진 않았다. 처음 너를 봤을 때부터 눈을 뗄 수 없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어쩌면 마음을 부정했을지도 모르지.


네 연회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움직이며 땀방울을 떨궜다. 배구복 입은 네 다리로 눈이 계속 가는터라 애써 배구공에 시선을 돌렸다. 너는 왜 그리도 눈이 부실까. 내 옆으로 와 어깨를 두드리고 환하게 웃어보이는 너를 보며 나는 정을 품는다. 한껏, 깊어지도록. 너는 내 옆에 서있을 테니까.


신입생으로 들어온 녀석들을 너는 극진히도 챙겼다. 카게야마 녀석이 주전으로 뽑히는 것도 네가 선택했지. 나는 좀 더 너와 같은 곳을 보고싶었다. 좀 더 내 옆에서 같이 있어주면 좋을텐데. 네가 내 옆에 서있는게 좋았다. 네 마음이 더 쓰릴 걸 알았기에 차마 말을 하진 못했지만, 나는 너를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너는 내 옆에 있는 회수가 줄었다.


“다이치!”


네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네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다이치? 왜 웃는거야?”


휘어지는 눈에 눈물점이 도드라졌다. 짖궃음 가득한 얼굴이 다가왔다. 내 옆에 서있는 네가 얼마만이더라. 반응이 없자 볼을 부풀리는 네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최대한 숨겨야할 내 마음이 너에게로 가 상처주지 않기를.


3학년이 갈수록 너는 내 등 뒤에 있는 일이 많아졌다. 코트에서 너는 벤치로 내 뒤에 서있었다. 너는 연습할 때에도 내 뒤에 서있었다. 너는 내 등을 바라봤다. 나는 네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너는 왜 보이지 않을까. 살랑이는 연회색 머리카락도 보드라운 눈도, 도드라지는 눈물점도 단정한 몸도 너는 나에게 보이지 않아. 내 옆에 서있어줘. 스가. 스가. 스가. 코우시. 코우시. 마음으로만 부르는 네 이름이 쓰리다.  너는 언제나 내 옆에 서있으면 좋을텐데. 코우시 더이상 네가 보이지 않는건 싫다. 내 옆에 서줘. 내 옆에, 평생.


“코우시. 내 옆에 평생. 있어줘. 좋아해.”


“다, 이치.”


아. 코우, 시?!

오이이와 4/29 전력 60분
주제: 다툼









“그러니까! 이와쨩은 항상 그래!”

“하아?! 그러는 너야말로 장난식으로 넘기는게 일상이잖아!”

오이카와 토오루와 이와이즈미 하지메 사이에 다툼이 일었다. 일상적인 다툼에 아오바죠사이 배구부원들은 눈을 흘꼈다가 제 할일을 했다. 커다란 목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배구만큼 네가 진지해진 적이 있냐?! 네 놈은 배구가 아니면 똑바로 보지도 않잖아!”

“그러는 이와쨩은! 이와쨩은 안그래?! 나만 그렇게 생각한거냐고! 이와쨩도 배구를 진지하게 보고있잖아!”

점점 민감한 주제로 넘어가려는 대화에 하나마키와 마츠카와가 시선을 돌렸다.

“아, 위험한데?”

“그러게. 민감한 사항을 저렇게 외쳐도 되는건가 몰라.”

이리하타 감독이 미조구치 코치의 옆구리를 찔렀다. 미조구치 코치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멱살을 잡아챘다.

“너는! 배구로 갈..!”

“자자 그만. 이 이상은 위험하다. 아니 이미 좀 지나쳤어. 이 뒤는 너희들끼리 해결하도록. 부실로 가라. 아직 부활동 끝나려면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그 때까진 어떻든 마무리 지어라. 부활동 끝날 때가 돼도 안 끝난다 싶으면 니들 집에 가면서 해라.”

미조구치 코치가 오이카와, 이와이즈미의 뒷덜미를 잡아 체육관 밖으로 밀어냈다. 잔뜩 골이 난 두명의 얼굴이 체육관 밖을 나섰다. 덜컹하는 큰 소리와 함께 체육관 문이 닫혔다. 약간의 소란 뒤 배구공 튕겨지는 소리가 다시 채워졌다.

-

문이 닫혔다.

투웅!

오이카와가 제 등을 사물함에 기댔다. 삐둘게 이와이즈미도 문에 등을 기대었다. 침묵이 아롱졌다.

“이와쨩”

낮게 가라앉은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짙게 울렸다. 이와이즈미의 고개가 들려 오이카와의 눈과 마주쳤다.

“뭐.”

“이와쨩은.. 이와쨩은.. 하지메.”

오이카와의 동공이 축소했다. 빠르게 움직인 오이카와의 몸이 이와이즈미를 잡았다. 오이카와의 입술이 이와이즈미의 입술을 열었다. 이와이즈미의 팔이 오이카와의 목을 당겼다. 질척하게 혀가 섞이고 호흡이 엉켰다.

츠웁

반개한 눈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지메, 하지메. 내 하지메.”

“내가 왜 네꺼냐. 나는 내 꺼야.”

오이카와의 얼굴이 급 얼룩졌다.

“하지메쨔아앙?? 분명 이 오이카와씨랑 연애중 아니였나요오?”

오이카와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이와이즈미의 입술이 뾰족히 튀어나왔다. 이와이즈미의 손이 오이카와의 얼굴을 잡아 입술을 붕어입으로 만들었다.

“하이에쟝? 하이에양?!”

이와이즈미가 실소를 흘렸다.

“알고 있으니까 적당히 해. 그리고 아직 몰라. 분명 배구는 좋지만 지금은 지금일 뿐. 나중에 어떨게 될지는 그 때 알겠지.”

단단한 말에 오이카와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이카와의 팔이 이와이즈미를 껴안았다. 이와이즈미의 팔이 오이카와를 끌어안았다.

“걱정마라. 너를 떠날 일은 절대 없을거니까.”

오이카와의 얼굴이 집착으로 얼룩졌다. 상냥한 목소리가 이와이즈미의 귀를 강타했다.

“이런 토오루는 하지메쨩을 놓을 생각이 하나도 없는걸?”

이와이즈미가 눈을 감았다. 작은 토닥임이 이와이즈미의 손을 타고 오이카와의 등으로 흘렀다. 오이카와의 눈이 반개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평생 이 오이카와 토오루의 것이니까.’

이스가 4/16 전력 60분

주제: 상흔







『보내는이: sawamuradaici

받는이: sugawaracousi
내용: 스가, 보인다!』


『보내는이: sugawaracousi
받는이: sawamuradaici
내용: 앗! 나도 다이치 발견!』


“다이치!!”


스가의 피부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스가! 조심해! 넘어져!”


사와무라 다이치가 골목길을 나서는 순간, 스가와라 코우시가 만나러 가던 순간, 자동차가 나타났다.


콰아앙!


햇빛이 핏방울을 반사했다. 핏방울이 흐드러졌다.


*


푸른 물이 울렁였다. 사와무라가 넥타이를 푸르며 신발을 벗어 집으로 들어섰다. 소파가 푹 가라앉으며 사와무라의 몸이 잠겼다. 사와무라의 주변 물이 탁하게 울렁이다 푸르게 변했다. 머리를 북북 흔들고는 리모콘을 들어 티비를 틀었다. 티비소리가 선명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아아, 코우시. 오늘도 뭐 똑같지. 뭐가 다르겠어?”


사와무라의 얼굴 가득 어색한 웃음이 담겼다.


“요즘 괜찮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많은데 그건 너에게 할 말이지 않을까?”


장난기 담긴 얼굴로 바꾸고 능글맞게 말을 트였다. 물빛 가득한 스가와라가 볼을 부풀리며 사와무라의 옆구리에 촙을 날렸다. 장난스레 옆구리를 부여잡은 다이치가 곧바로 스가와라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물이 흔들렸다.


-


“다이치. 괜찮은거야?”


“아사히? 나야 당연히 괜찮지. 아사히 너야말로 괜찮은거야? 요즘은 어때?”


“으음.. 하하.. 나야 뭐..”


아사히가 고개 숙인 사와무라의 얼굴을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곧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여럿이 우르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들의 모습에 사와무라가 손을 흔들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자리에 앉고 술병이 흔들렸다. 물색이 탁하게 흐려졌다.


“아아, 괜찮아. 너희야말로 요즘 괜찮아? 상사들이나 선배들이 괴롭히지는 않고?”


자연스러운 말들이 오가며 술이 오갔다. 시간이 흐르고 사와무라가 먼저 일어섰다.


“아아, 나 먼저 일어날께. 아무래도 더는 못 버텨주네.”


“다이치.”


“아사히?”


시선들이 사와무라를 향했다. 물이 뿌옇게 사와무라의 시야를 가렸다.


“아냐.. 혼자 갈 수 있겠어?”


“당연하지. 일로 단련된 주량을 무시하지 말라고?”


사와무라의 뒷모습이 일렁였다.


“주장.. 안 괜찮은 거겠죠..”


“응.. 스가는.. 우리 역시 안 괜찮잖아?”


“스가 선배..”


침울한 분위기와 함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갔다.


-


꼬로록 꼬록


방울이 뻐끔뻐끔 위를 향했다. 한껏 탁해진 물 속에서 사와무라가 웃었다. 탁한 물과 같은 색의 스가와라가 다이치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스가? 자는거야?”

부드러운 미소를 걸친 사와무라가 스가와라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스가와라의 코에 제 코를 부비며 흐드러지게 웃었다.


“스가. 사랑해.”


검게 죽은 물이 사와무라의 곁을 맴돌았다.


“스가?”


말과 동시에 사와무라의 심장께에서 삐져나온 썩은물이 섞였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탁한물이 사라졌다. 스가와라가 사라졌다. 사와무라가 소파에 손을 얹었다. 먼지가 묻어나왔다.


“스가?”


냉기가 감돌았다.


“스, 가?”


시계가 멈췄다.


“코우시?”


정적이 흘러넘쳤다.


“코우시?”


썩은 물이 미동없이 멈춰섰다.


“코우시?”


사와무라의 심장에서 썩은 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코우시!”


사와무라의 배가 갈라지며 썩은물이 옴팡지게 쏟아졌다.


“코우시!”


역한 썩은내가 가득찼다.

다이스가 4/9 전력 60분
주제: 충전







“보게!!! 히나타 보게!!!”

“아파아파아파!!!”

말랑한 히나타의 볼이 사정없이 양 옆으로 늘어났다. 험악하게 이그러진 카게야마의 얼굴이 히나타를 압박했다.

“시미즈 선배애!! 저녁에도 아름다우십니다!!”

“언제나 아름다우신 거다!!”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시미즈의 주변을 얼쩡거렸다. 야치가 시미즈의 옷자락을 잡고 꼬물거렸다. 당황함 가득한 야치의 얼굴에 시미즈가 야치의 손을 풀어잡고 타나카와 니시노야를 헤치고 나왔다.

“크윽.. 시크하신 모습도 아름다우셔!!”

“저게 바로 여자들의 우정!!”

종알거리는 타나카와 니시노야의 뒤로 엔노시타가 나타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미안 츳키!”

“됐어.”

야마구치가 제 손을 모아 고개를 살짝 숙였다. 츠키시마가 무던히 넘기며 물통을 들었다. 야마구치가 물통을 잡으려다 놓치고 츠키시마가 잡아채 건네주었다.

“츳키이..!!”

야마구치의 볼이 발갛게 붉어져 츠키시마를 쳐다보았다.

“아사히? 그거는 대체 뭐야. 안 어울려.”

“아사히.. 그 머리끈은 대체..”

“윽.. 스가아..”

아사히의 머리띠가 샤랄라한 느낌으로 바뀐 것을 스가가 잡아챘다. 아사히가 침통한 얼굴로 팔을 늘어트렸다.

“머리끈이 끊어져서.. 시미즈랑 얏쨩한테 물었더니 준거야..”

“푸햐하하하 아사히 완전 웃겨!”

스가의 몸이 아래로 접혔다. 통쾌한 웃음소리에 체육관 내의 눈들이 스가와 아사히를 향했다.

“풋”

작은 웃음소리가 스가의 웃음소리와 섞였다. 아사히가 어색하게 웃었다.

“풉.. 크큭.. 죄, 푸흡 죄송합, 니다 푸후”

“아사히 선배 멋지십니다!! 그런 머리끈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거군요!!”

“니시노야.. 틀려어..”

“크크큭 선배애푸훕 죄송, 크크 합니다 크크크”

체욱관 가득 웃음이 차올랐다. 유쾌함 가득한 웃음이 점점 작아져갔다.

“아아, 진짜 아사히 너는 에이스야. 개그의 에이스.”

“나도 동감. 아사히는 개그맨해도 좋을거 같아.”

스가의 원퍼치, 다이치의 어퍼컷까지 아사히가 침몰했다. 비죽 웃은 다이치가 아사히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짧게 박수를 두어번 쳤다.

“자자, 이왕 이렇게 풀어진거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가자. 정리하고 내일 보자!”

여러색의 머리통들이 빠릿빠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

가로등이 깜빡였다. 발걸음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오늘도 정신없었네, 그치?”

스가가 제 얼굴을 기울여 다이치를 쳐다보았다. 다이치가 스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다이치?”

“응”

스가가 붉어진 얼굴을 돌렸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으음.. 글쎄? 스가가 귀여우니까?”

스가의 귀가 빨갛게 열이 올랐다. 다이치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코우시.”

스가의 어깨가 크게 움틀였다. 스가가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다이치가 그 뒤를 쫒아 뒤를 덮쳤다.

“코우시.”

스가의 귓가에 다이치의 숨소리가 살랑였다.

“으.. 다이치이.. 이거 반칙..”

“흐음? 뭐가? 지금 코우시 충전 중이라고?”

디이치가 스가의 뒷목에 얼굴을 묻었다. 비누향이 다이치를 간질였다.

“코우시.”

스가가 다이치의 손을 풀어내며 똑바로 마주보았다. 푸욱 지친 느낌이 솟아나는 다이치의 모습에 스가가 꼬옥 껴안았다.

“응. 다이치 충전 중!”

동그랗게 커진 다이치의 눈이 홀짝 휘어졌다. 다이치의 팔이 스가를 꾹 껴안았다.

“코우시, 사랑해.”

“윽 다이치 반칙!”

다이치의 얼굴을 마주본 스가가 얼굴을 붉게 붉혔다. 불그스름한 스가의 얼굴에 다이치가 환하게 웃고는 스가의 볼을 잡아당겼다.

쪼옥

입술이 부딫쳤다. 자잘한 버드키스가 이어졌다.

오이이와 4/1 전력 60분
주제: 거짓말










“이와쨩”

오이카와 토오루는 알 수 없었다.

“이와쨩. 이와쨩. 이와이즈미. 하지메.”

길다란 속눈썹이 팔랑였다. 알록달록한 배구공이 오이카와의 손에서 움직였다.

“오이카와 토오루. 이와이즈미 하지메.”

긴 속눈썹이 내려까지며 그늘을 만들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와 이와이즈미 하지메. 두명.”

*

“이와이즈미. 오이카와랑 싸웠어?”

하나마키의 손이 이와이즈미의 어깨를 건드렸다.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하나마키와 마주쳤다.

“이, 이와이즈미?”

험상궂게 일그러진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하나마키의 두 눈 가득 채워졌다.

으득

“나도. 모른다. 저런. 멍청카와따위.”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다시 배구공으로 향했다. 오이카와의 시선이 이와이즈미를 향했다. 시선의 끝에는 이와이즈미가 존재했다.

“뭔 일이려나.”

“아아, 뭔 일이겠어. 사랑싸움이겠지.”

하나마키가 눈썹을 찌푸리며 얼굴을 돌렸다. 마츠카와의 옆모습이 하나마키의 눈에 들어왔다.

“쟤네 사귀는 사이 아니잖아?”

마츠카와 얼굴이 늘어졌다.

“아아 그러니까.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까 사랑싸움인거지.”

하나마키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배구공이 천장을 향해 튀어올랐다. 체육관 조명 하나가 가려졌다.

*

“이와쨩.”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이와쨩.”

걸음이 점점 겹쳐졌다.

“이와이즈미.”

일정한 거리가 유지됐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늘어진 그림자가 반절쯤 겹쳐졌다.

“하,지메.”

걸음이 멈췄다.

“하지메, 쨩.”

멈췄다.

“하, 지메.. 쨩.”

움직였다.

“쿠소카와!!!”

이와이즈미 하지메와 오이카와 토오루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이와이즈미의 그림자가 오이카와의 그림자를 억압했다.

“이 쿠소카와!! 대체 뭐때문에 이렇게 어리바리해!! 뭘 원하길래 이렇게 우물쭈물거리고 있어! 정신차려!! 대체 뭐하고 있는거야! 할 말 있으면 지껄이라고! 지금까지 잘도 그래왔잖아! 잘도! 옆에 붙어서 지껄이더니! 지난 며칠 간 무슨 짓거리인데?! 뭐 때문에 그렇게 초조하고! 거짓말하고! 숨어있던 건데!”

이와이즈미의 손이 오이카와의 멱살을 잡았다. 올곧게 빛나는 검은 눈동자가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무표정한 오이카와의 얼굴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오이카와 토오루. 말 안하냐.”

오이카와의 얼굴이 이그러졌다. 단단한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곧았다.

“토오루.”

“이, 와쨔앙..”

햇빛이 사라졌다.

“이와쨔앙..!”

감정이 울컥울컥 솟아났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껴안았다.

“하지메쨔앙.. 흐으 내가.. 진짜.. 어떻게.. 어떻게..!”

“민폐되니까 조용히 울어.”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와이즈미 하지메에게 숨길 수 없었다.

*

침대에 길쭉한 장신 둘이 어거지로 붙어 있다. 은은한 스탠드 불빛이 음영을 만들어냈다.

“하지메쨩.”

“뭐냐.”

오이카와의 손이 이와이즈미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있잖아. 어떻게 알았어?”

“뭘?”

오이카와가 제 입술을 깨물었다.

“이래뵈도 하지메쨩 피해다니면서 멀쩡히 다니려고 노력했다고? 근데 아까 그래잖아. 뭘 숨기고 거짓말하냐고. 이 오이카와씨는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이와이즈미가 제 손에 악력을 더했다.

“아아아!! 하지메쨩?! 하지메쨩!! 아파!! 아파!!”

“그러니까다 바보토오루. 너하고 얼마나 오래 지냈는데 겨우 그런 걸로 못 알아 볼거라고 생각한거냐. 그래서 네가 애들한테 그런 취급을 받는거야.”

“에엑. 하지메쨩 이 오이카와씨한테 너무하구?!”

이와이즈미가 몸을 일으켰다.

“됐고. 말해봐.”

오이카와가 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오이카와 토오루.”

“하. 하. 이 오이카와씨는 몰라요.”

이와이즈미의 손이 오이카와의 머리 위로 위치를 바꾸었다.

“하지메쨩?”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이 살살 흐드러졌다. 나른하고 부드러운 공기가 핑크색을 띄며 왈츠를 추었다.

“하지메쨩 좋아해.”

오이카와의 손이 제 입을 가렸다. 이와이즈미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아니아니 하지메쨩 이게 아니 하지메쨩 방금 한 말은!!”

이와이즈미의 눈이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오이카와의 얼굴에 진중함이 서렸다.

“하지메쨩. 내가. 숨기고, 거짓말하고, 모른척 한건. 오이카와 토오루가 이와이즈미 하지메를 친구가 아니라 연애적인 감정으로 좋아하기 때문이야.”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손을 잡아들며 제 볼을 감싸쥐게 만들었다. 야릿한 오이카와의 눈이 이와이즈미를 핥았다. 이와이즈미의 손가락이 오이카와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질척한 소리가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하지메쨩. 좋아해. 좋아하고 사랑해. 하지메쨩.”

오이카와의 발간 혀가 나타나 입술을 핥았다.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붉다 못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남아있는 이와이즈미의 한 손이 오이카와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입술이 맞부딫쳤다. 이와이즈미의 위로 오이카와가 올라섰다. 달큰한 향내가 풍겨왔다. 감긴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오이카와의 살띈 눈이 쳐다보았다. 곱게 휘는 눈동자 가득 집착이 절절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잡아챘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잡혔다.

오이와 3/25 전력 60분
주제: 오케스트라








하얀 벽지가 산란하는 형광등에 의해 반짝였다. 넓지는 않지만 적당히 온화함이 느껴지는 공간에 갈색 머리가 반짝였다. 하얗고 검은 지휘 연미복이 꼭 맞게 입혀져 있었다. 슬적 열린 입에서 숨소리가 내쉬어졌다. 단단히 잠겨있던 문이 열였다. 깔끔한 연미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아?”

이와이즈미의 이마에 혈관이 솟아났다. 고롱고롱 숨을 내쉬며 오이카와가 쪽잠을 계속했다.

“후냠... 이와쨩.. 으.. 이와쨔앙..”

오이카와가 입을 다시며 이와이즈미를 불렀다. 발그레한 볼이 하얀 오이카와의 얼굴에서 도드라졌다. 부루퉁한 이와이즈미가 점점 오이카와를 향해 다가갔다.

“헤헤.. 이와쨩.. 첼로 그만 봐아.. 오이카와상이.. 앞, 에 있다구우.. 흐냐.. 이와쨩.. 나랑 뽀뽀..”

오이카와가 손을 휘적이더니 앞으로 뻗어 잡는 시늉을 했다. 오이카와의 입술이 쭉 튀어나왔다.

“헤헤.. 이와쨔앙.. 내가 행복하게 해주께.. 외국.. 가서, 결혼.. 냠..”

잔뜩 얼굴이 붉어져소는 바보웃음 지으며 내뱉는 오이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의 몸이 멈춰섰다. 주체할 수 없이 붉어지는 얼굴에 이와이즈미가 뒤를 돌아 주저앉았다.

“저, 저 쿠소카와가!!”

이와이즈미의 붉어진 귀가 거울을 통해 나타났다. 거울에 비치는 오이카와의 얼굴이 얄상한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이와쨩.”

오이카와의 입술이 이외이즈미의 귀를 건드렸다. 이와이즈미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앞으로 빠진 오이카와의 손에 작은 상자가 나타났다.

“있지, 이와쨩. 나는 지휘자로 이와쨩은 첼리스트로 오케스트라에서 많은 걸 경험했잖아. 외국으로도 많이 나갔고, 외국에서 많은 사람도 보았지. 이와쨩. 우리정도면 외국으로 가도 괜찮을 거 같은데? 응? 이와쨔앙. 나랑 외국으로 가자. 결혼하고 우리만의 오케스트라를 만드는거야. 이와쨩 나랑 결혼해주라. 이 오이카와씨 많이 고민하고 많이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애인인 이와쨩이 평생 내 옆에 있으면 좋겠어. 기억도 못하는 어릴 적부터 늙어서 무덤에 들어가고 그 후까지 말이야. 이와쨩이랑 내가 합동 연주회를 이어나가는 거야.”

나긋하지만 절절하고 사랑 가득한 오이카와의 말이 이와이즈미 주변을 맴돌다 귀를 파고들었다. 잔뜩 붉어져 있던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결국 이와이즈미의 손으로 덮였다.

“이와쨩? 응? 대답 안해줄거야?”

오이카와의 팔이 이와이즈미의 몸을 제 쪽으로 돌렸다. 쪼그려 앉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주변으로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퐁퐁 솟아났다.

“이와쨩. 대답 안해줄거야? 응? 오이카와상이랑 결혼해 주세요, 이와이즈미 하지메.”

환하게 웃는 오이카와의 주변으로 꽃이 개화했다. 첼로의 사랑의 인사가 개화한 꽃 주변을 맴돌았다.

“... 좋아..”

사랑의 인사가 경쾌함을 담았다.

“이와쨩 진짜 사랑해!!”

이와이즈미의 입술에 오이카와의 입술이 부딫쳤다.

오이이와 3/18 전력 60분
주제: 유년기









“이와쨔아앙 너무해!! 사랑이 식었어!!”

체육관 가득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인어공주 포즈로 주저앉아 가짜눈물을 눈에 달았다. 끊이지 않고 훌쩍이는 소리가 계속되자 이와이즈미의 팔뚝에 혈관이 돋아났다. 배구공 표면이 잔뜩 들어갔다.

파앙

이와이즈미의 손에서 배구공이 사라졌다. 오이카와가 발을 재빨리 놀렸다. 이와이즈미의 뒤에서 야차가 솟아났다.

퍼억!

오이카와의 뒤로 이와이즈미의 날라차기가 당도했다. 오이카와의 팔을 옆구리로 붙인채 다리로 묶어 등에 앉은 이와이즈미가 한 팔로 오이카와의 목을 감쌌다. 이와이즈미의 얼굴에 음영이 지어졌다. 이와이즈미의 오른손이 오이카와의 머리를 압박했다.

“쿠소오카와아!!!!”

“이와쨔앙?!! 오이카와씨의 소중한 머리가!! 이와쨩!! 아파아파!!”

오이카와의 다리가 바동거렸다. 꿈틀거리는 오이카와의 몸통이 불편했는지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목을 잡아 당겼다.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오이카와의 입에서 술술 터져나왔다.

“음. 역시 저래야 오이카와지.”

“하루라도 저게 없으면 오이카와가 아니지. 그럼.”

오이카와가 K.O. 당한채 바닥에 널부러졌다. 이와이즈미가 바지를 툭툭 털고는 오이카와의 옆구리를 살짝 발로 찼다. 오이카와의 얼굴이 돌려졌다. 눌려진 볼을 타고 오이카와가 입술을 비죽였다.

“아아, 어릴적의 이와쨩은 어디로 갔을까아”

오이카와의 얼굴이 몽롱해졌다.

-

말랑한 볼이 발갛게 물들여졌다. 댕글한 눈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오이카와, 너 여자애지!”

“남자애가 저럴리가 없잖아!”

“여자애처럼 치마입고 엄마 손 잡은 거도 봤어!”

““오이카와는 여자래요!!”

짖궃음 가득 담긴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오이카와 주변을 맴돌았다. 오이카와의 작은 손이 주먹쥐어졌다.

“으우.. 토오루는..! 남자야!!”

아이들의 얼굴에 심통이 서려졌다.

“거짓말!!”

“오이카와는 거짓말쟁이래요!!”

“오이카와느은 거짓말쟁이래요오!!”

오이카와가 입술을 깨물었다. 오이카와의 발목에 힘이 들어갔다.

“토오루는! 남자야!! 내가 봤어!”

이와이즈미의 날라차기가 가장 오른쪽에 있던 아이의 옆에 박혔다. 아이들리 우르르 넘어졌다.

“이와이즈미다!”

“이와이즈미도 거짓말쟁이!”

“둘이 같이 목욕도 하는 사이래!”

“이제 둘이서 결혼해야 된다! 같이 목욕하면 결혼해야 한다고 우리 아빠가 그랬어!”

심통 가득한 아이들의 말이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토오루는 남자야!!”

오이카와가 소리치며 앞에 있던 남자아이에게 주먹을 날렸다. 주먹을 맞은 남자아이가 콧김을 강하게 내뿜었다.

“씨이.. 너어 때렸겠다아!!”

아이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부산스러워지고 먼지구름이 일었다.

-

오이카와의 자세가 봐뀌었다. 무릎을 꿇고 깍지 낀 손을 가슴 께로 올리고 고개도 위로 올렸다. 눈이 체육관 불빛보다 과하게 반짝였다. 체육관에 있던 학생들의 얼굴이 점점 썩어들어갔다. 이와이즈미가 제 이마에 손을 올리고 오이카와를 향해 걸어갔다.

“자자 피하자. 이와이즈미가 화낸다.”

마츠카와가 뒷머리에 두손을 올리고 아이들을 이끌었다. 하나마키가 어깨를 주물거리며 하품을 했다.

“저기 있는 주장은 버리고 다른 곳으로 좀 피해있자고.”

운동화 걸음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체육관 문이 닫히고 이와이즈미의 목소리가 체육관을 타고 창문을 찌르고 나왔다.

“쿠소오카와아!!!!!”

마츠카와가 반개한 눈으로 체육관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거, 참. 저러면서도 잘만 지내다 못해 연인사이라니.”

그림자가 작게 줄어들었다. 체육관이 조용히 잦아들었다. 오이카와가 엎드려 제 머리를 손바닥으로 연신 부볐다. 퐁퐁 퍼지는 서운한 오로라에 이와이즈미가 제 볼을 긁적였다.

“야, 오이카와. 괜찮냐. 많이 아프냐?”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 옆에 쭈구려 앉았다. 말이 끝나고 이와이즈미의 손이 오이카와의 어깨를 잡았다.



오이카와의 입술과 이와이즈미의 입술이 부딫쳤다.

“이와쨩, 좋아해.”

오이이와 3/11 전력 60분
주제: 마피아








전등이 깜빡였다. 점멸하는 전등 아래 철제의자가 따듯하게 데워졌다. 양 팔, 다리가 철제의자와 연결되어 결박되고 목에도 연결되어 한 사내가 의자에 결박 되어있었다. 결정적으로 벌려진 입에 굵은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철커덕

문이 열였다. 소리없는 그림자 세개가 사내의 앞에서 멈춰섰다. 양 옆에 서있던 그림자가 세발자국정도 떨어졌다. 그림자의 손부분에 날카로운 그림자가 생겨났다.

“아오바죠사이에서 스파이로 들어왔다는 건, 이렇게 돼서 뒈질 상황도 생각한거지?”

오이카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쳐졌다. 오이카와의 오른손에 잡힌 단도가 스파이의 볼을 건드렸다.

푸욱

단도가 스파이의 허벅지에 박혔다. 갈라진 비명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오이카와가 왼손으로 제 귀를 만지작거렸다. 단도가 회전했다. 스파이의 허벅지에서 단도가 춤을 췄다. 단도를 좌우로 흔들거나 위아래로 움직여 살을 갈랐다. 꺽이는 숨소리가 간헐적으로 튀어나왔다.

“흐응..”

오이카와가 제 왼손으로 턱을 괴었다. 오른손이 단도를 놓았다. 한발자국 물러서더니 오이카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파이의 허벅지에서 단도가 빠져나왔다. 움틀거린 허벅지에서 꾸준히 피가 샘솟았다.

“그윽..!”

스파이의 눈에 핏발이 섰다. 반항 가득한 눈에 오이카와가 미간을 찌푸렸다. 곧 오이카와의 얼굴에 선량한 미소가 지어졌다. 순식간에 스파이의 어깨에 단도가 들어섰다.

“스파이 주제에. 말이야. 짜증나게. 손해는 이미 다 처리 했지만 그 과정에서 생성된 스트레스가 있단 말이야.”

쿠적

쿠적

스파이의 어깨 내에서 단도가 휘저어지며 피떡이 되어갔다. 멈춰선 단도가 아래를 향했다. 근육을 자르고 쇄골을 향해 단도가 내려갔다.

빠드득

쇄골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크, 크큿.. 크크큿”

광기어린 웃음이 스파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반들거리는 눈깔이 오이카와를 향했다.

지잉

“음?”

오이카와가 단도에서 손을 떼고 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화면이 빛났다.

“앗! 이와쨩이잖아?!”

오이카와의 얼굴에 꽃이 개화했다. 좌우에 서있던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이와쨔앙!!”

핸드폰 화면에 사진이 펼쳐졌다. 핏자국과 살점이 가득한 가운데 널부러진 시체 한구, 그 사이 피 한톨 묻지 않은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있었다.

『쿠소카와. 완료했다.』

“뭐야아.. 이와쨩 오늘도 못생겼잖아? 요즘 임무를 너무 많이 내보냈나? 얼굴이 탄거 같네? 안 그래도 시껌둥이 이와쨩인데 어쩌면 좋아아.”

오이카와가 환한 얼굴로 몸을 돌아 나섰다.

“안 내보내면 딱이네. 우리 이와쨩. 내가 품고만 있어야지, 우리 이와쨩은. 내 꺼니까.”

오이카와의 작은 목소리에 하나마키와 마츠카와가 제 팔들을 쓸었다. 얕은 소름이 볼에 돋아있었다. 문이 열리고 오이카와가 밖으로 나섰다. 문이 닫히기 전 좁은 틈새에 오이카와가 뒤로 돌았다. 무덤덤한 오이카와의 얼굴이 안을 훑었다.

“알아서 처리해.”

철컥

정적이 돌았다. 깜빡이는 전광등이 갈변해가는 피를 건드렸다.

“하여간. 평생 저러고 살 놈들이지.”

“이미 서로 알고 있으니 더 글러먹었지.”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의 고개가 저어젔다. 스파이의 얼굴이 하얗게 뜨여갔다. 마츠카와가 뽑아낸 잭나이프로 스파이의 상의를 갈라냈다.

“어차피 정보는 필요없는 거였으니까, 마츠카와 어깨에 있는 거 뽑아봐. 그거 안 가져다 주면 징징댈 거 같은데.”

마츠카와가 느릿하게 단도를 뽑아냈다.

“아, 그러네. 이거 이와이즈미가 준 거잖아. 안 줬으면 큰 일날 물건이네.”

단도를 대충 넣은 마츠카와가 하나마키와 시선을 마주쳤다.

“슬슬 시작하자.”

“아아.”

*

가벼운 발걸음이 복도를 걸었다. 오이카와가 왼손에 쥔 핸드폰을 눈 앞으로 가져왔다.

“우리 못생긴 이와쨩을 기다려 볼까 어디 다쳤으면 다친대로 밤에 놀아보자고 그렇치 이와쨩?”

오이카와가 얼굴 가득 색기를 담아 웃었다.

오이이와 3/4 전력 60분

주제: 3월의 눈







하얗거나 연회색을 띄는 구름들이 몽글몽글 하늘을 채웠다. 복슬복슬한 구름이 식은땀을 흘리더니 곧 보송보송한 눈을 내렸다. 보슬보슬한 눈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봄을 기다리는 나뭇가지와 사시사철 푸른 덤불들, 그리고 드러누울만큼 넓다른 지붕까지 하얗게 눈이 올라섰다.

-

꼼지락꼼지락 이불에 누워있던 커다란 덩치가 움직였다. 침대 위에 누워 데구르르 굴러다니던 얼굴이 위로 솟았다. 창문 밖 풍경이 갈색눈에 들어왔다.

“눈 온다!”

밝은 목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생기 가득한 얼굴이 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벙어리 장갑이 커다란 손을 가두었다. 짙은 목도리가 얼굴의 반을 가렸다.

“조아! 이와쨩! 내가 간다!”

방문이 박력있게 열였다.

*

짧은 검정머리가 뾰족뾰족 튀어나왔다. 베게에 얼굴이 눌려 앞으로 톡 튀어나온 볼을 타고 얕게 침이 흘러나왔다.

“멍, 청 카와아..”

눈썹이 찌푸려지며 작게 이까지 갈고는 팔은 움직였다.

‘이와아쨔앙!!’

‘이와쨩! 이와쨔앙!!’

이불 속으로 점점 얼굴이 파묻혔다. 방문이 요란하게 열였다.

“이와쨩!! 이와쨩! 이와쨩! 밖에 눈와! 눈! 눈온다!! 이와쨔앙!!”

방 안이 덜걱덜걱 울렸다. 이와이즈미가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이와쨔앙? 으응? 이와쨩 밖에 눈 온다구우!”

오이카와가 챙겨입은 겉옷을 벗어 던지며 침대로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오이카와가 이불과 동화되어버린 이와이즈미를 흔들었다.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빼꼼히 나타났다.

“이와쨩.. 못생겼어어..”

오이카와의 얼굴이 발그레 붉어졌다. 얼굴 주변에서 수줍음이 퐁퐁 솟아났다.

“이와쨩 진짜 못생겼어어.. 어떻게 하면 좋아..”

오이카와가 제 손을 움직였다. 베게에 눌린 이와이즈미의 볼을 꾹꾹 누르며 얼굴을 발그레 물들였다. 볼을 괴롭히는 손길에 이와이즈미가 실눈을 떴다. 발그레한 오이카와의 얼굴이 이와이즈미의 눈을 간질였다.

“이와쨩 진짜 못생겼어.. 너무 못생겼어어 이와쨩 너무 못생긴거 같아아.”

이와이즈미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까치집의 이와이즈미가 상체를 일으켜냈다. 오이카와의 얼굴에 꽃이 개화했다.

“이와쨔앙!! 우리 못생긴 이와쨩!! 밖에 눈 ㅇ.. 푸훫!”

오이카와의 머리에 이와이즈미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시끄러워, 멍청카와. 뭔 일이야.”

힘줄 솟은 이와이즈미의 팔을 타고 힘이 손아귀를 타고 흘렀다. 오이카와의 머리통에 한껏 악력이 들어갔다.

“으우오아아아 이이이이와쨩?? 오이카와씨 머리가 쪼개집니다아아?!!”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쪼개져버리라지. 멍청카와의 머리통따위.”

한번 강하게 압박이 들어가더니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머리를 대충 던졌다. 오이카와가 유난스레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찮게 쳐다본 이와이즈미가 다시 침대로 누웠다.

“이와쨔아앙 으응? 이와쨔앙”

울먹한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이와이즈미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오이카와가 눈을 빛내며 목소리를 떨었다.

“이와쨔아아앙, 우리 이와쨔앙. 못생긴 이와쨔앙, 응? 밖에 눈온다구우. 나랑 같이 나가자. 응?”

이와이즈미가 이불을 던지며 일어났다. 이와이즈미의 뒤에서 풍기는 위험한 기운에 오이카와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와이즈미의 손이 오이카와의 정수리를 덮었다. 힘줄이 솟았다.

“어억! 이이이와쨩??? 오이카와씨 머리가아 아픕니다아?!”

한껏 험악한 얼굴에 오이카와가 눈썹을 아래로 내렸다. 이와이즈미의 손아귀에 힘이 살풋 풀렸다.

“이와쨩.. 우리 오늘 아침에 배구연습 할 때는 눈 안 왔잖아아 게다가 지금 3월이구우.. 지금, 이 오후에 눈 온다구?”

추욱 처져버린 오이카와의 모습에 이와이즈미가 결국 한숨을 쉬었다. 제 뒷머리를 긁적인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머리를 슬슬 도닥였다.

“하아 그래 가자 바보카와.”

이와이즈미가 말을 마치고는 웃음을 띄었다. 환하게 들어오는 스트라이크에 오이카와가 얼굴을 감격으로 물들였다.

“이와쨔앙 진짜 좋아아 사랑해!!”

벌떡 일어선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껴안았다. 입술을 쭉 내밀어 이와이즈미의 입굴에 부딫쳤다. 쪽쪽 소리가 나도록 부딫치는 버드키스에 이와이즈미의 귀가 붉었다. 가무잡잡한 얼굴에도 보이는 불그스름한 얼굴에 오이카와가 제 심장을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이와쨔앙.. 너무 귀여워어..!”

단숨에 붉게 물들어버린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발로 찼다.

“닥쳐, 멍청카와! 빨리 나가기나 해!”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옆구리나 등을 발로 꾹꾹 밀면서 방 밖으로 내쫒았다. 오이카와가 발그레한 얼굴 그대로 방 밖으로 쫒겨나왔다. 문이 닫히고 오이카와가 제 볼을 감싸쥐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따스함에 배시시 웃었다. 창문 밖으로 눈이 내렸다. 오이카와의 눈이 창문으로 향했다.

“3월에 오는 눈이라니 멋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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